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왕자 결혼 특집]영국 왕실의 결혼...루이즈 공주 :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딸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딸은 루이즈 공주였습니다. 여왕은 헬레나 공주가 결혼한뒤 루이즈를 자신의 개인비서로 데리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여왕의 딸들중 가장 반항아였으며 문제아였던 루이즈는 어머니와 함께하는 답답한 삶을 견디기 힘들어했습니다. 루이즈는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을 설득해서 미술학교에 다니는것을 허락받을 정도였습니다. 여왕은 루이즈가 자신곁에서 남아서 평생 같이 살거라는 기대는 그다지 하지 않았을듯합니다.
1860년대의 루이즈
전 어릴땐 자매들보다 그렇게 안예쁜거 같은데 성인이 되어서는 루이즈가 제일 예쁘다는 생각을 합니다.
루이즈가 결혼할 나이에 이르자 여러곳의 혼담이 들어옵니다. 영국 공주라는 잇점은 많은 왕가와의 혼담을 오가게 만들죠. 가장 중요한 혼담은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태자와의 혼담이었습니다. 올케였던 웨일즈 공비 알렉산드라가 자신의 오빠와 시누이를 결혼시키길 바랬습니다.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덴마크와 영국와의 유대관계를 강화하는것이었죠. 하지만 여왕은 덴마크와의 혼담은 골치아픈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에 더 개입할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반대합니다. 네덜란드의 오라녜공 역시 혼담의 대상이었습니다만, 언니 헬레나와 같은 결과가 나오죠. 다른 사람으로 언니인 빅키가 소개한 프로이센의 알베르히트 왕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엔촐레른 가문과 영국 왕가는 그다지 맞지 않았고, 루이즈도 알베르히트 왕자에 관심없었으며, 알베르히트 왕자도 영국에 사는것을 원치 않았기에 혼담은 없었던것이 됩니다.
루이즈는 집을 벗어나는것이 결혼밖에 없다는것을 알았으며, 결국 남편감을 찾아냅니다. 바로 아가일 공작의 후계자인 론 후작 존 캠벨이었죠. 그는 왕족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귀족이었습니다. 영국(잉글랜드)공주가 신하인 귀족과 결혼한 예는 튜더시대까지 올라갑니다. 헨리7세의 딸이자 헨리8세의 여동생이며 프랑스 왕비였던 메리 튜더가 남편인 프랑스 국왕이 죽은후 서퍽 공작이었던 찰스 브랜든과 결혼한것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신하와 결혼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가장 반대가 심했던 사람은 오빠인 웨일즈공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나 딸들이 왕족이 아닌 신하와 결혼하는것에 거부감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때문에 동생의 결혼에 더이상 반대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존 캠벨의 아버지이자 아가일 공작이었던 조지 캠벨은 당시 수상의 열렬한 후원자였으며 이때문에 루이즈 공주와 존 캠벨의 결혼이 정치 논쟁으로 발전할수 있을것을 우려했던것이죠.
루이즈와 론 후작은 1870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약혼합니다. 이때 론 후작은 발모랄로 초대받았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사돈인 독일의 아우구스타 황후에게 이 약혼에 대해 정치적으로 독일의 작은 왕가 출신의 남자보다 더 환영받을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론 후작이 안정적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혈통의 고귀함에서는 독일의 작응 왕가 출신의 왕족에 못지 않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루이즈와 존 캠벨의 약혼사진
하지만 여왕은 루이즈의 결혼식을 바로 하지 않고 다음해로 결정합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가 아직 어려서 비서역할을 충분히 할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좀더 돌봐줄 인물이 필요했었던 여왕은 가능한한 오래도록 결혼을 늦추는것이 최선이었겠죠.
루이즈와 존 캠벨과의 결혼은 1871년 3월 21일 윈저 성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거행됩니다. 영국 귀족과 영국 공주와의 결혼을 보기 위해 수많은 군중들이 몰렸고, 영국 경찰은 군중을 통제하기 위해 처음으로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자신이 디자인한 호니턴 베일을 쓰고, 어머니와 오빠들인 웨일즈 공과 에든버러 공작의 인도하에 결혼제단으로 갔습니다. 이때 특이한 점은 빅토리아 여왕의 차림새였습니다. 이전까지의 결혼식에서처럼 여왕은 상복을 입고 가터훈장을 했습니다만, 이전과는 달리 유색보석인 루비를 착용했다고 합니다. (상중에는 유색 보석을 착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로 진주나 다이아몬드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결혼식이 끝난후 여왕은 루이즈에게 키스했고, 론 후작은 여왕의 손에 키스했습니다.
여왕은 사위인 론 후작에게 따로 왕실 공작 지위를 내려주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론 후작은 아가일 공작의 후계자였으며, 자신의 지위가 낮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루이즈와 존 캠벨의 결혼은 정치적으로는 나름 성공했지만, 결혼생활을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루이즈는 아이를 가질수 없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루이즈가 어린시절 병을 앓아서 아이를 가지지못햇다는 이야기와 존 캠벨이 동성연애자여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존 캠벨이 캐나다 총독이 된후 루이즈도 그를 따라 캐나다에 갔지만, 얼마후 영국으로 혼자 돌아와버려서 캐나다 국민들이 엄청나게 실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남편과의 불화와 영국을 그리워했던것이 원인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캐나다 국민들에게 공주가 캐나다를 싫어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것이죠. 결국 이런 이유로 존 캠벨도 캐나다 총독직에서 물러나야했습니다.
결혼후 루이즈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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