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왕족이야기

재미로 읽는 이야기 : 루마니아의 왕위 계승 요구자 문제

엘아라 2011. 10. 14. 10:26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 이번주는 끝까지 이모양이군요.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라는.....

오늘도 대충 울 똥강쥐 사진 올려놓고 넘어가려다가...며칠전 어딘가 올려놓은 글을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10월 25일은 루마니아의 전 국왕인 미하이 국왕의 90번째 생일입니다.(그러고보니 필립공과 나이도 같군요)

부분적으로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미하이 국왕은(방문은 허락됐는데 거주는 허락이 안되나봐요 그래서 방문형식으로 루마니아에 머물고 있는듯합니다.) 9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루마니아 의회에서 연설을 하기로 되어있다고 하네요. 나중에 자료를 좀 찾아봐야할긋합니다.

 

미하이 전 국왕에게는 다섯 딸이 있었고 이때문에 루마니아의 왕위계승 요구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저같이 외국인이자 흥미로 왕실 이야기를 읽는 사람에게는 왜 이게 문제가 되는지 알길이 없습니다만(루마니아 왕가의 수장인 미하이 전 국왕이 자기 딸을 후계자로 삼겠다는데 왜 테클인지..--;;) 어쨌든 일은 복잡하다죠..

 

루마니아의 왕위계승 요구자 문제

 

루마니아의 미하이 국왕은 1947년 12월 30일 퇴위했다. 그는 이후 망명했고 스위스에서 평범한 파일럿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그는 망명후 부르봉-파르마의 안과 결혼했다. 안은 카톨릭이었는데 정교회를 믿는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안과 그 가족들은 교황에게 파문당할뻔했다. (물론 가족들은 안이 자기 맘대로 결혼했다고 우겼다.)

 

상냥한 성품으로 알려진 안 왕비(평생 왕비로 대관한적은 없다. 그녀는 남편이 퇴위한후 결혼했기 때문이다.)와 미하이 국왕 사이에는 모두 다섯명의 딸이 태어난다. 그리고 왕위 계승 요구자 문제가 발생한다.

 

 

젊은 시절의 미하이 전 국왕

 

루마니아 왕가는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가문출신이다.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가문은 "살리카 법"을 수용하는 가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여성에게는 왕위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하이에게서 아들이 없자 당연히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가문과 혁명이전의 루마니아 국내법에 따르면 미하이의 후계자는 가장 가까운 남성 친척에게 돌아가야했다.

하지만 미하이는 루마니아의 전 국왕으로 가문의 수장이기도 했다. 그는 루마니아 왕가의 살리카법을 폐지하고 자신의 딸을 후계자로 선언했다. 그의 큰딸인 마르가레타를 후계자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테클거는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미하이의 형의 아들인 파울 필리페였다

미하이의 아버지였던 카롤 2세는 모두 세번 결혼했다. 첫번째는 루마니아 귀족의 딸이었던 지지 람브리노였다. 카롤 2세는 지지 람브리노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둘은 몰래 결혼합니다. 이것은 당시 귀천상혼제도를 인정하고 있던 루마니아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카롤은 제1왕위계승자였는데,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계승권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었다. 결국 왕실의 압력으로 카롤은 지지 람브리노와 헤어질수 밖에 없었으며 결혼은 무효화됐다. 하지만 지지는 임신중이었고 카롤의 아들인 미르체아(일반적으로는 카롤이라고 더 잘 알려짐)를 낳았다.

카롤은 지지와 헤어진 직후 그녀를 잊었으며 이후 미하이의 어머니인 그리스의 엘레니 공주와 결혼했다.

 

 

아버지 카롤 2세와 함께 있는 미하이 전 국왕

카롤 2세는 뭐랄까 "나쁜 남자"의 표본이라고 할까요

이런 나쁜남자를 자기 손안에 넣은 마그다 루페스쿠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살짝 듭니다.--;;;

 

 

파울 필리페의 아버지인 카롤-미르체아는 1955년 포르투갈 법원에 의해서 "호엔촐레른"이라는 성을 쓰도록 인정받았다. 그 후에 1996년에는 루마니아 법원에서 카롤 2세와 지지 람브리노의 결혼이 적법한것이라 인정받았고 카롤-미르체아 역시 적자라고 인정받는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파울 필리페는 이제 자신이 미하이 전 국왕의 뒤를 이어 제 1왕위계승요구자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미하이 전 국왕은 그에 대해 루마니아 법정에서 소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왜냐면 파울 필리페가 그의 할머니인 지지 람브리노와 카롤 2세의 이혼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법적으로 미하이의 어머니인 그리스의 엘레니와 카롤 2세의 결혼이 중혼이 되므로 미하이가 적법한 왕위계승자가 아니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지지 람브리노와 카롤 2세의 이혼은 명확한것이었고, 이후 엘레니 공주와 결혼한것이었다. 이것은 카롤 2세 스스로도 인정한 것이었다. 미하이 측은 지지 람브리노와 카롤 2세의 결혼은 귀천상혼이기때문에 결혼이 적법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녀들에게 계승권이 인정될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 문제는 현재도 루마니아 법원에서 진행중인 문제이다. (사실상 미하이와 파울 필리페는 사이가 무척 나쁠것이라 여겨진다. 왜냐면 파울 필리페는 미하이를 흠집내기 위해 수많은 주장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미하이가 즉위한 1940년부터 미하이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1944년까지 루마니아의 유대인 학살에 미하이가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1940년부터 1944년까지 루마니아의 권력을 장악한 인물은 미하이가 아니라 이온 안토네스쿠 장군이었고 미하이는 그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1944년 쿠데타로 미하이가 정권을 잡으므로써 더이상의 학살을 방지했다고 추정한다.)

 

 

1940년 이온 안토네스쿠 장군과 함께 있는 미하이 전 국왕(당시 18살)

가운데가 미하이 전 국왕입니다.

이온 안토네스쿠 장군은 친독일이었고 이때문에 그가 집권했던 1940년에서 1944년까지는 루마니아는 독일측에 섰습니다. 이때 미하이가 국왕이긴 했지만 그에게는 실권이 없었다고 합니다.

 

 

 

법정문제는 매우 복잡했고 더우기 외국 왕족들까지 끼어들면서 일이 더 복잡하게 되었다.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본가에서 살리카법을 들어서 파울 필리페를 지지하는 분위기로 나아간것이다. 하지만 안심할수 있었던것은 파울-필리페는 자녀가 없이 늙어갔고 결국 그의 주장은 그의 대에서 끝날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 1월 분위기는 반전된다.

60살의 파울 필리페와 59살의 그의 부인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카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는데 파울 필리페의 아내는 아이를 낳기 위해 "현대 의학의 기술"을 빌렸다고 인정했다. 자세한 내용을 말하는것을 부인했지만, 아이는 인공수정으로 태어났으리라 추측되고 난자는 기여받거나 또는 체세포 복제기술로 만들어졌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되자 다시 계승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파울 필리페는 이제 자신의 요구사항을 이어받을 아들이 생긴것이었고 미하이에게는 여전히 딸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미하이는 2011년 5월 호엔촐레른이라는 성을 떼기로 결정한다. 호엔촐레른 가문과 단절하므로써 적어도 살리카 법에서 벗어날수 있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물론 파울 필리페는 이에 대해서 반대했다.

 

재미난것은 호엔촐레른가문은 살리카법과 귀천상혼제를 동시에 인정하고 있는 가문이다. 호엔촐레른 가문 법을 엄밀하게 따지자면 미하이의 딸들에게 계승권리가 없다면 파울 필리페 역시 계승권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루마니아의 미하이 전 국왕

평생 골치아팠던 아부지도 부족했나 보군요..--;;;

 

사진출처

언제나 그렇듯이 위키 미디어 커먼스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Michael_I_of_Roma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