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 : (1) 들어가면서 : 합스부르크 가문

엘아라 2012. 7.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합스부르크 가문 하기로 했습니다만 이 가문이 엄청 오래된 가문이라 골치아픕니다.

합스부르크가문은 다른 독일의 가문들처럼 10세기나 11세기정도에 가문의 기초를 닦은 가문이라죠.

처음에는 백작(그라프,Graf)로 시작해서 가문의 모토대로 결혼을 통한 상속으로 야금야금 중부유럽지방의 영토를 장악해갑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성들에 대해서 알아볼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고민이더라구요.

처음 11세기부터 시작해야하나도 고민했는데 아시다시피 중세는 자료가 별로 없는지라...


그래서 일단 합스부르크가의 황제가 "Archduke"를 쓴 이후 시기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언제냐구요 막시밀리안 1세때랍니다. 그 이전 시대는 여대공들 끝나고 나서 "합스부르크가의 왕녀들"이라는 이름으로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할 예정이구요. 그런데 좀 애매한 인물이 한명 있어서 번외편부터 시작해야할듯합니다. 막시밀리안 1세의 누이이자 프리드리히 3세의 딸인 쿠니쿤데가 여대공이라는 칭호를 썼는지 안썼는지 애매하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쿠니쿤데를 번외편으로 넣고 시작할까합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 : (1) 들어가면서 : 합스부르크 가문



합스부르크가문의 문장



유럽 최고의 명문가에 속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은  10세기경 출발합니다.

합스부르크가의 아주 윗대 선조들은 모호하지만 선조중 한명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10세기경 브라이스카우(Breisgau)에 살았던 귀족인 군트람 데어 라이헤(Guntram der Reiche)입니다. 그는 매우 부유한 인물이었고 이런 부는 훗날 그의 손자가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을 쓰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군트람의 손자인 라트보트(Radbot)는 현재 스위스 지방에 요새인 "합스부르크 성"을 건축합니다. 이후 이 지역은 "합스부르크"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 요새로부터 가문이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라트보트는 당시 다른 귀족들처럼 이 요새를 건축한후 "합스부르크 백작"이라고 칭하게 되죠. 

가문의 이름이 된 합스부르크라는 말의 어원은 "매의 성"(Habichtsburg)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합스부르크 성이 등장하는 첫번째 기록은 1108년 이며 이후 13세기까지 가문은 이곳을 주 거주지로 생활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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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성


일단 중부 유럽의 작은 백작가문이었던 합스부르크가문은 중세를 거치면서 당시의 유력한 가문과 통혼을 통해서 권력과 영지를 얻어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13세기 이후에는 상 알사스와 스바비아와의 유력가문과 통혼을 목적으로 했으며 가문의 사람이 교회에 높은 지위를 얻는것에도 무척 신경을 씁니다. 이런식으로 권력을 얻어나갔을 뿐만 아니라 통혼을 통해 "상속"의 개념으로 영지도 넓혀가났습니다. 이를테면 취리히를 중심으로 영지를 가지고 있었던 키부르크(Kyburg)가문 역시 합스부르크가와 통혼했는데 이 가문의 직계가 단절되자 영지는 통혼관계에 있는 합스부르크가문으로 넘어가게 되죠. (...통혼으로 인한 영지 확대는 오랜 전통이었던듯..-0-;;)



독일의 국왕 루돌프 1세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 4세

그는 어머니인 키부르크의 헤드비히를 통해서 키부르크를 상속받았으며 아버지로부터도 영지를 상속받았기에 서남부 독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며 이를 발판으로 독일의 국왕(실질적 황제)지위에 오릅니다.

루돌프 1세 이후 합스부르크가는 독일에서 무시할수 없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13세기 합스부르크 백작이었던 루돌프 4세는 권력을 손에 넣게 됩니다. 그는 서남부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으며 이를 발판으로 독일의 루돌프 1세로 선출됩니다. 그는 비록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정식 대관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선제후들에게 선출되었고 교황의 인정을 받았기에 "황제"나 다름 없었습니다.루돌프는 합스부르크가의 핵심이 될 영지였던 오스트리아 공작령을 얻게 됩니다.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공작이라는 칭호를 쓰게 되죠.

14세기에는 합스부르크가가 두개의 분가로 나뉩니다. 오스트리아 공작령과 티롤등의 상 오스트리아(Futher Austria)를 다스리는 가문으로 분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15세기가 되면서  다시 합스부르크가는 한명의 군주에 의해서 다스려지게 됩니다. 그가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였습니다.


15세기 오스트리아의 공작 프리드리히 5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로 즉위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위를 계속 유지하게 됩니다.사실  합스부르크가문이 황제 지위를 독점하게 된것은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인 막시밀리안 1세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것입니다. 그는 당시 "황금의 신부"라고 일컬어지던 부르고뉴 공작의 상속녀 마리 드 부르고뉴와 결혼해서 유럽의 최고 경제적 요충지였던 부르고뉴를 손에 넣었으며 아들과 딸을 모두 에스파냐 왕실과 통혼시켜서 결국 에스파냐와 에스파냐의 영지였던 신대륙마저 합스부르크가문의 손에 들어오게 만듭니다. 이뿐만 아니라 손자손녀를 모두 헝가리 왕가와 통혼시켜서 헝가리-보헤미아 지역 역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가 되도록합니다.



막시밀리안 1세와 그 가족들

성인 여성은 막시밀리안 1세의 아내이자 부르고뉴 공작의 상속녀인 마리 드 부르고뉴입니다.

마리 옆의 큰 남자는 후아나 라 로카와 결혼해서 합스부르크가에 에스파냐와 신대륙을 상속받게 한 막시밀리안의 아들 필리프입니다.

아이들은 왼쪽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페르디난트, 가운데는 황제이자 에스파냐 국왕이었던 카를 5세 , 오른쪽은 막시밀리안의 손녀사위인 헝가리 국왕입니다.



합스부르크가문의 최대의 영지를 통치했던 인물은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인 카를 5세입니다.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오스트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아버지(할머니 마리 드 부르고뉴)로부터 부르고뉴 공작령을, 어머니로부터는 에스파냐와 신대륙을 물려받았죠. 하지만 이런 상황은 프랑스와의 관계를 악화시켰으며 넓디넓은 제국 역시 카를 5세에게 부담이 되죠. 결국 그는 중부독일쪽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는 동생 페르디난트에게 물려줬으며, 에스파냐와 신대륙,부르고뉴 지방은 아들인 펠리페에게 물려줍니다.

이로써 합스부르크 가문은 에스파냐-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두개의 분가로 나뉘게 되죠.


이 두개의 분가는 영지를 잃지 않기 위해 근친결혼을 하게 됩니다. 특히 에스파냐의 경우 여성의 상속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더욱더 심하게 근친결혼이 이루어집니다. 결국 18세기가 되면서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 두곳 모두 합스부르크가문 남성 직계가 단절됩니다.

에스파냐가 먼저 남성직계가 단절됐는데 이때문에 에스파냐 왕위게승전쟁이 일어났고 결국 할머니가 에스파냐 공주였던 프랑스의 앙주 공작 필리프(루이 14세의 손자)가 에스파냐의 펠리페 5세로 즉위하면서 에스파냐의 왕위는 부르봉가문이 차지하게 됩니다. (현 스페인 왕가도 부르봉 가문이라는)



에스파냐-합스부르크의 마지막 국왕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2세

그는 주걱턱이 너무 심해서 음식을 씹을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0-;;



반면 오스트리아쪽의 경우는 좀더 복잡한데 남성직계의 마지막이었던 황제 카를 6세는 딸 마리아 테레지아를 후계자로 삼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로렌 공작의 아들인 프란츠 슈테판과 결혼했는데 이후 가문은 합스보르크-로트링겐이라는 이름을 쓰게 됩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역시 그냥 간단히 합스부르크가문이라고도 한다죠.) 이 합스부르크-로트링겐가문이 계속 황위를 이어받았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후 독일이 정리될때 합스부르크가문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통치가문이 됩니다. 하지만 1차대전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영지를 모두 상실하게 되었고 합스부르크가의 영지들은 모두 공화국이 됐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와 남편 프란츠 슈테판

그리고 후계자 요제프

마리아 테레지아는 아버지가 죽은후 제국에서 자신의 계승을 반대하는 전쟁이 일어나자 헝가리 의회로 가서 자신을 위해 싸울것을 호소합니다. 헝가리와 보헤미아는 여성의 왕위계승을 인정했기 때문에 국왕이 될수 있었죠. 갓낳은 후계자 요제프를 안고 의회에 가서 호소하는 여왕의 모습을 본 헝가리 귀족들은 자신의 여왕과 그 후계자를 위해 싸울것을 결의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죠.



현재 가문의 수장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카를 1세의 손자인 카를 폰 합스부르크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