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89)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 마리아 테레지아의 손녀(첫번째)

엘아라 2014. 7. 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바이에른 계승 전쟁때 나온 바이에른 선제후비군요.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이었지만 작센이 지지하는 팔츠-츠바이브뤽켄 공작들을 지지했다고 하더라구요.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89)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 마리아 테레지아의 손녀(첫번째)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바이에른의 선제후비

Archduchess Maria Leopoldine of Austria-Este 

(December 10, 1776 – June 23, 1848)

동생 프란츠(후에 모데나 공작 프란체스코 4세)와 함께 잇는 마리아 레오폴디네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1776년 밀라노에서 오스트리아의 대공 페르디난트와 그의 부인인 마리아 베아트리체 데스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자상한 부모였으며 아이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켰습니다. 이들은 자녀들의 앞날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유럽의 여러 왕가와 결혼해서 높은 지위를 가지질 바랬다고 합니다. 특히 페르디난트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처럼 자녀들을 여러 왕가와 정략결혼시키려 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왼쪽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좀 짧았다고 합니다만 예쁜 외모에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독일인이라기 보다는 이탈리아인에 더 가까웠으며 어린시절부터 자기주장이 강했다고 합니다.


부모와 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함께 있는 마리아 레오폴디네




1795년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자신보다 52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는 바로 바이에른의 선제후였던 카를 테오도르 였습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팔츠가문의 출신으로 팔츠의 선제후령은 물론 바이에른의 선제후령도 물려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두개의 선제후령을 물려받았기에 일이 복잡해져서 합스부르크가문에서는 이를 조정하려했었는데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백부였던 요제프 2세는 바이에른 선제후령을 다른 영지와 맞바꾸려하다가 바이에른 사람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었었죠. 어쨌든 카를 테오도르는 당시 후계자가 없었으며 이때문에 그의 후계자 문제 때문에 말이 많았었습니다. 유력했던 후계자는 팔츠-츠바이브뤽켄 출신의 칼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동생인 막시밀리안 요제프였습니다. 둘의 어머니가 카를 테오도르의 아내와 자매간이었기에 훨씬더 유리했었죠. 하지만 카를 테오도르의 아내이자 둘의 이모였던 선제후비 팔츠-줄츠바흐의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가 1794년 사망했고 아내가 죽자 카를 테오도르는 아들을 얻기 위해 재혼을 결심합니다. 그는 특히 오스트리아 여대공들에 관심이 많았는데 오스트리아 여대공들은 당시에 아이들을 많이 낳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이 문제를 프란츠 2세와 상의했고 프란츠 2세는 합스부르크 분가 가문쪽의 여성인 마리아 레오폴디네를 신부후보로 추천합니다.



1792년 황제 프란츠 2세 부부와 만나는 바이에른 선제후 부부

물론 이땐 카를 테오도르의 첫번째 아내인 팔츠-줄츠바흐의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가 살아있었을때입니다.



혼담이 이야기되었을때 마리아 레오폴디네의 아버지인 페르디난트 대공은 이에 바로 찬성을 표합니다. 팔츠와 바이에른 선제후와 딸이 결혼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마리아 레오폴디네의 어머니인 마리아 베아트리체는 딸이 무려 52살이나 나이가 더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에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바이에른은 매우 부유했으며 결국 선제후비로 군주의 아내이자 부유한 삶 역시 딸에게 만족감을 줄것이라 판단하고 결혼에 동의하게 됩니다. 혼담이 진행되면서 많은 경제적 이익이 마리아 레오폴디네에게 주어집니다 어쨌든 선제후는 노인이었고 언제죽을지 몰랐기에 결국 선제후가 죽은뒤 어린 마리아 레오폴디네가 경제적으로 안락한 삶을 살수 있어야했기 때문이었죠. 


카를 테오도르

팔츠와 바이에른의 선제후

1780년대


그리고 1795년 2월 인스부르크에서 가까운 친척들만 참석한 가운데 마리아 레오폴디네와 바이에른의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의 결혼식이 거행됩니다. 그리고 결혼 3일후 뮌헨으로 부부는 떠났었습니다. 뮌헨에서는 선제후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수많은 화려한 축제와 무도회가 열렸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가족들이 원한 삶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