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알렉산드르2세의 장남)

엘아라 2009. 5. 28. 22:35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알렉산드르2세에게는 매우 자랑스러워했던 후계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장남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었죠. 그는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신하들에게는 "러시아의 희망"으로 불렸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이때문에 알렉산드르2세는 매우 큰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러시아의 알렉산드르2세의 장남

Tsarevich Nikolay Aleksandrovich Romanov

(Russian: Цесаревич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Романов),

full title: Heir, Tsarevich and Grand Duke of Russia

(Russian: Наследник-Цесаревич и Великий Князь)

(20 September [O.S. 8 September] 1843 — 24 April [O.S. 12 April] 1865)

 

러시아의 황태자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후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2세가 되는 황태자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그의 부인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헤센-다름슈타트의 마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같은 애칭인 닉사(Nixa)로 불렸다고 합니다.

어린 대공의 할아버지였던 니콜라이1세는 자신의 할머니 예카테니리나2세가 형인 알렉산드르1세를 직접 교육시킨것과 같이 자신도 손자의 교육에 관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니콜라이1세는 할머니를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니콜라이 대공의 부모

러시아의 알렉산드르2세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

 

똑똑했던 닉사는 이미 어린시절부터 황제가 될만한 성격을 보여줘서 할아버지 니콜라이1세를 기쁘게 했다고 합니다. 어린 니콜라이 대공은 어느날 아버지에게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겠다고 버텼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인 황태자는 황제 앞에서 어린 아들을 꾸짖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겠다면 외국과 조약을 맺을때 어떻게 할꺼냐"라고 야단치는 아버지에게 어린 대공은 "통역관을 쓰면돼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말을 들은 황태자는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얘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 유럽이 널 비웃을꺼란다"라고 하자 어린 대공은 "그렇게 되면 전 전 유럽에 선전포고 할꺼예요"라고 말해서 황제를 기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어를 배웠고 매우 잘 했다고 합니다.

 

누나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과 함께 있는 니콜라이 대공 

 

총명했던 닉사는 늘 다른이들에게 사랑받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2세는 이런 아들을 늘 자랑스러워했고, 닉사의 가정교사들은 닉사를 '러시아의 희망'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연약했던 어머니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를 닮아서 연약했다고 합니다. 닉사의 바로 밑의 동생이자 가장 친했던 동생이자 사샤라는 애칭의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이런 형과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매우 건장한 체격을 가졌고, 형만큼 똑똑하지 않았기에 비슷한 또래였지만 형과 같이 공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 대공은 군대와 가족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고, 사교생활도 즐기지 않아서 형이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을때, 나이든 노인들과 함께 형의 모습을 구경하는것에 만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샤는 똑똑한 자신의 형을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닉사 역시 자신을 잘 따르는 동생을 아꼈죠.

 

 

니콜라이 대공의 동생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건장한 그는 표트르 대제 이후 가장 키가 큰 황실 가족이었고, 황실에서는 그를 "불독"이라고 불렀으며 숙부는 "퍼그"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퍼그 시절의 얼굴을 좋아합니다..-0-;;;;)

ㅎㅎㅎ 나중에는 곰같이 변하시죠..--;;; 

 

닉사가 결혼할 나이에 이르렀을때, 그는 한 공주와 미칠듯한 사랑에 빠집니다. 바로 미니라는 애칭의 덴마크의 다그마르 공주였죠. 그녀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9세의 딸로 언니 알렉산드라는 당시 웨일즈 공비였습니다.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곧 약혼이 발표되죠.

 

닉사와 미니 공주님 

 

하지만 곧 비극이 닥치게 됩니다.

고모 마리야의 아들인 로마노프스키공인 니콜라이가 놀러왔고, 그는 황태자와 함께 레슬링을 하고 놀고 있었고, 동생인 사샤는 둘을 구경하고 있었죠. 레슬링을 하다가 황태자는 대리석 탁자 모서리에 등을 부딪혔고, 숨을 못쉴정도였죠. 놀란 사샤는 의사를 데려와야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 직후, 약혼녀인 미니가 닉사를 방문합니다. 황실가족들은 황태자의 약혼녀와 여우사냥을 갔는데, 이것이 닉사의 상태를 악화시킵니다. 그는 고통때문에 말타는것을 힘들어했고, 고통때문에 황제의 물음에 대답도 할수없었고, 낙마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닉사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는데, 살이 빠졌고 똑바로 걸을수도 없었습니다.황제는 아들이 노인처럼 허리를 굽히고 걷는것을 보고 아들에게 호통을 쳤고, 닉사는 등을 똑바로 펼려고 했지만, 닉사의 고통은 더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의사가 불려왔고 황실가족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닉사의 척추가 손상되었고, 그 손상으로 뼈에 결핵균이 퍼진것이었습니다.

 

요양을 위해 닉사는 니스로 보내졌고, 늘 형 곁에 있던 동생 사샤는 형을 따라가 간호하게 해달라고 했죠. 하지만 1856년 4월 황제는 끔찍한 소식을 받습니다. 병이 뇌까지 퍼져서 손쓸수 없게 되었다는것이었죠. 닉사의 약혼녀가 있는 코펜하겐으로 황급히 전보가 보내졌고, 황실가족들은 모두 닉사를 보기 위해 서둘러 니스로 갔습니다. "우리는 여행하는 동안 오직 하나만을 생각했다. - 신께서 우리에게 아직 살아있는 그를 보도록 허락하시길 바랬다.... 기차는 미칠듯한 속력으로 달렸다." 황실가족과 동행했던 가정교사중 한명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기차는 프로이센에서 잠시 멈췄고, 황제는 외숙부인 빌헬름 국왕을 만났지만 서로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닉사의 약혼녀와 그 어머니가 도착해서 황실가족들과 같이 니스로 향합니다.

황실가족들은 3일 밤낮을 달려서 니스에 도착했는데 당시에 상트 페테스부르크에서 니스까지 3일만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황실 가족들이 도착했을때 니스의 역에는 슬퍼하는 러시아인들로 꽉 차있었다고 합니다.닉사가 죽어가던 침상으로 황실가족들이 갔습니다. 어머니인 마리야 황후는 죽어가는 아들에게 키스했죠.

 

4월 12일 닉사는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만납니다.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약혼녀가 무릎을 꿇고 그의 뺨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본 닉사는 황제에게 '아버지 사샤를 잘 돌봐주세요. 사샤는 정말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예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닉사는 자신의 계승권을 사샤에게 넘긴다는 의미로 그의 머리에 손을 얹을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약혼녀와 동생의 손을 닿게 하려고 하면서 어떤 말을 남겼고 황후는 그 말을 의사에게 불러주었는데 프랑스어로 "그녀를 잘 부탁한다"였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음 부모인 황제와 황후, 약혼녀인 다그마르 공주 뿐만 아니라 동생인 사샤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다그마르는 약혼자가 죽은후 덴마크에 있던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 특히 바로 밑의 동생인 사샤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었답니다... 사샤에게 그는 형뿐만아니라 단 하나인 가장 좋은 친구였죠. 불쌍한 그는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답니다. 그는 사랑했던 형의 자리를 대신해야하니까요."

 

 

1864년의 미니 공주님 

 

러시아 황실에서 사샤에 대한 평가는 "단순무식"이었습니다. 그는 공부나 정치에 흥미가 없었고 똑똑한 형과 무척이나 비교되었습니다. 심지어 황제의 숙모였던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는 황태자를 사샤가 아닌 사샤의 동생 블라디미르 대공으로 하라고 간청할정도였습니다. (형제들중 닉사를 제외하고는 블라디미르 대공이 제일 똑똑했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황제의 눈에는 죽은 아들 외에는 다 고만고만했죠. 황제는 죽은 아들의 유언을 기억했고, 결국 사샤는 황태자가 됩니다. 그를 가르치기 위해 수많은 가정교사가 붙어야했고, 그 가정교사들 중 한명은 사샤를 가르치는것에 대해서 "우리는 희망없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둘째아들 알렉산드르 대공과 함께 있는 알렉산드르2세 부부

 

사샤는 형의 지위 뿐만 아니라 형의 약혼녀 역시 받아들여야했습니다. 황제와 황후, 사샤와 다그마르는 모두 닉사의 유언을 기억했죠. 형이 죽을 당시 사샤는 어머니의 시녀인 마리야 메쉬체르스카야 공녀와 사랑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는데, 굉장히 순정적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녀를 그리워했던 그는 시종에게 그녀의 슬리퍼를 가져다 달라고 했고, 그것을 간직하고 있을정도였죠.  사샤가 황태자가 아니라 그냥 대공이었다면 그녀와 귀천상혼을 허락받을수도 있었을테지만, 이제 그는 황태자였고 파벨1세가 정한 계승법에 따라 통치 군주 가족과 결혼해야했죠. 황제는 사샤에게 다그마르에게 청혼하라고 명했고, 사샤는 고민하다가 마리야 공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황위를 포기할수도 있다고 아버지께 말합니다. 이에 황제는 대노해서 마리야 공녀를 궁에서 내보냈고, 사샤에게 당장 코펜하겐으로 가라고 명합니다.

 

코펜하겐으로 간 사샤는 형의 아름다운 약혼녀를 보았고, 그녀에 대한 감정이 변한것을 느낍니다. 덴마크에서 다그마르를 만난 사샤는 "나는 다그마르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형이 내 생애 행복을 위해 마련한 것에 대해서 매일 기도한다"라고 적고있습니다.

 

 

사샤와 미니 

 

사샤는 덴마크의 미니공주와 결혼했고, 사샤와 미니 모두 닉사가 자신들의 결혼을 바랬다고 여겼다고합니다.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자료출처

1.Alexander II: The Last Great Tsar (라진스키,2006)

2.위키피디어

3. 다음 카페 로열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 율리아님의 번역글 "리틀마더 오브 러시아"(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전기)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