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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루이제 여대공(전 작센의 왕태자비)

엘아라 2009. 6. 26. 19:2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그넘의 키워드 유입이 뭔지..-0-;;;

하여튼 저도 작센 루이제 대공비를 검색했다가 작센의 루이제 대공비--;;;라고 표기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음악가인 엔리코 토셀리에 대한 항목에서 그가 작센의 루이제 대공비와 결혼했다고 나오더라구요. 어랏 누구시지라면서 뒤져봤는데 토셀리가 결혼한 그분은 정확히 작센의 대공비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이었고, 작센의 왕태자비였던 사람입니다. 저도 예전에 그분 스캔들에 경악!!했었다죠...ㅎㅎㅎ

 

 

 

 

투스카니의 루이제

오스트리아의 루이제 여대공

전 작센의 왕태자비

Luise of Tuscany

(2 December 1870 in Salzburg–23 March 1947 in Brussels)

(Luise Antoinette Maria Theresia Josepha Johanna Leopoldine Caroline Ferdinande Alice Ernestine)

 Princess Imperial and Archduchess of Austria, Princess of Tuscany, Hungary and Bohemia

 

루이제 여대공은 투스카니의 대공인 페르디난트4세와 그의 부인인 부르봉-파르마의 알리체(앨리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투스카니의 대공은 합스부르크가의 후손이었고, 따라서 오스트리아의 대공칭호를 사용했죠. 루이제 역시 합스부르크가의 분가로 오스트리아 황실과 친척관계였습니다.

그녀는 1891년 작센의 왕태자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일곱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녀는 작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궁정예법을 다 따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녀의 시아버지인 작센의 국왕은 그녀를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루이제의 남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후에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3세 

 

1902년 모두가 경악할만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임신중이던 루이제 왕태자비는 오빠의 도움을 받아 작센에서 야밤도주를 감행합니다. 그녀의 시아버지가 그녀를 요양원에 집어넣으려했기때문입니다만 문제는 그녀 아이들의 프랑스어 가정교사와 함께 야밤도주했다는것입니다. 

루이제는 임신중이었기에, 딸인 안나 피아가 태어난후 이 아이는 작센왕가에서 키웠다고 합니다. 왕태자는 안나 피아를 자신의 친딸이라고 인정했지만, 모두들 마리아가 왕태자의 딸이 아니라 같이 야밤도주한 프랑스어 가정교사의 딸이라고 수근댔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진을 보면 아버지인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3세와 붕어빵입니다.--;; 아이도 아마 저런 소문을 듣고 자랐을텐데...진짜 상처받았을듯하더라구요. 다행히 아버지랑 똑같이 생기는 바람에 소문이 줄어들었을듯합니다만 그전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수근댔을지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1903년 그녀는 왕태자와 정식으로 이혼했습니다. 이후 1907년 런던에서 음악가인 엔리코 토셀리와 재혼합니다만 오년후 다시 이혼하죠. 토셀리와의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있다고 합니다.

 

합스부르크가의 수장이었던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이런 스캔들을 일으킨 그녀에게서 왕족타이틀들을 박탈했고, 루이제의 아버지인 투스카니의 대공이 딸을 위해 Countess of Montignoso직위를 마련해주었다고 합니다. 루이제는 작센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려했다고 합니다만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3세의 신하들은 이에 반대했고, 결국 작센 대사관에서 아이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는것이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들은 그 누구도 후에 어머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11년 루이제는 자신의 일에 대한 저작물을 출판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작센에서 남편과 시아버지보다 더 인기가 있었고,(실제로 그랬다고합니다.) 때문에 궁정의 질시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자신이 왕비가 될것을 두려워했기에, 시아버지가 자신을 요양원에 집어넣으려했고 그때문에 도망칠수 밖에 없었다면서 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했고, 자신을 베르사유 궁정에서 거부당했던 마리 앙투와네트와 비슷한 처지였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야밤도주는 모두에게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스캔들에 민감한 왕가에서는 치명적이었는데, 루이제의 여동생들은 모두 혼담이 끊어졌고 대부분 독신으로 살아야했다고 합니다. (여동생들이 10살정도 차이가 나서 루이제가 야밤도주할때쯤에 결혼적령기였습니다.) 그리고 종교예식으로 결혼을 무효화하지 않았기에 카톨릭이었던 루이제의 전 남편은 자신이 결혼한 상태라고 여겼으며 재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 다음 카페 로열하우스의 율리아님의 글 "작센 루이제 왕태자비 스캔들"

http://cafe.daum.net/yulia0818

그림출처

위키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