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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루이제 대공비(헤센-다름슈타트의 루이제)

엘아라 2009. 6. 26. 18:33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키워드 검색에 보면 작센 루이제 대공비를 검색하셔서 오신분들이 있더라구요.

제가 아는 루이제 대공비는 독일의 빌헬름1세의 딸인 바덴의 루이제 대공비밖에 없는데 검색하신분들때문에 작센의 루이제 대공비를 찾아봤습니다.

작센은 수많은 분가들로 분할되어있었는데, 작센이 들어가고 대공칭호를 쓴 가문으로 바로 떠오르는 가문은 빌헬름1세의 황후인 아우구스타 황후의 가문이었죠.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작가문은 아우구스타 황후의 할아버지인 카를 아우구스투스때부터 대공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보통 작센-바이마르 대공으로 표기되는데 아이제나흐역시 공작령이었다고 합니다.

독일의 아우구스타 황후의 부모는 작센-바이마르의 대공인 카를 프리드리히와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이었습니다. (마리야 여대공은 파벨1세의 딸입니다.) 할아버지가 대공 카를 아우구스트와 헤센-다름슈타트의 루이제 아우구스테였다고 합니다.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대공비 루이제

헤센-다름슈타트의 루이제

Louisa Augusta of Hesse-Darmstadt

Luise von Hessen-Darmstadt

(30 January 1757, Berlin - 14 February 1830)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비인 루이제는 헤센-다름슈타트의 란트그라프(지방백)인 루드비히9세와 팔츠-츠바이브뤽켄의 카롤리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카롤리네의 가문은 팔츠-츠바이브뤽켄-비르켄펠트가문으로 카롤리네의 동생인 프리드리히 미하엘의 아들이 바로 바이에른의 초대국왕이 되는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입니다.)

헤센-다름슈타트가문 출신이었지만, 그녀가 태어났을때 그녀의 아버지인 루드비히는 아직 란트그라프령을 물려받기 전이었기에 프로이센군에서 7년전쟁에 참가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프로이센의 수도였던 베를린에서 출생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루드비히9세는 아이들에대해 관심이 적었기에, 어머니인 헨리에테 카롤리네가 아이들을 돌봤고, 전적으로 교육을 담당했으며, 후에 결혼 역시 관여했다고 합니다.

루이제는 언니들인 아말리,빌헬미네와 함께 러시아의 에카테리나2세의 초대를 받았는데, 이 세자매중 아들 파벨의 부인을 고르기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언니인 빌헬미네가 파벨대공의 부인이되었지만, 그녀는 러시아로 여행하고 오는길에 작센-바이마르 공작의 어머니이자 섭정이었던 안나 아말리아를 만나게 되었고 이 부인과 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루이제는 18살이 되었던 1775년에 작센-바이마르의 공작인 카를 아우구스트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정략결혼으로 그녀의 언니들이 프로이센 왕태자비, 러시아의 황태자비였기때문이었죠. 결혼은 매우 불행했는데, 루이제는 작센-바이마르 궁정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시어머니인 안나 아말리아의 그늘에 가려져있었다고 합니다. 또 남편과의 사이도 그다지 편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남편은 오랫동안 사랑하고 관계를 유지한 정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제는 작센-바이마르의 장관이자 궁정시인으로 있던 괴테와 친분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루이제는 모두 일곱아이를 낳았는데 세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사망했습니다. 세아이중 큰 아들인 카를 프리드리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센-바이마르의 대공되었고,  딸인 카롤리네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후계자와 결혼했으며 막내인 베른하르트는 매우 뛰어난 군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루이제의 남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대공 카를 아우구스투스

 

루이제는 나폴레옹전쟁때 매우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았는데,프로이센과 작센지방이 나폴레옹의 영향력아래 들어가게된 예나전투이후 삶이 크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예나전투후 나폴레옹의 군대가 바이마르로 왔고, 작센-바이마르의 다른 왕족들은 모두 프로이센으로 도망가거나 탈출했다고합니다. 하지만 루이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바이마르에 남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작센-바이마르 공작이 프로이센군에서 복무하는것을 그만두라고 요구했지만, 루이제는 완고하게 남편이 그럴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센-바이마르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의 영향력인 라인연방에 가입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관대한 조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나폴레옹이 루이제에게 호감을 느껴서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치적 상황이 어쩔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이후 루이제는 작센-바이마르를 이끌어가는 인물중 하나가 되었고, 그녀의 신하들은 그녀를 "바이마르의 전설"이라는 이미지 퍼트리고 지속했다고 합니다. 루이제는 외교 관계에 매우 열정을 쏟았는데 나폴레옹전쟁이후 비엔나 회의에서 작센-바이마르의 영토를 지켜냈을뿐아니라 "대공"칭호를 쓸수있게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또 아들과 러시아의 여대공과의 결혼식역시 주선했다고 합니다.

 

 

루이제의 세아이들

베른하르트,카롤리네,카를 프리드리히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