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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데지레 클라리 : 스웨덴의 데시데리아 왕비 ...(4) 결혼

엘아라 2013. 1.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새해특집]데지레 클라리 : 스웨덴의 데시데리아 왕비 ...(4) 결혼


데지레는 나폴레옹과 파혼한뒤에도 언니들 가족들과 어머니와 함께 제노바에 머물렀습니다. 1796년 이후 나폴레옹의 운은 상승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이었는데 지지부진하던 라인 전선과 달리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대승은 프랑스 국민들의 사기를 고조시켰으며, 이탈리아에서 나오는 부는 프랑스 혁명 정부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었습니다. 이시기 나폴레옹에 대해서 "장교라면 누구나 휘하에 있으려했다"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부상은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의 지위 역시 상승하게 만들었으며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이 좋아한 친척인 데지레 역시 정치적으로 중요한 연결고리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나폴레옹의 휘하 장군들은 열광했던 총 사령관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길 원했고 나폴레옹 주변의 여성 친척들은 그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가장 관심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나폴레옹의 누이들이었습니다만, 큰누이인 마리 안(엘리사)는 이미 결혼했었고 막내인 카롤린은 넘 어렸죠. 데지레보다 세살 어린 폴린이 결혼하기 적합한 나이였습니다. 폴린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나폴레옹이 가장 아낀 동생이었죠. 여러사람이 후보가 됩니다만, 르클레르 장군과 1797년 결혼하게 됩니다.  이 시기 데지레에게도 역시 청혼하는 이들이 있었죠.



이탈리아방면군 총 사령관 시절의 나폴레옹


1797년 데지레에게 한 남자가 그녀에게 구혼합니다. 그는 뒤포 장군으로 나폴레옹이 아꼈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그와 데지레가 결혼하는것이 괜찮다고 여겼으며 그를 데지레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형에게도 편지를 보내 이런 의향을 알렸습니다. 데지레의 주변 사람들 -특히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은 데지레가 뒤포랑 결혼한것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데지레 스스로는 훗날 자신은 뒤포에 관심이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지 주변 사람들이 그와 자신이 결혼할것이라 여겼을 뿐 자신은 그와의 결혼을 승락한적이 없다고 했죠. 어쨌든 제노바에서 형부와 언니를 따라 로마로 왔으며 뒤포 역시 조제프를 돕기 위해 로마로 가게 됩니다. 몇몇자료에서는 데지레가 이때쯤 뒤포에게 사생아와 정부가 있었다는것을 알았기에 그를 거절했다고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뒤포는 로마에서 군중이 쏜 총에 사망했으며 데지레가 그를 거절했는지 아닌지는 명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뒤포와의 결혼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나죠.



뒤포 장군


1798년 데지레는 언니와 형부와 함께 파리로 가게 됩니다. 예전에는 데지레에게 파리는 낯선곳이었지만 이제 그곳은 언니와 형부 그리고 자신의 친척들과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 친구들이 사는 곳이었죠. 파리에 도착해서 데지레는 조제핀을 만났지만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데지레는 아직까지 조제핀에게 나폴레옹을 뺏길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것이죠. 하지만 데지레는 조제핀이 다른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것도 봤을듯합니다. 특히 나폴레옹의 누이들과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조제핀에게 매우 적대적이었죠. 파리에서 데지레는 다시 두명의 나폴레옹 휘하 장군들에게 청혼을 받습니다. 한명은 쥐노였고 다른 한명은 마르몽으로 둘다 나폴레옹을 오래도록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때 데지레는 쥐노보다 마르몽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 둘다를 거절했었습니다.


아마도 데지레는 파리로 왔고 조제핀과 나폴레옹을 봤을겁니다. 자길 차놓고 그렇게 잘사는 모습을 보고면서 어쩌면 "나폴레옹에게 복수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그에게 복수하는 길은 그보다 더 잘난 남자를 만나는 길이 최선이었을듯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보다 잘난 남자를 만나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죠. 어쩌면 쥐노나 마르몽을 거절한것은 그들이 오래도록 나폴레옹과 친분이 있었고 그의 휘하에 있던 장군들이었기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쥐노와 마르몽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가 있던 사이 데지레는 형부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로부터 한 남자를 소개 받습니다. 그 직전 그녀는 그가 부대를 이끌고 파리 시내를 지나가고 있을때 그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었던 남자였죠. 그는 바로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였습니다. 데지레는 그를 소개 받았을때 깊은 인상을 받았을듯합니다.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에 대해 데지레가 만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였었던것이죠. 그는 나폴레옹을 숭배하지도 않았고,나폴레옹의 완전한 휘하 장군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1797년에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 휘하 이탈리아군에 배속되어 그의 휘하에서 싸웠긴 하지만, 나폴레옹이 무명으로 있을때 베르나도트는 이미 상브레와 뫼즈군의 중요 장군으로 프랑스 전체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장군이었죠.

게다가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 휘하 어떤 장군들보다 더 강렬한 인물이었는데, 그는 키가 크고 강인한 인상에 매우 잘 생겼던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당대 여성들은 그의 모습에 반했었다고 합니다. 또 매우 강인한 성격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으며, 왕립군 출신으로 "기사도"에 대해서도 매우 철저했었습니다. 그는 장군이 된 뒤에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무척이나 사랑받던 존재였는데, 엄격한 규율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병사들은 "우리와 함께 위험을 감수하는 장군을 위해 우리는 더 열심히 해야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베르나도트

1792년


아마 베르나도트가 데지레와 결혼하려 한것은 당시 다른 많은 장군들처럼 나폴레옹과의 관계때문이었을듯합니다. 데지레 역시 가족들이 바랬던 이 결혼을 받아들인것은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 휘하 다른 장군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훗날 스웨덴에서 데지레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에 대적할만한 인물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후 결정했다"라고 회상하고 있을 정도였죠.


데지레와 베르나도트와의 결혼은 1798년 8월 치뤄졌으며 결혼식에는 조제프와 쥘리,뤼시앵과 그의 부인인 크리스틴이 참석했으며 쥐노와 그의 부인 역시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마담 쥐노가 보기에 데지레와 베르나도트의 결혼은 큰 열정은 존재하지 않아보였습니다. 데지레는 어떤 확고한 의지가 없었으며, 베르나도트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없었다고 이야기하고있죠. 하지만 둘의 결혼이 나빴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데 데지레는 남편을 사랑했으며 그가 없을때는 그의 부재에 슬퍼하면서 울었고, 그가 돌아왔을때는 다시 그가 떠날것을 생각하면서 눈물 짓고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데지레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야심도 없었고 남편이 높은 지위에 오르는것을 열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남편이 자신곁에 머물고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을 자주 보면서 편안하게 살길 바랬었죠. 하지만 그녀의 남편인 베르나도트에게는 데지레와의 결혼이 굉장히 유용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는 이미 나폴레옹과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데지레와 결혼하므로써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은 데지레와 결혼한 베르나도트에게 호의적이었으며, 특히 뤼시앵 같은 경우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가족들 대부분이 베르나도트에 대해서 비난할때도 그에 대해 호의적일정도였죠. 가족을 무척 소중히 했던 나폴레옹에게 이런 관계의 베르나도트는 정적일지라도 함부로 제거할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훗날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가 데지레의 남편만 아니었어도 총살했을 사건이 세번쯤은 된다 라고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베르나도트 장군


자료출처

1.A Queen of Napoleon;s Court : the life-story of Desiree Bernadotte(C.Bearne,1905)

2.Bernadotte: the first phase 1763-1799(D.P. Barton,1914)

3.위키피디어(프랑스어+구글번역)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