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황후들에 대해서는 가계도를 그리면서 하고 있는데 가계도 가 점점 단순해지는듯하네요-0-;; 역시나 어찌나 근친결혼이 심했는지 말입니다.
페르디난트 3세의 초상화는 멀쩡해서 그리 심한 주걱턱이 아니었군..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전에 양각된 황제의 측면 모습을 보면 그런것도 아니더라는...--;;;;;;;
레오폴트 1세가 심한 주걱턱이었던것을 생각해보면 그 아부지인 페르디난트 3세가 멀쩡하게 묘사되는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미화가 심할줄은 몰랐었습니다.-0-;;;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28)에스파냐의 마리아 안나 : 페르디난트 3세의 황후
에스파냐의 마리아 안나
인판타 마리아 안나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Maria Anna of Spain
(18 August 1606 – 13 May 1646)
디에고 벨라스케스 작품
...역시 벨라스케스의 자연스러운 미화-0-;;;
주걱턱인것을 느낄수는 있지만 어색하지 않는 모습!!
에스파냐의 마리아 안나는 에스파냐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3세와 그의 부인이었던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여대공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르가레테는 카를 대공과 그의 부인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의 딸로 페르디난트 2세의 누이이기도 했습니다. 마르가레테는 매우 엄격한 가톨릭 교도였으며,30년 전쟁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이익을 위해 남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펠리페 3세는 매우 부정적 평가가 많은데 그 이유는 그의 아버지인 펠리페 2세때 에스파냐가 전성기를 누렸던것에 비해 펠리페 3세때는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서 점차 국내 경제가 쇠락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개혁 정책 역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안나의 부모
에스파냐의 펠리페 3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작게 넣었음에도 알수 있는 주걱턱의 부모-0-;;;
펠리페 3세와 마르가레타는 아이들과 자주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안나가 다섯살이 되던해인 1611년 마리아 안나의 어머니 마르가리타 왕비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합니다. 어머니가 죽은후 그녀의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았는데, 이때문에 큰 언니인 안나(후에 프랑스의 왕비 안 도트리슈, 루이 14세의 모후)가 어린 동생들을 돌봤다고 합니다. 어린 동생들은 큰 언니인 안나를 어머니처럼 여길 정도였습니다.
마리아 안나의 언니 안나
안 도트리슈
프랑스의 왕비
루이 14세의 모후
삼총사에서는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핍박받는 왕비로 나오는데 사실 안 왕비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국익이 아닌 에스파냐의 국익을 위해 노력했고 이에 리슐리외 추기경의 경계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면서 그녀는 아들이 물려받은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 노력하신듯합니다.
게다가 왕비를 도왔던 마자랭 추기경의 영향도 컸구요.
1620년대초, 제임스 1세의 아들인 찰스는 정치적 목적으로 마리아 안나에게 청혼을 하러 옵니다. 가톨릭 공주와 결혼하려한 이유는 외교적 문제와 더불어 잉글랜드 국내의 종교 문제도 해결하려는 의도가 있었죠. 이를 부추긴 사람은 제임스 1세의 총신이었던 버킹엄 공작이었습니다. 버킹엄 공작과 웨일즈 공 찰스(후에 찰스 1세)는 마리아 안나에게 구혼하러 에스파냐까지 왔지만 둘의 결혼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 안나는 신교도와 결혼할 마음이 없었으며, 찰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할 마음이 없었죠.(결국 찰스는 프랑스의 앙리에타 마리와 결혼합니다)
1631년 마리아 안나는 자신의 사촌이자 헝가리 국왕이었던 페르디난트와 결혼합니다. 그와 결혼하기 위해서 마리아 안나는 스페인을 떠나 빈을 향해 갔는데 당시에는 30년 전쟁중이었기에 여행길은 상당히 위험했다고 합니다. 트리에스테에 도착한 마리아 안나는 그곳에서 대리 결혼을 했으며 이후 빈으로 가서 페르디난트와 정식 결혼합니다.
가계도
마리아 안나의 남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3세
...미화입니다.-0-;;;
마리아 안나와 페르디난트는 친구같은 부부관계를 유지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마리아 안나는 행복함을 추구하는 성품으로 다정했으며,영리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우울해하는 경향이 있는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기분을 풀어줄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마리아 안나와 페르디난트 3세 사이에서는 모두 여섯아이가 태어납니다. 이중 큰딸인 마리아나는 후에 마리아 안나의 오빠인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결혼합니다.(둘의 딸이 벨라스케스의 연작초상화 시리즈로 유명한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입니다.) 막내아들인 레오폴트는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죠. (레오폴트는 조카인 마르가리타 테레사와 결혼했습니다. 또 꼬인 족보관계-0-;;)
마리아 안나의 자녀들
레오폴트 1세와 마리아나
마리아나의 아들인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2세는 턱이 다물어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0-;;
마리아 안나는 1646년 막내아이를 낳다가 사망합니다. 막내인 딸 마리아는 제왕절개로 태어났지만 역시 태어나자마자 사망했습니다.마리아 안나와 막내딸은 같은 관에 묻혔다고 합니다.
마리아 안나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마리 테레즈가 루이 14세와 결혼한때 저 가발쓰고 갔다가 촌스럽다고 놀림받았다고 하죠-0-;;;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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