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올가라는 이름의 여대공과 대공비

엘아라 2009. 2. 10. 08:14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쓰려던 글을 써볼까합니다.

 

첫번째 올가는 파벨1세의 딸로 어려서 사망한 올가 파블로브나입니다.

 

Grand Duchess Olga Pavlovna (22 July 1792-26 January 1795).

 

두번째 올가는 파벨1세의 손녀이자 니콜라이1세의 둘째딸인 올가 니콜라예브나여대공으로 후에 뷔르템베르크의 왕비가 됩니다.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뷔르템베르크의 왕비

Grand Duchess Olga Nikolaevna of Russia (September 11, 1822 – October 30, 1892),

Олга Николаевна Романова

....자매들이 나이가 들수록 아부지인 니콜라이1세를 닮아간다죠...--;;;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니콜라이1세와 그의 부인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프로이센의 샤를로테)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몇개국어를 했으며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올가 여대공은 헤센-카셀의 빌헤름이 러시아에 왔을때 그를 마음에 들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올가의 여동생인 알렉산드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과 결혼하죠.

니콜라이1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둘째딸을 왕가로 시집보내길 바랬다고 합니다. 특히나 올가의 언니였던 마리야 여대공이 반쪽 왕족인 로이히텐베르크의 공작과 결혼하는바람에 상심했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적이었던 올가는 결국 부모의 뜻에 따라 뷔르템베르크의 왕태자와 결혼합니다.

뷔르템베르크의 왕태자인 카를은 올가와 육촌관계였습니다.올가의 할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가 뷔르텐베르크의 공주였기때문입니다.

올가의 남편이 되는 카를은 동성연애자로 공공연한 스캔들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올가는 이것을 수습하느라 애썼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과 과학을 후원했다고 합니다. 또 자선사업도 매우 활발히 했다고 합니다.

올가와 카를은 서로 불행했지만, 올가의 조카인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을 맡아 기르면서 둘다 베라에게 열성적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베라 여대공은 어린시절 도저히 손쓸수 없을정도로 문제아였다고 여겨져서 고모인 올가 왕비에게 보내졌었다고합니다.

베라 여대공이 뷔르템베르크에 와서 고모부인 카를1세를 처음 만났을때 발로 찼다고 합니다. 하지만 올가와 카를은 베라를 위해서 늘 최선을 다했고, 올가는 조카를 열심히 돌봤고, 카를은 매일 베라와 산책하고 매일 같이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베라는 평범한 처녀로 자라났고 베라의 부모인 콘스탄틴대공과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는 기적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올가와 카를은 베라를 끔찍히 사랑했기에 아예 입양을 했고, 결혼으로 뷔르템베르크를 떠나는일이 없도록 뷔르템베르크 왕족과 결혼시켰습니다. 베라는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했기에 젊은시절에 과부가 되었음에도 재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빈터할터가 그린 올가 왕비의 초상화

 

올가의 남편인 뷔르템베르크의 카를1세

 

 

 

세번째 올가는 니콜라이1세의 막내며느리가 되는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입니다. 그녀는 바덴의 체칠리에대공녀로 태어났습니다.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 

바덴의 체칠리에 대공녀 

Grand Duchess Olga Feodorovna of Russia

(Karlsruhe, 20 September 1839 - Kharkov, Russian Empire 12 April 1891)

이 그림 역시 빈터할터의 그림인데 원 그림은 2차대전때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니콜라이1세의 막내며느리였던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는 바덴의 대공인 레오폴트와 그의 부인인 스웨덴의 소피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대공비의 외할아버지는 스웨덴의 쫓겨난 국왕이었던 구스타프4세 아돌프였죠. 그녀의 원래 이름은 체칠리에였는데,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정교회식이름인 올가 표도로브나 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인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코카서스의 총독으로 20여년간을 지냈고, 가족들은 모두 그곳에서 지냈다고합니다. 모두 일곱아이들을 두었는데 고명딸인 아나스타샤 여대공은 후에 메클렌부르크-슈벨린의 대공비가 되었고, 아나스타샤의 딸인 알렉산드린과 체칠리에는 각각 덴마크의 왕비와 독일의 황태자비가됩니다.

그녀는 아들인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대공이 메렌베르크 백작녀인 조피와 귀천상혼한것에 충격받아서 쓰러졌고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죽을때까지 아들을 용서하지 않았고, 미하일 대공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는것조차 허락받지 못햇다고 합니다.

(참고로 조피는 나사우 공작의 아들이자 스웨덴의 소피아 왕비의 오빠인 니콜라우스와 그의 귀천상혼한 부인인 나탈리야 푸쉬키나의 딸입니다. 나탈리야 푸쉬키나는 푸쉬킨의 딸로 당대 유럽 최고의 미녀라는 찬사를 듣던 여성이라고 합니다.)

 

 

 

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의 남편인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

 

네번째 올가는 니콜라이1세의 손녀이자 후에 그리스의 왕비가 되는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입니다.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

그리스의 왕비

Olga Constantinovna of Russia (Russian: Великая Княжна Ольга Константиновна),

 later Queen Olga of Greece (Greek: Βασίλισσα Όλγα των Ελλήνων)

 (3 September 1851 – 18 June 1926),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은 니콜라이1세의 둘째아들이었던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그의 부인이었던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작센-알텐부르크의 알렉산드라)의 딸입니다. 첫번째로 나왔던 올가 여대공이 입양한 베라 여대공이 이 올가 여대공의 동생입니다.

그녀는 16살의 나이로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1세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는 덴마크의 빌헤름 왕자로 그리스 국왕으로 선출된뒤 정교회를 믿는 신부감을 찾고 있었죠. 콘스탄틴대공은 딸이 너무 어리다면서 결혼에 반대했지만, 게오르기오스1세의 여동생이 당시 러시아 황태자비였기에 결국 결혼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올가 왕비는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자선사업에 전념했으며 그리스인들을 위해 현대 그리스어 성경을 내는 일에도 관여했다고 합니다. 또한 다른 그리스인들처럼 올가 왕비도 독실한 정교회 신자였죠. 이런 왕비를 그리스 국민들을 매우 사랑하고 존경을 다했는데, 그리스에서 왕실가족 모두가 추방당했을때 조차도 올가 왕비에 대한 국민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왕비가 망명지에서 사망했을때, 왕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리스 정부조차도 왕비에게 애도를 보내면서 왕비의 장례식 전부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할정도였다고 합니다.

 

 

남편인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1세와 함께 있는 올가 왕비

 

남편이 죽은후 메리 스튜어트갭을 쓰고 상복을 입고 있는 올가 왕비

라즐로 작품

 

 

 

다섯번째 올가는 알렉산드르3세의 딸인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입니다.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Olga Alexandrovna of Russia

(Russian:Ольг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Романова ; Olga Alexandrovna Romanova)

(June 13 [O.S. June 1] 1882–November 24, 1960)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은 알렉산드르3세와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의 사진을 보면 아버지인 알렉산드르3세가 어린 막내딸을 안고있는 모습이 자주 보이죠.

올가 여대공은 늘 어머니와 함께 머물렀고, 오빠인 니콜라이2세와 그 가족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였다고 합니다. 오빠 부부는 물론 니콜라이2세의 딸들과 매우 친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올덴부르크 공작인 페테르 알렉산드로비치와 결혼했습니다만 그 결혼은 매우 불행했다고 합니다. 불행한 이유는 아마도 페테르가 동성연애자였기때문일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올가는 가장 친했던 오빠인 미하일 대공을 통해서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구리스코프스키 대령을 소개받았다고 합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올가는 남편에게 즉시 이혼을 요구했다고합니다. 하지만 니콜라이2세는 둘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죠. 결국 올가의 남편인 페테르는 구리스코프스키 대령을 자신의 참모로 삼았고 셋은 같은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결국 니콜라이2세는  1916년 이혼을 승락했고 올가는 이혼후  구리스코프스키대령과 결혼합니다. 두번째 남편과 키예프에 있었던 올가는 어머니와 언니 부부와 함께 그곳에서 혁명을 맞이 했고, 이모인 알렉산드라 왕비가 보낸 영국 전함을 타고 러시아를 탈출했다고 합니다.

올가는 남편과 함께 어머니인 마리야 황태후의 시중을 들면서 덴마크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망한후  코펜하겐 근교의 농장에서 가족과 함께 조용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나갈때 소련군이 덴마크근처로 진군하자 로마노프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다른곳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때문에 올가 여대공은 바다건너 캐나다로 갑니다.

캐나다의 농장에서 조용히 살았던 올가 여대공은 다른 많은 왕족 친척들이 방문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죠. 남편이 죽은후 올가는 러시아 인들의 모임에 자주 참석하면서 어린시절의 향수를 되살리다가 사망했다고합니다.

 

 

첫번째 남편과 함께

 

 두번째 남편과 함께

 

 

여섯번째 올가는 니콜라이2세의 큰딸인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입니다.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니콜라이2세의 큰딸

Grand Duchess Olga Nikolaevna of Russia (Olga Nikolaevna Romanova)

(in Russian Великая Княжна Ольга Николаевна)

( November 15 [O.S. November 3] 1895 – July 17, 1918)

 

이 올가 여대공은 니콜라이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큰딸입니다.

니콜라이2세 부부는 러시아 황실 가족들 사이에서 점점 고립되어갔으며 때문에 아이들역시 가족으로 한데 뭉쳐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자매들은 서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올가 여대공에게 몇몇 정략 결혼의 상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자신(과 자신의 언니들)이 그랬던것처럼 사랑으로 결혼하길 바랬죠. 게다가 몇몇 남자들에 대해서는 아예 퇴짜를 놓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드미트리 대공같은경우 바이섹슈얼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혼담을 없었던것으로 해버렸고, 블라디미르대공의 아들인 보리스 대공은 사촌인것이 가장 큰 문제긴 했지만, 바람둥이였기에 딸과 결혼은 말도 안된다고 여겼습니다.

올가여대공은 성인이 되었을때,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자선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1차대전이 일어나자 어머니알렉산드라 황후와 동생 타티아나와 함께 부상병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혁명이 일어나고 가족 모두는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으며 그곳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볼셰비키는 황실가족들의 시신이 발견되어서 시신이 우상화되는것을 두려워해서 황실가족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감추었다고합니다. 이후 황실가족들의 시신을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그동안 찾지 못했던 알렉세이와 마리야 여대공의 시신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동생 알렉세이와 함께 있는 올가

...이사진을 올린 이유는 같은 포즈로 알렉산드라 황후가 아들 알렉세이랑 찍은 사진이랑

엘라가 양아들이자 조카인 드미트리 대공이랑 찍은 사진이 있거든요.

배경이 같은 방인거 같답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