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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45) 올림피아 만치니 : 루이 14세의 정부(??)

엘아라 2015. 4.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게 사실 제가 예전에 읽었던 글에서 만치니 가문 딸네미들이 궁정에서 있긴 했는데 루이 14세의 정부라는 느낌을 못받았거든요. 마리 만치니의 같은 경우는 아예 아니고--;; 올림피아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일단 올림피아는 뭐랄까 왠지 성격상 루이 14세랑 뭔 연관이 있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어서 그냥 쓰는데 동생인 마리 만치니나 루이 14세의 제수인 앙리에트 안은 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45) 올림피아 만치니 : 루이 14세의 정부 (??)




올림피아 만치니

수아송 백작부인

Olympia Mancini

Countess of Soissons 

Olympe Mancini

(11 July 1638 – 9 October 1708)

프랑스식으로는 올랭프 망시니 정도로 읽어야할것같은데 그냥 제맘대로 읽으렵니다.-0-;;;



올림피아 만치니는 그 유명한 만치니 자매들중 한명이었습니다. 올림피아 만치니의 부모는 만치니 남작인 로렌조 만치니와 그의 부인인 지롤라마 마자리니였습니다. 제로니아는 바로 유명한 "마자랭 추기경"의 누이였죠.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뒤 딸들을 데리고 오빠인 마자랭이 높은 지위에 있는 프랑스로 갔으며 이때문에 그녀의 딸들 모두 궁정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됩니다. 



마자랭 추기경

올림피아의 외삼촌



루이 14세는 1654년경부터 올림피아 만치니와의 특별한 관계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국왕은 파티등에서 올림피아를 기쁘게 해줬다고 합니다. 젊은 국왕이 올림피아 만치니와 사랑에 빠진것처럼 보이려고 할때, 모후였던 안 왕비와 올림피아의 외삼촌이었던 마자랭은 얼른 올림피아의 결혼상대를 찾아냅니다. 



1650년대 

루이 14세


올림피아의  결혼상대로 선택된 인물은 바로 사보이-카르냐노 공이자 수아송 백작이었던 외젠 모리스 드 사보이아였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가문 출신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부르봉 가문 출신으로 "수아송 백작령의 상속녀"였었죠. 이 결혼은 올림피아 입장에서는 매우 잘 하는 결혼이었는데 수아송 백작은 외할아버지가 앙리 4세의 사촌이었으며 이때문에 그는 프랑스 방계 왕가의 사람들이나 쓸수 있는 칭호인 "무슈 르 콩트"라고 불렸고 올림피아는 "마담 라 카운테스"라고 불리게 됩니다.

둘사이에는 모두 여덟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중에는 오스트리아의 명장으로 유명한 사보이의 외젠공이 있었습니다. 



외젠 모리스 드 사보이아

수아송 백작


올림피아는 동생인 마리 만치니가 결혼한뒤 왕비 마리 테레즈의 궁정에 들어가서 시녀가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시녀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부르봉가문과 가까운 친척관계였고 이런 상황은 그녀가 궁정에서 다른 시녀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 있을수 있게 만들었죠. 또 올림피아는 "이국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대의 아름다움의 기준에는 벗어났었지만 매우 매력적이었던 그녀에게 많은 남자들이 매료당했었죠. 이런 그녀에 대해서 루이 14세는 호의를 숨기지 않았고 결국 궁정에서는 그녀가 결혼전 국왕의 정부였다는 소문이 퍼졌으며 심지어 결혼한 그해 태어난 그녀의 장남이 사실 루이 14세의 아들이라는 소문까지 퍼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신빙성이 영...)



동생들과 함께 있는 올림피아

양쪽은 오르탕스랑 마리라고 하는데 왼쪽이 마리라는 이야기도 있고 오른쪽이 마리라는 이야기도 있고 그래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가운데가 올림피아라고 합니다.



국왕과 어린시절부터 잘 알았으며 국왕이 호의를 보내고 있었으며 또 남편이 부르봉 가문과 가까운 친척관계였던것등등은 올림피아가 궁정내에서 여러가지 음모에 관여하게 했을듯합니다. 그녀는 수많은 연애사건이나 음모에 연관되었었죠.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전쟁터에 자주 나가있었기에 이런 음모에 더 잘 연결되었던듯합니다. 이런 음모들에 연결되면서 루이 14세는 올림피아에게 더이상 호의를 보여주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궁정내 총애와 지위를 되찾기 위해 "흑마술"을 동원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후에 몽테스팡 후작부인까지도 연루되는 "독살사건"의 일부가 됩니다. 


1679년 이 사건이 궁정의 고위 귀족 여성들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서 올림피아 역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녀는 국왕의 정부였던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를 독살하려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1673년 갑작스럽게 사망한 그녀의 남편을 독살했다는 의혹도 받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에스파냐의 왕비이자 루이 14세의 조카였던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을 독살했다는 의혹까지 받게 됩니다.


프랑스 궁정을 떠나 에스파냐에 머물고 있던 올림피아는 결국 에스파냐 궁정에서도 떠나라는 명을 받게 됩니다. 올림피아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결국 브뤼셀로 가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는 프랑스 궁정으로 돌아갈수 없었으며, 이따금 두 동생들인 마리와 오르탕스와 함께 잉글랜드에 가는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올림피아는 브뤼셀에서 사망했습니다.



아테나 여신으로 표현된 올림피아


올림피아의 아이들은 부모와 거의 떨어져서 자랐었는데 아버지는  일찍 죽었으며 어머니는 궁정음모로 추방당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아이들은 할머니와 고모의 손에 컸다고 합니다. 당시 귀족들의 아이들이 부모를 거의 만나지 못해서 성장에는 별 지장은 없었을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경력은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바로 올림피아의 아들인 외젠이 대표적인물입니다. 그는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국왕인 루이 14세에게 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그가 거절당한 이유는 외모때문이라고 주로 알려져있지만, 올림피아에게 치를 떨었던 루이 14세가 그녀의 아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것도 한가지 이유였을듯합니다. 그리고 이때문에 프랑스는 자신의 적에게 "명장"한명을 내주게 되었죠.



사보이의 외젠

오스트리아 장군

.....외젠이 누구 닮았나 했더니 아버지 닮았더라구요.

위의 초상화랑 정말 비슷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