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1) 안나 :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딸

엘아라 2012. 10. 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1) 안나 :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여대공 안나

바이에른 공작부인

Anna of Austria 

(Prague, July 7, 1528 – Munich, October 16, 1590)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인 안나는 형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페르디난트 1세와 그의 사랑하는 부인이었던 헝가리-보헤미아의 안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안나라는 이름은 어머니의 이름으로부터 따온듯합니다. 



Hans daucher, ferdinando I e anna di boemia, 1523

안나의 부모

황제 페르디난트 1세와 그의 부인인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안나


합스부르크가의 전통대로 안나는 어린시절부터 여러번 약혼관계를 맺었습니다. 첫번째 약혼 상대는 바이에른의 공작 빌헬름 4세의 장남인 테오도였습니다. 테오도의 할머니였던 오스트리아의 쿠니쿤데는 안나의 할아버지인 막시밀리안 1세의 여동생이기도했죠. 하지만 테오도는 1536년 사망했기에 안나는 그와 결혼할수 없었습니다. 테오도가 죽은후 안나는 다시 약혼을 합니다. 이번에는 프랑스쪽이었죠.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셋째아들이었던 오를레앙 공작 샤를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프랑수아는 안나의 고모였던 레오노르와 재혼했었죠. 오를레앙 공작에게는 카를 5세의 딸 마리아나 페르디난트1세의 딸 안나를 선택할수 있었는데 프랑수아 1세는 밀라노를 혼수로 가져올 안나를 아들의 약혼녀로 선택했다고 합니다.하지만 오를레앙 공작 역시 결혼전에 사망합니다.




오를레앙 공작 샤를

프랑수아 1세의 셋째아들

안나의 백부인 카를 5세는 그가 형인 앙리 2세와 왕위를 두고 다툼하길 바랬다고 합니다만 안나와 결혼하기전 병으로 사망합니다.


두번이나 약혼자를 잃었던 안나는 결국 1456년 열일곱살의 나이로 바이에른 공작의 후계자인 알브레히트와 결혼합니다. 이결혼은 역시나 정략결혼으로 독일에서의 몇몇 선제후들이 카를 5세에게 대항하는 전쟁을 일으켰는데 바이에른이 이에 가담할까봐 두려웠던 카를 5세가 조카를 바이에른 공작의 후계자와 결혼시킨것이었죠.  이 때문에 혼수도 엄청났다고 합니다. 

알브레히트는 안나의 첫번째 약혼자였던 테오도의 남동생이기도 했었습니다. 재미난것은 훗날 안나의 후손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7세가 되는 바이에른의 선제후가 스스로 합스부르크가문의 상속자라고 주장하게된 계기가 바로 안나였다는것이죠. 안나가 결혼할 당시 만약 합스부르크가문의 남성직계가 단절된다면 이후 안나와 그 남성후계자들이 상속받는다는 조건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카를 7세는 이를 근거로 자신이 합스부르크가의 정당한 상속자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좀 어이없는것이 이것이 과연 200년이 지나서도 유효한 유언인가 하는것이죠. -0-;;그냥 황제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하지 말입니다. 아내의 권리가 안먹히니까 옛날 이야기까지 들먹이게 되는...--;;)



안나의 남편

바이에른의 알브레히트 5세

그는 반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바이에른 가문의 혈통은 참 오래도록 거슬러 올라가는군요.-0-;;


엄청난 혼수를 가지고 온 안나는 남편과 함께 바이에른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특히 바이에른의 수도인 뮌헨의 여러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또 수많은 예술작품들을 사모았습니다. 안나와 안나의 남편인 알브레히트 5세가 모은 여러가지 작품들은 현재 바이에른 지방의 몇몇 박물관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또 안나는 매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여러 수도원을 후원했고, 손자이자 후에 바이에른의 선제후가 되는 막시밀리안을 엄격한 가톨릭 신자로 키웠다고 합니다.



체스를 두고 있는 알브레히트 5세와 안나




안나와 바이에른의 공작 알브레히트 5세 사이에서는 일곱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중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다섯명이었습니다. 다섯중 첫째인 빌헬름은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5세가 됩니다. 딸인 마리아 안나는 외삼촌인 오스트리아의 대공이자 Inner Austria의 통치자였던 카를 2세와 결혼합니다. 카를 2세와 마리아 안나 사이에서는 열다섯명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마리아 안나의 아들인 페르디난트는 후에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되죠. 막내아들이었던 에른스트는 선제후 권리를 갖는 쾰른의 대주교로 바이에른 가문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데 큰 힘을 보탰습니다.



안나의 딸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

오스트리아 대공비

외삼촌과 결혼해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족보 꼬이게 만든 사람중 하나

마리아 안나의 자녀들은 폴란드 왕비,에스파냐 왕비,신성로마제국의 황제,상오스트리아의 대공 등등이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