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신성로마제국의황후들(완결)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9) 잉글랜드의 모드(마틸다): 하인리히 5세의 황후

엘아라 2011. 11. 24. 06:00

안녕하세요 땡땡이 엘입니다.

 

글 읽기 싫어요..럴럴럴...

그래서 저도 "꼼수"를 쓰기로 했습니다. (ㅎㅎㅎ 저도 요즘 유행단어좀 써볼까합니다.)

뭘 하냐구요...원래는 그냥 넘어가려했던 잉글랜드의 마틸다를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물론 같은 글 그대로 쓰면 욕먹으니까-0-;;(솔직히 누가 알까..라는 생각을 살짝 합니다만 그래도 자주 방문해주시는분들은 바로 알아차릴듯하여..ㅠ.ㅠ)좀 편집하고 좀더 황후시절에 집중(그래봤자 자료없음--;;;)해볼까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마틸다는 잉글랜드의 헨리 2세의 어머니라죠.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9) 잉글랜드의 모드(마틸다): 하인리히 5세의 황후

 

 

 

 

잉글랜드의 마틸다(모드)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앙주 백작부인

Lady of England

Empress Matilda

Matilda of England or Maude

 (c. 7 February 1102 – 10 September 1167)

 

잉글랜드식으로 모드라고도 불렸던 마틸다는 잉글랜드의 헨리 1세와 그의 부인인 스코틀랜드의 마틸다(에디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헨리 1세는 정복왕 윌리엄의 아들이었고, 스코틀랜드의 마틸다는 스코틀랜드의 말콤 3세와 성녀가 된 성 마거릿의 딸이었습니다.( 마틸다의 원래 이름인 에디트라는 이름이었지만 헨리 1세와 결혼하면서 마틸다로 고쳤습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노르망디를 중심으로하는 프랑스 방언을 사용했고 에디트 역시 궁정언어인 노르망디 프랑스어식 이름인 마틸다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마틸다의 부모

잉글랜드의 헨리 1세와 스코틀랜드의 에디트

 

마틸다는 7살때 23살의 하인리히 5세와 약혼합니다. 이때 하인리히는 아직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인리히 5세의 형인 콘라트는 아버지에 반기를 들었고 이에 그는 아버지에게서 쫓겨나게 됩니다. 하인리히 4세는 콘라트의 동생인 하인리히를 1099년 독일의 국왕으로 세웁니다. 하지만 하인리히 5세 역시 후에 아버지인 하인리히 4세와 대립하게 되고 아버지를 몰아내죠.

약혼이후 마틸다는 신성로마제국으로 보내져서 당시 독일의 국왕이자 후에 황제가 될 하인리히의 부인으로써 갖추춰야할 여러 소양을 배우게 됩니다. 비록 하인리히와 정식 결혼을 하지 않긴했지만 중세에는 약혼이 이미 결혼과 비슷한 효력을 발휘했기에 8살의 나이로 하인리히의 지위에 걸맞게 독일의 왕비로 대관하죠.

 

 

아버지 하인리히 4세와 함께 있는 하인리히 5세

 

마틸다는 이후 12살이 된 1114년 하인리히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때 그녀는 황후로 대관했을듯합니다. 12살은 어려보이는 나이지만, 중세 시대때는 최소 결혼적령기가 12살정도였기에 그리 이른 나이는 아니었을듯합니다. 결혼후 마틸다는 황후로써 제국을 돌아보는 남편을 따라 제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부재시 이탈리아에서 섭정으로써 역할을 하기도 했죠.

 

하인리히 5세는 1125년 사망했는데 마틸다와의 사이에서 어려서 죽은 아들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그녀는 남편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낳아주진 못합니다.

 

 

하인리히 5세와 마틸다 황후

 

 

남편이 죽은후 마틸다는 잉글랜드로 돌아옵니다. 당시 헨리 1세의 아들이자 마틸다의 동생인 윌리엄은 사고로 사망한 뒤였고, 헨리 1세는 재혼했지만 후계자를 둘수없었죠. 이때문에 헨리는 딸이 돌아오자 자신에게 남성후계자가 생기지 않는다면 딸에게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물려주려했고 이에 봉신들에게 서약을 하도록했습니다.

이후 헨리 1세는 딸을 대립관계였던 앙주가문과의 평화를 위해 앙주 백작가의 후계자인 조프루아와 결혼시킵니다. 1128년 둘은 결혼했는데 26살의 마틸다는 14살의 조프루아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부부사이는 매우 좋지 않았죠. 마틸다는 어리고 자신보다 지위도 낮은 남편을 무시했고 조프루아는 거만한 아내를 못참았죠. 하지만 둘은 후계자가 필요한것에는 공감했고 세 아들이 태어납니다. 앙리,조프루아,기욤 이렇게 세명의 아들이 태어나죠.

 

앙주 백작 조프루아

....미화 버전....--;;;

참고로 별명이 le Bel(잘생긴)이었다고 합니다

 

마틸다는 아버지인 헨리 1세가 죽은 뒤 잉글랜드 귀족들이 서약과 달리 자신이 아니라 친척인 스티븐(블루아의 에티엔)을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옹립한것에 분개합니다. 잉글랜드 귀족들은 여성을 국왕으로 두고 신하가 되는것에 무척이나 꺼려했죠. 결국 마틸다는 잉글랜드로 가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스티븐과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마틸다는 승리했죠. 마틸다는 the Lady of England칭호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마틸다는 귀족들을 잘 다루지 못했고, 귀족들은 "오만한"마틸다를 몰아내고 다시 스티븐을 국왕으로 세웁니다. 결국 마틸다는 쫓겨나서 다시 앙주로 돌아왔습니다. 

마틸다는 큰아들 앙리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합니다. 이제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상속을 주장할 권리는 앙리에게 가죠. 그리고 앙주 가문이 노르망디를 장악한후 전세는 바뀌었고 스티븐의 아들이 죽자 결국 앙리는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가지게 됩니다.

 

마틸다는 아들을 위해 권리를 포기한후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녀는 실패를 통해 여러 교훈을 얻게 되었고 이전까지와 달리 매우 "현명하고 겸손한"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특히 아들인 헨리 2세가 전적으로 조언을 구하던 사람중 한명이 되죠.

 

 

토마스 베켓과 함께 있는 헨리 2세

개인적으로는 토마스 베켓은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죠

오만한 귀족시절에는 사치를 누리고 국왕과 죽이 잘 맞았지만, 강제로 캔터베리대주교가 된후에는 국왕의 반대편에 서서 교회에 충실했으니 말입니다.

 

마틸다의 묘비에는 "태어나면서 위대했고, 결혼으로 더 위대해졌으며 자녀를 통해서 가장 위대해졌다. 헨리의 딸,아내 어머니였던 마틸다 여기 잠들다"( "Great by Birth, Greater by Marriage, Greatest in her Offspring: Here lies Matilda, the daughter, wife, and mother of Henry.") 라고 적혀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