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17) 오스트리아-테센의 마리아 카롤리나 : 공작 카를의 딸

엘아라 2015. 2. 1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엉엉엉.....마리아 카롤리나는 자료가 없습니다.

하지만 초상화는 많은...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댑니까..ㅠ.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17) 오스트리아-테센의 마리아 카롤리나 : 공작 카를의 딸




오스트리아-테센의 마리아 카롤리나

오스트리아의 대공비

Archduchess Maria Karoline of Austria 

(Maria Karoline Luise Christine, Erzherzogin von Österreich)

(10 September 1825 – 17 July 1915)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카롤리나 여대공은 1825년 테센 공작이었던 카를 대공과 그의 아내인 나사우-바일부르크의 헨리에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활약한 유명한 장군이었었습니다. 어머니였던 헨리에테는 나사우 가문중 독일쪽 분가 출신이었습니다. 나사우 가문은 크게 네덜란드 왕가가 되는 네덜란드쪽 분가와 네덜란드로부터 룩셈부르크를 얻게 되는 독일쪽 분가 이렇게 두개의 분가가 있었습니다. 헨리에테의 오빠였던 빌헬름은 후에 나사우 공작이 되었으며, 헨리에테의 조카인 아돌프는 룩셈부르크 대공으로 현 룩셈부르크 대공가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헨리에테의 또다른 조카였던 소피아는 스웨덴의 왕비가 됩니다.



카를 대공과 헨리에테 대공비

그리고 둘의 자녀들



마리아 카롤리나는 어린시절 형제자매들과 함께 아버지가 지은"바일부르크 성"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헨리에테 대공비는 마리아 카롤리네가 4살때인 1829년 사망합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성홍열에 걸려서  간호하다가 병이 옮아서 사망했었죠. 헨리에테는 신교도였는데 황제이자 시아주버니였던 프란츠 1세는 황실 영묘인 카푸친 성당에 그녀가 묻히는 것을 허락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헨리에테는 카푸친 성당에 묻힌 유일한 신교도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사망한뒤 마리아 카롤리나의 큰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어린 동생들을 돌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를 잃은 카를 대공은 아이들의 교육에 스스로 신경썼었다고 합니다.



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함께 있는 마리아 카롤리나



마리아 카롤리나는 1844년 18살때 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처럼 프라하에 있는 수녀원의 원장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니나 다른 여대공들처럼 결혼하면서 그 지위를 내려놓게 되죠. 



마리아 카롤리나


마리아 카롤리나는 1852년 사촌이었던 라이너 페르디난트 대공과결혼합니다. 라이너 대공은 마리아 카롤리나처럼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손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라이너 대공은 마리아 카롤리나의 아버지인 카를 대공의 동생이었죠. 둘의 결혼은 매우 행복했다고 알려져있지만 둘사이에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리아 카롤리나의 남편

라이너 페르디난트 대공



마리아 카롤리나는 아이가 없었던 많은 여성들처럼 사회사업에 전념하게 됩니다. 특히 그녀는 아이들을 위한 많은 사업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또 조카들을 매우 사랑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카롤리나


마리아 카롤리나와 그녀의 남편은 매우 인기있었던 왕족으로 살았으며 그녀의 남편은 1차대전 직전에 사망했고 마리아 카롤리나 역시 1차대전 직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라이너 페르디난트 대공과 마리아 카롤리나 여대공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