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90)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 마리아 테레지아의 손녀(두번째)

엘아라 2014. 7. 1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뭐랄까 마리아 레오폴디네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재산 모으는데 소질이 있었다고 알려진 할아버지 프란츠 슈테판 황제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죠. -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90)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 마리아 테레지아의 손녀(두번째)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바이에른의 선제후비

Archduchess Maria Leopoldine of Austria-Este 

(December 10, 1776 – June 23, 1848)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듯 했습니다. 많은 오스트리아 여대공들이 이런식으로 정략결혼을 해야했었죠.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의 의무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며 결혼초에는 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결국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게 됩니다. 그녀는 노인인 남편과 잘 지낼수 없었고 결국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뮌헨의 궁정에서 공공연하게 남편을 거부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젊은 남자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은 그녀가 남편외에 다른 애인들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을 부채질하게 되죠. 그녀는 공공연하게 여러 남자들과의 염문을 뿌려댔는데 여기에는 선제후의 후계자인 팔츠-츠바이브뤽켄의 막시밀리안이나 궁정 조신이었던 막시밀리안 폰 몬트겔라스등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막시밀리안 폰 몬트겔라스

사보이아의 귀족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바이에른에서 일했는데 아마도 "이탈리아 여성"이라고 평가받던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그가 이탈리아쪽 출신이라는 것에 호감을 느꼈을듯합니다.



이런 상황은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를 비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의 의무는 어떻게든 선제후에게 후계자를 낳아주는 것이었음에도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고 다른 남자들과 공공연하게 연해질을 하는것이야 말로 의무를 망각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비난은 마리아 레오폴디네에게 가족들에 대한 반항심을 가져다 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가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음에도 가문에서는 그녀를 비난하는 것에 화가났었을것입니다. 결국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오스트리아측에서 탐탁지 않아하던 계승자인 팔츠-츠바이브뤽켄의 막시밀리안을 공공연하게 지지하게 됩니다.


1799년 2월 12일 고령의 카를 테오도르는 뇌졸증으로 쓰러집니다. 그리고 사경을 헤메게 되죠. 이렇게 되자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서둘러 그의 후계자이자 그녀가 공공연하게 지지했던 팔츠-츠바이브뤽켄의 막시밀리안에게 이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녀는 이때 막시밀리안에게 자신에게 친절히 대했으며 자신은 팔츠 가문의 영광을 따르겠으며 늘 친절한 벗으로 남고 싶다는 편지를 썼습니다.



카를 테오도르의 후계자

팔츠-츠바이브뤽켄-비르켄펠트의 막시밀리안 요제프

그는 팔츠 가문중 가장 한미한 가문 출신이긴 했지만 팔츠-츠바이브뤽켄 본가(...스웨덴 왕가)가 단절되면서 팔츠 츠바이브뤽켄의 영지를 물려받습니다. 이후 팔츠 선제후령과 바이에른 선제후령을 물려받음으로써 비텔스바흐 가문의 모든 영지를 상속받는 인물이 되었고 결국 나폴레옹 전쟁을 이용해서 바이에른 왕국을 성립해서 바이에른의 초대국왕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가 됩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1799년 2월 16일 사망합니다. 이때 많은 이들이 젊은 선제후비가 혹시나 임신중이 아닐까 기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이런 가능성을 부인했으며 그녀는 카를 테오도르의 후계자로 팔츠-츠바이브뤽켄의 막시밀리안이 바이에른으로 오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선대 선제후비로써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바이에른 선제후의 여름 거주지였던 슐로스베르크에서 거주했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 살면서 매우 자유로운 생활을 누립니다. 이제 그녀는 궁정에서의 시선을 피할수 있었기에 이곳에서 수많은 파티들을 열었으며 많은 남자들과 연애질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임신하게 되었고 선대 선제후비의 임신에 바이에른은 물론 오스트리아측에서도 경악을 금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스캔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류블라냐지역으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합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


마리아 레오폴디네가 다시 바이에른으로 돌아온뒤 그녀는 좀더 작은 도시에 있는 슐로스 스테페르그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매우 뛰어난 경제감각을 살려서 재산을 크게 늘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감각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금고를 채웠다고 평가 받는 할아버지 프란츠 슈테판의 감각을 물려받은듯합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단순히 자신의 재산을 늘이는데 국한하지 않고 주변에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펀드를 조성해서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제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으며 사람들의 눈에서도 어느정도 벗어난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외로움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배우자를 찾아야한다고 느꼈고 남편감을 물색하게 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