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그냥 아버지가 인정해서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뭐 이런 소문이 있었다니가 그래도 해보긴 해야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루이 14세 아들이 아닌쪽에 한표-0-;;;;
정부들과 그 후손들...(42) 아르망 드 로한 : 루이 14세의 아들(??)
아르망 드 로한
슈트라스부르의 주교
로한 추기경
Armand de Rohan
Armand Gaston Maximilien
(26 June 1674 - 19 July 1749)
아르망 가스통 막시밀리엥 드 로한은 1674년 안 드 로한-샤봇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안의 남편이었던 수비스 공 프랑수아 드 로한은 아르망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했었습니다만, 당대 궁정에서는 그가 수비스 공의 남편이 아니라 안의 연인이었던 국왕 루이 14세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아르망의 어머니인 안 드 로한-샤봇은 1669년 루이 14세를 만났고 1674년 1월에는 왕비 마리 테레즈의 시녀가 되었는데 이때 이미 그녀가 국왕의 정부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아르망이 국왕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퍼진것이었죠. 게다가 루이 14세는 안의 남편에게 막대한 돈까지 지급했고 이런 사실은 결국 아르망이 국왕의 사생아라는 소문을 더 퍼지게 했었던듯합니다.
아르망의 어머니
수비스 여공
아르망의 성직자 경력은 사실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습니다. 루이 14세는 알사스지방을 얻은후 독일의 영향력을 배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스트라스부르 대수도원 원장으로 열여섯살의 아르망을 지목합니다. 그리고 교황은 스트라스부르의 주교지위를 만들었는데 이 지위에 루이 14세 측에 섰었던 퓨르스텐베르크의 빌헬름에게 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 이것은 알사스 지방에 독일의 영향을 받은 신교 세력을 축소하므써 프랑스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이기도 햇었습니다. 그리고 빌헬름이 죽은뒤 지위를 이어받는 인물은 자연스럽게 아르망이 되었죠. (이래서 루이 14세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더 퍼진듯-0-;;)
아르망은 이런 목적을 착실히 이행해서 예수회를 세워서 가톨릭 성직자들을 배출하므로써 가톨릭이 확대되는것에 힘썼었죠. 이런 방법은 결국 프랑스어 사용자를 확대하므로써 알사스 지방을 프랑스화하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1712년 아르망은 추기경이 되었으며 ,1713년에는 국왕의 측근으로 임명받게 됩니다. 그리고 루이 15세가 즉위한뒤에는 그의 섭정단의 일원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로한 추기경의 흉상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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