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책을 뒤지던중에 발견한 책이 바로 데지레 클라리 전기입니다.
베르나도트 전기가 베르나도트 장군 중심의 전기였다면 이책은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궁정을 중심으로 나오는 전기입니다. 때문에 프랑스사는 아예모르는 저는 역시나 무슨소린지 갈피를 잡을수 없습니다. ㅎㅎㅎ (베르나도트 전기를 읽다가 당췌 무슨 사건인게야..라고 외쳤더니 데지레 전기에서는 데지레 이야기좀 하라고..라고 외친다죠..)
어쨌든 이 책을 보고 데시데리아 왕비 이야기를 써볼까합니다.
그런데 책 내용의 상당부분이 소설 "데지레"와 일치하는 서술이 많네요.
아마도 소설이 이책을 많이 참조한듯합니다. (소설은 1940년대던가 나왔고 이책은 1910년대 출판)
1.어린시절
베르나르딘 외제니 데지레 클라리는 프랑스 대혁명 직전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시절은 무서운 폭풍이 밀어닥치기 직전처럼 어둡고 불안했다. 프랑스 전역에 걸쳐서 혁명의 기운이 감돌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길것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엄청난 대변혁에 직면해있었다.
데지레가 태어났던 때는 프랑스에서 아직까지 구 신분체제의 법률과 관습 제도등이 프랑스 전체에 적용되던 시기였다. 프랑스에서 장남은 상속뿐만 아니라 교육에 있어서도 다른 형제들보다 특권을 누렸다. 귀족 조차도 장남이 아닐경우는 재산을 물려받을 기회도 없었고, 교육의 기회도 없었다. 이런 부족한 교육을 받은 귀족들의 아들들은 전문직인 사제나 군인이 될수 없었고, 부유한 부인을 맞지 못한다면 형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수 밖에 없었다. 여성들의 경우는 남성들보다 더 심각했는데 딸들은 아버지나 오빠 남편의 보호를 필요로했고, 어머니나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을수는 있었지만, 결혼은 본인이 아니라 부모의 뜻에 따라 해야만했다. 여성들은 결혼할 나이가 될때까지 수녀원에 보내져서 교육받았고, 혼기를 놓칠경우는 그대로 수녀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프랑스 여성들의 결혼 연령은 매우 어렸는데 13살이나 14살에 여성들이 결혼하는 경우도 흔했다.
데지레의 아버지인 프랑수아 클라리 역시 이런 관습을 따르던 사람이었다. 그는 가족의 가장으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자녀들과 부인에게 절대적인 사람이었다.
프랑수아 클라리는 마르세유의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고, 가족의 부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프랑수아 클라리는 두번 결혼했고 두번의 결혼으로 열세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첫번째 부인에게서 세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두 딸은 신분이 높은 이와 결혼했고 아들인 에티엔은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두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중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일곱이었는데 그중 큰딸은 마르세유 시장과 결혼했다. 이 두번째 부인이 낳은 셋째 딸은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부인이 되는 쥘리였고, 막내딸이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데지레였다.
쥘리와 데리제는 언니 오빠들과 나이차이가 꽤 났다. 이때문에 자매는 다른 형제들보다 특히 친했다. 하지만 자매들은 다른 언니 오빠들과도 잘 지냈으며, 성인이 되어 엄청난 지위에 오르게 된후에도 친정가족들을 돌봐주는데 힘썼다.
프랑수아 클라리는 전통대로 어린 두 딸들을 수녀원에 보내서 교육을 받게 했다. 하지만 수녀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혁명이 일어났고, 수녀원은 문을 닫았다. 데지레와 쥘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부모와 함께 살았다.
데지레의 어린시절은 혁명의 소용돌이에 어두움이 드리워진 삶이었다. 가장 큰 비극은 오빠인 저스티엔의 자살이었다. 혁명이 일어난후, 부유한 상인들 역시 혁명정부의 숙청대상이 되었다. 수많은 상인과 그 상속자들이 투옥됐으며, 1793년 여름에서 1794년 봄까지 길로틴에서 숙청당한 상인은 400명이 넘었다.
클라리 가문 역시 불안감을 지울수 없었다. 수많은 친구와 친척들이 체포되거나 나라를 떠나야했다. 그중에는 데지레의 형부이자 전 마르세유 시장이었던 앙투안 이그나스 안토니도 포함되었다. 그는 똑똑하고 엄청나게 부유했으며, 시장이 된후 마르세유를 위해 자신의 돈을 많이 썼었다. 하지만 혁명이후 그는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프랑스를 떠나 제노바에 피신해야했다.
이런 불안한 상황을 열아홉살이었던 저스티엔 클라리는 견디지 못했고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가족들은 그가 없어진 3일후 집 정원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다양한 친구들과 연줄 그리고 엄청난 재산은 클라리가를 보호해주었다. 데지레의 아버지인 프랑수아 클라리는 1794년 사망했다. 그는 어린 자녀들에게 엄청난 재산을 물려주었고, 자신의 사업체는 장남에게 물려주었다. 장남인 에티엔은 동생들과 새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모여살았고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이런 가족의 결합은 클라리가의 결속을 가져다 주었고, 어려운 시기를 가족들과 견디게 하는듯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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