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신성로마제국의황후들(완결)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5) 슈바벤(스바비아)의 기젤라 : 콘라트 2세의 황후

엘아라 2011. 10.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요즘 너무 게으른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계절 바뀔때마다 살짝 이러긴 하거든요. 의욕상실이랄까 우울하달까..--;;;

이번에는 살짝 오래가는 경향이 보입니다..ㅠ.ㅠ 빨랑 멀쩡해져야하는데 아마 감기 한번 걸리고 나면 다시 정신 차릴듯하네요..안그래도 지금 감기 기운으로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거든요..--;;;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5) 슈바벤의 기젤라

 

 

 

 

슈바벤의 기젤라

브라운슈바이크 백작부인

슈바벤의 공작부인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Gisela of Swabia

(989 or 990 – February 14, 1043)

 

슈바벤(스바비아)의 기젤라는 슈바벤의 공작이었던 헤르만 2세와 그의 부인인 부르쿤트(부르고뉴)의 게르바르가의 딸로 태어납니다.  기젤라의 부모는 모두 샤를마뉴의 후손이었으며 이때문에 기젤라 역시 샤를마뉴의 후손이 됩니다.

 

기젤라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영리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후에 정치적으로도 꽤나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 됩니다.

 

열두살 무렵인 1002년 기젤라는 결혼을 합니다. 남편은 브라운슈바이크 백작인 부룬(부르노 1세) 였습니다.(중세시대에는 결혼 적령기가 12살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이 결혼을 통해서 네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중 아들인 루이트폴트는 피리스란트의 마르크그라프가 되었고 루이트폴트의 딸인 마틸다는 프랑스의 앙리 1세의 부인이 되기도 합니다.

 

 

기젤라

 

1012년 기젤라의 남동생인 슈바벤 공작 헤르만 3세가 자녀없이 사망합니다. 슈바벤 공작은 제국내에서도 강력한 공작 중 한명이었으며 이때문에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하인리히 2세는 공작령의 계승에 관여합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마르크그라프의 아들인 에른스트를 슈바벤 공작으로 임명했고 그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기젤라와 그를 결혼시킵니다.

기젤라의 언니인 마르가레타가 살아있었음에도 기젤라가 에른스트와 결혼한것은 아마도 그녀의 남편인 부르노 1세가 이미 사망했을것이라 추측을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기록들에서 부르노의 사망 연대를 1010년대,1012년.1014년.1016년등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혼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부르노의 사망연대가 1010년대인것으로 봐서는 아마 동생이 죽었을때쯤 남편도 사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젤라는 에른스트와 결혼후 에른스트와 헤르만이라는 이름의 두 아들을 낳습니다. 하지만 에른스트 1세는 1015년 사냥사고로 사망했고, 기젤라는 다시 아이들과 홀로 됩니다. 기젤라는 슈바벤 공작령의 상속녀였을뿐만 아니라 외가를 통해 부르군트(부르고뉴) 왕국의 상속권도 가지고 있었기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돌봐야할 아이들과 왕국이 있었으며 아이들에게는 섭정이 필요했죠. 이런 이유로 기젤라는 강력한 보호자가 필요했고, 슈페이어와 볼름스의 백작인 콘라트와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콘라트 역시 기젤라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영지와 힘을 가져다줄 상속녀였기 때문이죠.

1016년 말 또는 1017년 초 둘은 결혼했는데 교회법을 엄격하게 적용했을때 둘은 가까운 친척관계였고 , 이때문에  결혼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콘라트는 잠시 궁정에서 추방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곧 둘은 결혼을 승락받게 됩니다.

 

 

콘라트 2세

(아마 가운데 사람인듯)

 

1024년 하인리히 2세가 사망한후 독일의 왕으로 선출됩니다. 그후 1027년 콘라트는 교황에게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관을 받고 황제로 즉위합니다만 기젤라는 콘라트와 가까운 친척관계라는 이유로 황후로 대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즉위한 13일 후 황후로 대관합니다.

 

황후가 된후 기젤라는 남편과 함께 다양한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특히 부르쿤트 (부르고뉴)왕국에 대한 자신의 계승권리를 주장하는 남편을 강력하게 지지했습니다. 또 기젤라는 언니의 두 딸들을 돌봤는데 이모의 영향을 받은 이 두 여성들은 모두 자신의 영지에서 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중세시대에 여성들이 이렇게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잘 없었습니다.)

 

 

콘라트 2세와 기젤라 황후

(저기 무릎꿇고 있는 두사람이겠죠)

 

콘라트 2세와 기젤라 사이에서는 세명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첫째인 하인리히는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됩니다. 그리고 딸인 마틸데는 평화협정의 일환으로 프랑스의 앙리 1세와 약혼합니다만 결혼전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후 마틸데의 조카이자 기젤라의 첫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아들의 딸인 브라운슈바이크의 마틸데는 고모가 죽은후 그와 결혼한것입니다.)

 

 

기젤라의 아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3세

 

1900년 기젤라의 관을 열고 조사했는데, 이때 172cm의 키에 긴 금발머리의 미라화 된 기젤라의 유해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