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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yrinth] 시몽 드 몽포르 : 5대 레스터 백작

엘아라 2013. 4.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라비린스 이야기를 좀더 해야겠습니다.

이거 소설도 무진장 재미있을듯하네요-0-;;;;




라비린스 : 미궁

정보
AXN | 목 22시 50분 | 2012-11-01 ~
출연
제시카 브라운 핀들레이, 바네사 커비, 존 허트, 톰 펠톤, 세바스찬 스탠
소개
800년간 인류가 찾아온 비밀의 책! 그 비밀은 바로 성배였다! 케이트 모스의 전세계 베스트셀러 소설 `라비린스:미궁`을 원작...



여기 이야기에서는 시몽 드 몽포르가 레몽-로지를 교살하는것으로 나옵니다. 그는 목적대로 레몽-로지의 영지를 차지했으며, 레몽 로지에게 떠나라고 합니다만, 레몽-로지는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하는걸로 묘사되는군요.


[Labyrinth] 시몽 드 몽포르 : 5대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

Simon IV de Montfort, 

Seigneur de Montfort-l'Amaury, 

5th Earl of Leicester

(1165 – 25 June 1218),


시몽 드 몽포르는 몽포르 라무리의 영주였던 시몽 드 몽포르와 그의 부인인 알미시아 드 보몬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시몽 드 몽포르의 어머니인 알미시아는 3대 레스터 백작이었던 로버트 드 보몬트의 딸로, 그녀의 오빠들이 후손없이 사망한뒤에 잉글랜드의 광대한 영지는 알미시아와 그녀의 여동생에게 분배되었으며 레스터 백작 지위는 알미시아의 아들인 시몽 드 몽포르가 물려받게 되었죠. 시몽 드 몽포르의 가문은 플랑드르 백작 가문의 직계 후손이었으며 시몽 드 몽포르는 1181년 아버지가 죽은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포르 남작이 되었습니다.



몽포르-라무리의 문장

아들인 시몽 드 몽포르(6대 레스터 백작)의 문장이 저기 사자인걸 보면 저 가문의 문장이 저 사자인듯해요


시몽 드 몽포르는 동생인 기 드 몽포르와 달리 3차 십자군 원정에는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동생인 기 드 몽포르는 필리프 2세와 리처드 1세가 참가한 3차 십자군 원정에 동행했었죠. 하지만 그는 4차 십자군 원정에는 참가합니다. 이 4차 십자군 원정은 사실상 이슬람이 아니라 같은 기독교도였던 비잔틴제국을 공격한것이었죠.  십자군 전쟁에서 귀국한 직후 그의 외삼촌인 레스터 백작이 사망했는데, 이에 그는 어머니와 함께 레스터 백작 지위를 주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존 왕은 영지와 백작령을 자신이 원했으며 그의 영지를 몰수했고 후에는 체스터 백작에게 레스터 백작 영지를 줬다고 합니다.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4차 십자군 전쟁은 원래는 이집트를 향하려했지만, 베네치아의 제안으로 비잔틴제국을 공격하게 됩니다.



시몽 드 몽포르는 1209년 그를 따르던 기사들에 의해 "알비십자군"의 사령관으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남부프랑스에서 자행된 대학살을 지휘하게 되죠. 그는 먼저 바지에를 공격했으며 이곳에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합니다. 카탈리파가 아닌 가톨릭교도마저 살해했는데 바지에의 성당으로 피신한 사람들마저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남부지역의 카탈리파를 학살했습니다.

사실상 알비십자군은 카탈리파라는 이단을 처형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지만, 사실상 프랑스 왕권강화와 북부 프랑스 귀족과 남부 프랑스 귀족간의 알력이 작용한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국왕이었던 필리프 2세는 존왕으로부터 노르망디를 뺏았는데 결국 이것은 북부 프랑스가 국왕의 영향력아래 들어갔다는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제 필리프에게는 남부 프랑스를 장악하는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알비십자군이후 남부프랑스의 강력한 귀족이었던 툴루즈 백작가문이 몰락하게 됩니다. 또 북부 프랑스 귀족들과 남부 프랑스 귀족들은 서로 생활방식등이 달랐으며 이때문에 서로의 알력 역시 컸을듯합니다. 



교황 이노센트 3세와 알비 십자군


시몽 드 몽포르는 레몽 로지 트렌카벨의 영지를 얻게 됩니다. 처음에는 다른 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지지자를 얻게 되면서 영지를 얻게 되죠. 하지만 남부의 다른 세력인 툴루즈 백작과의 전쟁을 지속하게 되며 이것은 곧 아라곤왕국와의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시몽 드 몽포르는 이들과의 전쟁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툴루즈 백작이었던 레몽 6세를 몰아냈으며, 1213년에는 아라곤의 국왕있던 페드로 2세를 전사하게 만들정도였죠. 



뮈레 전투

여기서 아라곤의 페드로 2세가 전사했습니다.


이후 교황 이노센트 3세의 지지하에 시몽 드 몽포르는 툴루즈 백작령, 바지에,카르카손 자작령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영지민들은 시몽 드 몽포르를 자신들의 영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1217년 9월 툴루즈는 전 백작의 아들이자 정당한 상속자였던 툴루즈의 레몽 7세에게 성문을 열어줍니다. 레몽 7세는 카탈루냐와 아라곤의 지원을 받고 있었죠. 시몽 드 몽포르는 툴루즈를 퇴찾기 위해 10월부터 포위공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아홉달동안 시몽 드 몽포르는 툴루즈를 장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1218년 6월 그는 투석기에서 날라온 돌더미에 맞아 즉사하게 되죠.



시몽 드 몽포르의 죽음


장남인 아마리는 프랑스 영지를 상속받았으며, 막내인 가이는 비고르의 상속녀와 결혼해서 비고르 백작이 됩니다. 둘째인 시몽은 아버지의 잉글랜드 지위를 상속받아서 6대 레스터 백작이 됩니다. 이 시몽 드 몽포르가 헨리 3세의 매부로 헨리 3세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켜서 권력을 장악했던 유명한 시몽 드 몽포르입니다.


Simon IV de Montfort

시몽 드 몽포르의 흉상


TV미니시리즈 Labyrinth에서 시몽 드 몽포르는 기존에 알려진 두가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단인 카탈리파를 학살하는데 주저하는 모습이 없으며, 또한 프랑스 왕권 강화와 자신의 영지를 위해서 레몽-로지 트렌카벨을 죽이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온 시몽 드 몽포르

드라마에서 시몽 드 몽포르는 레몽 로지 트렌카벨에게 영지를 자신에게 주고 떠나라고 권고하지만 거부했고, 결국 시몽 드 몽포르는 그를 감옥에서 목졸라 죽인뒤 병사했으며 트렌카벨이 자신에게 영지를 부여했다고 주장하는것으로 나옵니다.

왼쪽의 인물은 교황 특사였던 아르노 아말릭입니다.

아르노 아말릭은 알비 십자군의 학살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중 하나였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Labyrinth공식 홈페이지 http://www.labyrinth-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