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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드 스탈

엘아라 2011. 5. 12. 06:3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데지레. 1

저자
안네마리 셀린코 지음
출판사
서커스 | 2007-08-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나폴레옹 첫사랑,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나폴레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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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지레에 보면 베르나도트가 교류한 여성중에 마담 드 스탈이 나옵니다. 사실 베르나도트는 살롱에 인기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살롱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만 연애질에는 그다지 관심없었다고 합니다. 마담 르카미에같은 경우에는 데지레에게 "당신 남편은 나랑 단둘이 있으면 왜 정치이야기만 하려하죠?"라고 이야기했을정도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런 살롱에서 교류한 인물중 하나가 마담 드 스탈입니다. 마담 드 스탈은 베르나도트에 호의적이었던 사람중 하나였는데 베르나도트가 반 나폴레옹파의 우두머리 비슷한 상태여서 그런듯해요.

 

어쨌든 마담 드 스탈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안 루이즈 제르맨 네케르 : 마담 드 스탈-홀슈타인

 

 

마담 드 스탈

 

마담 드 스탈은 원래 안 루이즈 제르맨 네케르라는 이름으로 1766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자크 네케르는 원래 스위스 출신의 은행가이자 지주였는데, 루이 16세의 재무장관으로 프랑스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 인물이었죠. 하지만 네케르의 개혁은 실패했고 결국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게 되죠.  마담 드 스탈의 어머니는 수잔 쿠르코드로 역시 스위스 출신의 재능있는 여성이었다고합니다. 그녀가 영국에 머물렀을때 에드워드 기번이 그녀에게 반해서 청혼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남편을 따라 파리에 온 그녀는 살롱을 열었으며 그녀의 살롱은 구신분제에서 가장 유명한 살롱중 하나였습니다. 마담 드 스탈은 둘의 외동딸이었습니다.

 

 

 

 

마담 드 스탈의 부모

 자크 네르케와 그의 부인인 수잔

 

 

어린시절 마담 드 스탈은 어머니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마담 드 스탈의 어머니는 뛰어난 외모에 재능도 있었던 여성이었지만, 딸의 재능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고 자신의 어린시절 교육을 그대로 답습시키려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고전적 미인이었던 어머니 수잔과는 달리 마담 드 스탈은 그냥 평범한 외모의 여성이었기에 더욱더 실망스러워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담 드 스탈은 어린시절부터 독서나 공부에 매우 열중했고, 아주 어린 나이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마담 드 스탈은 매우 예민한 소녀였으며 우울함이나 다른 깊은 감정에 급속도로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열네살때 모습

 

재산이 많았고 재능있는 소녀였던 마담 드 스탈은 혼기에 이르렀을때 여러명과 혼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스웨덴 외교관이었던 에릭 마그누스 스탈 폰 홀슈타인 남작과 결혼합니다. 이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결혼이었는데, 영국 수상이 되는 윌리엄 피트(소피트)가 그녀를 신부감으로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을정도였던 그녀에게 이름도 잘 안 알려진 스웨덴 외교관은 남편감으로 실망스러운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스탈 폰 홀슈타인 남작은 어쨌든 외교관이었기에 스웨덴 국왕의 승인이 필요했고 국왕은 이를 승인합니다.

 

 

에릭 마그누스 스탈 폰 홀슈타인 남작

(홀슈타인의 에릭 마그누스 스탈 남작이라는거 보니 홀슈타인쪽 공작 누군가가 남작 지위를 준듯하네요-0-;;;)

 

부부는 열일곱살차이났는데, 서로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남편인 남작은 단지 마담 드 스탈의 재산이 주요 목적이었고 마담 드 스탈 역시 자신의 프랑스에서 얻을수 있는 남편감보다 궁정에서 지위가 더 높은 외국 외교관과 결혼해서 사교계와 궁정에서 더 높은 지위를 얻는것이 목적이었기때문이라고 합니다.

 

혁명이 일어난 초기, 아버지가 스위스로 떠난뒤에도 프랑스에 남아있었던 마담 드 스탈은 결국 1792년 스위스로 도피합니다. 마담 드 스탈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이야기하지만, 생명의 위협이 될만한 일이 있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귀족출신들이 많이 처형당하던 그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고 마담 드 스탈 역시 마찬가지였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그녀는 스위스에서 살롱을 열었으며 많은 프랑스 망명객들이 이 살롱에 드나듭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은 친구들을 따라 영국에 가기도 합니다. 한편 네덜란드에 있던 그녀의 남편은 다시 스웨덴 국왕의 명으로 프랑스 공화국 대사로 프랑스로 가죠. 이에 마담 드 스탈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저작활동을 하고 살롱을 여는등의 생활을 했습니다. 이때 그녀는 처음으로 나폴레옹을 만났는데 둘다 정치적 이유로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1797년경 마담 드 스탈은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으며, 1799년 남편은 스웨덴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1802년 사망하죠. 하지만 마담 드 스탈은 남편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나폴레옹과 마담 드 스탈의 사이는 점점 벌어져갔는데, 둘다 정치적 이유였습니다. 나폴레옹은 마담 드 스탈에 대해서 그녀는 "사람들이 전에 절대 생각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나,생각하는 법을 잊은 사람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과의 불화과 계속되는 와중 마담 드 스탈은 그녀의 가장 유명한 소설인 델핀을 씁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추방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만 나폴레옹은 그녀에게 파리에서 40리그 이상 떨어진 곳에서만 거주하도록 명합니다.(리그라는 단위는 보통 사람이나 말이 한시간동안 걸었을때 가는 거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약 4km정도라고 하네요) 이때문에 마담 드 스탈은 독일로 가는수밖에 없었죠.

 

 

1806년의 나폴레옹

..나폴레옹 아니고 형인 조제프나같아요.-0-;;;

하지만 이 초상화가 나폴레옹의 아들묘에 걸려있다고 하더라구요.

뭐 형제니까 닮았겠죠.. 

 

독일을 떠돌아다니다가 다시 스위스로 간 마담 드 스탈은 황제의 명을 어기고 1807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몰래왔지만, 결국 황제는 다시 그녀가 온것을 알아차렸고,경찰은 그녀에게 스위스로 돌아가라고 하죠. 어쨌든 여름을 지낸후 다시 독일을 여행하고 스위스로 돌아갑니다.

마담 드 스탈은 1812년 아들을 낳습니다. 이 아이는 그녀보다 23살이나 어린 스위스 군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녀가 죽은후에야,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와 1811년 정식으로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만, 살아있을때는 절대 결혼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1812년 봄 그녀는 비밀리에 베를린을 거쳐 빈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러시아와 다른 동유럽나라들을 여행합니다. 그리고 핀란드와 스웨덴을 거쳐 영국으로 갔고, 1813년 왕정복고가 이루어지자 다시 파리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백일천하가 되자 그녀는 서둘러 다시 스위스로 갔으며 이후 자신과 두번째 남편의 건강을 위해 이탈리아로 갔고, 바이런경은 이곳에 자주 들렀다고 합니다. 1816년-1817년 겨울 시즌 그녀는 건강이 나빴지만 파리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1817년 7월 마담 드 스탈은 사망합니다. 그녀의 두번째 남편 역시 그녀보다 여섯달 정도 더 살았다고 합니다.

 

 

마담 드 스탈이 살았던 스위스의 집

 

마담 드 스탈의 딸인 알베르틴은 4대 브로이 공작과 결혼했습니다. 그녀의 손자가 바로 노벨상 수상자이자 "물질파이론"으로 유명한 드브로이입니다. (드브로이는 5대 공작의 아들로 형이 죽자 7대 공작이 되었습니다.)

 

 

딸과 함께 있는 마담 드 스탈

이 딸이 알베르틴인가 봅니다.=0-;;;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Ch%C3%A2teau_de_Coppet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Madame_de_Sta%C3%A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