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마담 드 몽테스팡의 자녀들 중에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들에 대해서 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고민입니다.-0-;;;
정부들과 그 후손들...(60) 루이즈 프랑수아즈 드 부르봉 : 루이 14세와 마담 드 몽테스팡의 딸(첫번째)
루이즈 프랑수아즈 드 부르봉
마드무아젤 드 낭트
콩데 공비
Louise Françoise de Bourbon
(1 June 1673 – 16 June 1743)
루이즈 프랑수아즈 드 부르봉은 1673년 1월 투르네에서 루이 14세와 그의 정부였던 마담 드 몽테스팡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때 루이는 마담 드 몽테스팡을 데리고 전장에 있었으며, 이모였던 마담 드 티앙주 역시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즈 프랑수아즈의 부모가 베르사유로 돌아온뒤, 마담 드 몽테스팡은 국왕과의 사이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모두 "마담 스카롱"(후에 마담 드 멩트농)에게 맡기게 됩니다. 1673년 12월 루이 14세는 마담 드 몽테스팡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친자식으로 인정하고 국왕이 인정한 자녀들로써 아이들에게 지위를 부여합니다. 루이즈의 큰오빠는 멘 공작 지위를, 둘째오빠는 백생 백작 지위를 받습니다.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마드무아젤 드 낭트"라고 불리게 되죠. 루이즈 프랑수아즈의 부모는 인형같은 외모의 루이즈 프랑수아즈를 "푸펏(poupott)'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어린시절의 루이즈 프랑수아즈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오빠들과 함께 마담 스카롱에 의해서 양육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태어난 다음해에는 여동생인 루이즈 마리 안이 태어났고 역시나 마담 스카롱에게 보내지게 되죠. 루이즈 마리는 태어난지 2년후인 1676년 적자로 인정받았고 "마드무아젤 드 투르"라고 불리게 되죠. 마드무아젤 드 낭트는 여동생인 마르무아젤 드 투르와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자매는 절친한 사이였고 이때문에 1681년 루이즈 마리가 일곱살의 나이로 사망했을때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매우 슬퍼했다고 합니다.
루이즈 프랑수아즈의 동생
루이즈 마리 안
"마드무아젤 투르"
하지만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다른 자매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먼저 이복언니이자 후에 콩티공비가 된 마리 안(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의 딸)이나 친여동생으로 후에 오를레앙 공작부인이 된 프랑수아즈 마리와는 절대 친해지지 못했고 셋은 서로를 질투하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인 루이 14세에게 얼마나 더 사랑받을지나 또는 신분이 얼마나 더 높아지는지 혼수를 얼마나 받는지에 대해서 서로 질투하는 사이였죠. 이를테면 루이즈 프랑수아즈가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남자와 결혼한것에 대해 콩티 공비가 질투를 했고,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사촌이자 왕가의 제1분가의 수장인 오를레앙 공작과 결혼해서 혼수를 엄청나게 받은 프랑수아즈 마리를 질투했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여동생 프랑수아즈 마리와 함께 있느 루이즈 프랑수아즈
(금발머리가 여동생인 마드무아젤 드 블루아입니다.)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부모에게서 춤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았으며 춤을 매우 잘 췄었다고 합니다. 또한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어머니처럼 신랄한 위트를 즐겼었고 이때문에 주변사람들이 몇몇은 그녀를 좋아하지만 반대로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도 꽤 됐다고 합니다.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11살이었던 1685년 16살의 콩데 공의 손자이자 콩데 가문의 후계자였던 루이 드 부르봉과 결혼하게 됩니다. 콩데 가문은 부르봉 가문의 방계 가문으로 오를레앙 공작가문 다음으로 왕위계승권을 가진 가문이었습니다. 콩데 가문은 모두 "부르봉 공작"칭호를 쓸수 있는 자격이 있었으며 특히 콩데 가문의 수장은 부르봉 본가(앙리 4세의 후손들) 다음으로 프랑스 왕위계승권을 가진 중요한 가문이기도 했었습니다.
프랑수아즈의 남편인 루이 드 부르봉은 앙리 쥘스 드 부르봉과 그의 부인인 팔라틴 공녀 안 앙리에트의 아들이었으며 "그랑 콩데"라고 불렸던 앙리 4세의 육촌인 루이 드 부르봉의 손자이기도 했었습니다. 프랑수아즈의 시어머니 안 앙리에트는 보헤미아의 겨울 왕과 왕비였던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와 그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의 손녀로 오를레앙 공작부인인 리젤로트와는 사촌관계이기도 했엇죠.
루이즈 프랑수아즈의 남편
콩데공 루이
루이 14세는 딸을 위해 만 리브르를 지참금으로 줬고, 루이즈는 남편의 호칭에 따라 "Madam la duchess"라고 불리게 됩니다. 궁정에서 이런 특별한 호칭은 왕위계승권에 가까운 사람에게만 붙여지는 것이었죠. 이런 상황은 루이즈 프랑수아즈의 언니인 콩티 공비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콩티 가문은 콩데가문보다 왕위계승권이 낮은 분가였기에 동생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아진것에 화가났었죠. 또 콩티공비는 자신보다 많은 지참금을 받은 루이즈 프랑수아즈에 대해서도 질투했다고 합니다.
결혼 다음해인 1686년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천연두에 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열일곱살이었던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돌보길 거부합니다. 대신 루이즈의 어머니였던 마담 드 몽테스팡과 시할아버지인 그랑 콩데가 루이즈 프랑수아즈를 돌봤었죠. 다행히 루이즈 프랑수아즈는 회복합니다만, 그랑 콩데는 손녀며느리에게서 천연두를 옮았고 결국 그해 사망했었습니다.
루이즈 프랑수아즈의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
그랑 콩데 "루이 드 부르봉"과 앙리 쥘스 드 부르봉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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