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러시아 황실로 시집간 헤센-다름슈타트가문 사람들

엘아라 2008. 12. 13. 02:03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전 루이즈 왕비에게 관심이 있다보니 외가인 헤센 대공가(헤센-다름슈타트)에 대해서도 관심이 좀 있답니다. 헤센-다름슈타트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가문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러시아 황실과 연결됩니다. 그럼 러시아 황실로 시집간 헤센-다름슈타트 가문 사람들을 살펴볼까합니다.

 

첫번째로 러시아 황실로 시집간 사람은 바로 헤센-다름슈타트의 백작(란트그라프) 루드비히9세의 딸이었던 빌헤미나 루이사입니다.

 

 

헤센-다름슈타트의 빌헤미나 루이사

러시아의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 대공비

파벨1세의 첫번째 부인

Princess Wilhelmina Louisa of Hesse-Darmstadt

The Grand Duchess Natalia Alexeievna of Russia (25 June 1755 - 15 April 1776)

1773년 헤센-다름슈타트의 루드비히9세와 그의 부인인 즈바이브뤽켄의 카롤리네의 딸의 세 딸들은 러시아의 예카테리나2세의 초대를 받게 됩니다. 초대를 받은 이유는 여제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파벨대공의 신부후보였기때문입니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교육을 잘 받은 세 자매들은 러시아로 갔고, 그중 가장 아름다웠던 빌헤미나가 파벨대공의 부인으로 선택됩니다.파벨대공은 빌헤미나에게 반했다고 합니다.

빌헤미나는 파벨대공과 결혼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고, 정교회식 이름인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나탈리야 대공비는 결혼초 명랑하고 쾌활함을 가지고 온 궁정을 사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곧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그녀는 러시아어를 배우는것을 거부했으며, 남편이 제위에 오르는것에만 집착했다고 합니다. 이런 권력에 대한 욕구는 남편 파벨대공에 대한 실망감에 따른것이었다고 합니다. 나탈리야는 곧 남편의 친구와 사랑에 빠졌고, 둘의 연애사건은 전 러시아궁정이 다 알았다고 합니다.

나탈리야가 임신했을때, 시어머니가 되는 예카테리나2세는 그 아이가 친손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제에게는 후계자가 탄생하는것이 더 중요기때문이었죠.

나탈리야는 긴 산고 끝에 딸을 낳았는데, 그 아이는 거의 죽은 상태에서 태어났고, 나탈리야 역시 아이를 낳은 직후 사망합니다. 남편 파벨대공은 부인의 죽음을 슬퍼했고, 제왕절개를 하지 않앗던 궁정의사들을 비난하죠. 의사들이 제왕절개만 했더라도 나탈리야가 죽지 않았을꺼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나탈리야가 죽은후 파벨대공은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와 재혼했고 둘사이에는 아홉명의 자녀가 태어납니다.

 

 

빌헤미나의 부모인 헤센-다름슈타트의 루드비히9세와 즈바이브뤽켄의 카롤리네

즈바이브뤽켄가문은 독일의 오래된 왕가중 하나로, 바이에른 왕가역시 이 가문의 분가중 하나입니다.

 

 

나탈리야 대공비의 남편인 러시아의 파벨1세 

 

 

 

 

 

두번째로 러시아 황실로 시집간 사람은 헤센의 대공이었던 루드비히2세의 딸이었던 마리 입니다.

 

 

 

헤센의 마리 대공녀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

알렉산드르2세의 황후

Marie of Hesse and by Rhine (8 August 1824 - 8 June 1880)

Maria Alexandrovna (in Russian Мария Александровна)

 

마리 대공녀는 헤센의 대공인 루드비히2세(앞의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 대공비의 조카)와 바덴의 빌헤미네 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대공의 자녀로 인정되었지만, 당시 전 유럽에서는 마리 대공녀와 그녀의 오빠인 알렉산더가 대공의 자녀가 아니라 빌헤미네 대공비의 시종무관인 프랑스인 남작의 자녀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리고 대공이 알렉산더와 마리를 친자녀로 인정한것은 스캔들을 피하기 위해서였을뿐이라고 이야기되었죠.

니콜라이1세의 후계자인 황태자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신부를 찾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죠. 외가인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여러명의 신부후보를 만납니다. 황태자는 다름슈타트를 잠시 지나갔고, 헤센의 대공은 황태자를 위해 극장에서 연회를 개최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태자는 대공의 16살된 아름다운 마리를 만나죠. 황태자는 그녀를 좀더 보기 위해 대공과 저녁식사까지 했고,아버지인 황제에게 영국에 갔다와서 헤센을 다시 방문해도 되냐는 허락을 구합니다. 곧 마리를 마음에 두고있다는 말이었죠.

마리의 출생에 대해서는 전 유럽이 알고있었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황제는 속죄주간에 거절편지를 쓸수없어서 아들에게 마지 못해 허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황제는 마리 대공녀에 대해서 알아보죠.

출생때문에 마리 대공녀와의 결혼은 이루어질수 없었을것같았으나, 영국에서 황태자는 빅토리아 여왕을 보고 반해버리죠. 여왕역시 잘생긴 황태자에게 마음이 끌렸고, 둘은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 소식에 니콜라이1세는 매우 진노했고, 당장 다름슈타트로 가라고 명령을 합니다. 황제의 의도는  황위계승자를 낳아줄 적합한 왕녀를 구하는것이었지, 여왕의 남편이 되라는것이 아니었기때문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는 결국 다름슈타트로 돌아갔고, 아름다운 마리 대공녀와 결혼하게되죠. 마리 대공녀는 결혼하면서 러시아정교회로 개종했고,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라는 정교회식이름을 받습니다.

니콜라이1세는 잘 교육받았고, 똑똑하고,순종적인 며느리를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그리고 황태자비는 곧 수많은 황위계승자를 낳아주었고, 아이들의 교육에 힘썼죠.

니콜라이1세의 사망후, 마리야의 남편이 알렉산드르2세로 즉위했고, 마리야 역시 황후가 됩니다. 그녀는 어린나이에 아이들을 많이 낳았기에 건강이 좋지 않았고, 자주 요양을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르2세의 연애사건은 궁정에서 일상화된것이었죠.

장남이자 뛰어난 아들이었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마리야는 충격으로 종교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과도 멀어지게 되죠. 알렉산드르2세는 딸같은 예카테리나 돌로루코바 공녀와 사랑에 빠졌고, 황후가 살아있었음에도 '이제부터 널 신앞에서 내 아내로 여기겠다'라고 맹세까지 하는 사이가 되죠.

병약했던 황후가 죽어가고 있을때 테러의 위협을 느끼던 알렉산드르2세는 예카테리나와 그녀의 아이들을 겨울궁전으로 데려왔고, 예카테리나의 아이들은 죽어가는 황후의 침실 바로윗층방에서 뛰어놀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황제는 죽어가는 황후에게 예카테리나의 아이들을 축복해달라고 데려왔다고 합니다. 죽어가던 황후는 그 아이들을 축복해줬다고하죠. (알렉산드르2세가 사랑에 빠진것은 이해했지만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황제의고명딸인 마리야 여대공-에든버러 공작부인-이 와서 이 상황을 보고는 매우 심하게 화를 냈고, 그제서야 예카테리나와 아이들은 다른곳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2세는 황후가 죽은 직후 예카테리나와 재혼했고, 그녀에게 유리예프스카야 공비칭호를 내려줍니다.

 

 

헤센의 루드비히2세와 바덴의 빌헤미네

바덴의 빌헤미네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1세의 황후인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의 동생입니다.

아들인 알렉산더는 후에 율리아 폰 후케와 결혼했습니다.

(앞쪽의 바텐베르크 공비 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

 

 

마리야의 남편 알렉산드르2세

 

빈터할터가 그린 아름다운 마리야 황후

마리야에 대해서는 약간 입이 좁지만 우아한 푸른눈에 모든것을 이해한다는 자비로운 표정에 모두들 반해버렸고 시어머니인 알렉산드라 황후와 많이 닮아서 시아버지인 니콜라이1세가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며느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니콜라이1세는 마리야의 출생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것을 막기 위해 궁정 사람들이 자신의 며느리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것조차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후에 알렉산드르3세가 되는 둘째아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함께 있는 알렉산드르2세 부부

(개인적으로 저시기의 알렉산드르3세의 외모를 좋아합니다..아하하..불독처럼 생긴사람이 좋은가봐요..ㅎㅎ)

 

  

세번째로 러시아 황실로 시집간 사람은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4세의 딸이었던 엘리자베트입니다.

 

 

 

 

 

 

 

헤센의 엘리자베트 대공녀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알렉산드르2세의 아들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부인

HGDH Princess Elisabeth Alexandra Louise Alice of Hesse and the Rhine

HIH The Grand Duchess Elizabeth Feodorovna of Russia

 (Elizabeth Feodorovna Romanova Russian: Елизавета Фëдоровна Романова),

 (1 November 1864 – 18 July 1918)

 

헤센의 엘리자베트 대공녀는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4세(앞의 마리야 황후의 조카)와 영국의 앨리스 공주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앨리스 공주는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딸이었죠. 앨리스 대공비는  가문의 조상이자 성녀로 시성된 헝가리의 엘리자베트의 성유물이 모셔진 성당을 방문하고나서 이 둘째딸을 가졌기에, 성녀의 이름을 따서 엘리자베트라고 이름붙였다고합니다. 하지만 앨리스의 시어머니역시 이름이 엘리자베트였기에 가족들은 엘라라는 애칭으로 불렀죠.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한 엘라에게는 여러구혼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 제일 유명한사람이 빌헤름2세였죠. 엘라는 이모 빅토리아를 좋아하긴했지만, 자신이 황후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빌헤름2세의 사촌이었던 바덴의 대공역시 청혼했지만, 빌헤름을 거절했던데 화가나있던 독일의 아우구스타 황후(바덴대공의 외할머니였습니다.)가 그 결혼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2세의 황후인 마리야 황후는 친정인 다름슈타트에 자주왔고, 마리야 황후의 아들들 역시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자주 왔습니다. 그때문에 마리야 황후의 아들인 세르게이 대공역시 어린시절부터 엘라를 잘 알았다고 합니다. 엘라는 아름답고 신앙심이 깊었는데, 세르게이 대공역시 잘생기고 신앙심이 깊었죠. 둘은 서로를 잘알았고, 결혼하기로 합니다. 엘라의 외할머니이자 러시아의 대공들을 싫어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여왕은 엘라의 언니 빅토리아의 결혼식에 와서 엘라의 약혼소식을 듣고는 맘상해했다고 합니다.)

화려한 러시아 황실에 시집간 엘라는 아름다웠고 매우 상냥했기에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엘라의 남편 세르게이는 매우 엄격하고 보수주의자였습니다. 엘라는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자신의 아이를 가지길 원했지만, 아이가 없었죠. 게다가 세르게이는 자신의 아이를 갖는것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동생인 파벨대공의 아이인 마리야와 드미트리에게는 열광했다고 합니다.

엘라는 동생 알릭스와 황태자 니콜라이를 엮어주는데 무척이나 노력했다고합니다. 니콜라이의 어머니이자 엘라의 동서였던 마리야 황후는 그것을 못마땅해했구요.

세르게이 대공이 모스크바에서 폭탄테러로 사망했을때 엘라는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러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르게이가 입양했던 파벨대공의 아이들인 마리야와 드미트리와함께 살죠.

마리야가 시집가고 드미트리가 사관학교에 들어가자 엘라는 재산을 털어 수녀회를 설립하고 수녀가 됩니다. 그리고 자선사업을 하면서 살아가죠. 하지만 혁명이 일어났을때 그녀는 체포되었고, 결국 혁명중 살해당합니다. 이후 엘라는 혁명때 죽은 다른 황실가족들처럼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엘라 대공비의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서는 제 앞쪽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

 

 

엘라 대공비의 부모인 헤센의 루드비히4세와 영국의 앨리스

(1860년 약혼때)

 

어머니 앨리스 대공비가 죽은후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과 함께 있는 헤센대공가의 아이들

맨 왼쪽의 서있는 여자가 엘라입니다. 그리고 맨앞쪽에 여왕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막내인 알릭스입니다.

 

 

엘라의 남편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마지막으로 러시아 황실로 시집간 사람은 역시 루드비히4세의딸이자 엘리자베트의 동생인 알릭스입니다.

 

 

 

 

헤센의 알릭스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니콜라이2세의 황후

Alix of Hesse and by Rhine

Alexandra Feodorovna Romanova (Russian: Императрица Александра Фёдоровна Романова)

(6 June 1872 – 17 July 1918)

 

헤센의 알릭스 대공녀는 헤센의 루드비히4세와 영국의 앨리스 공주의 넷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앞의 엘라대공비의 동생이죠. 앨리스 대공비는 자신의 이름이 독일식으로 알리체라고 불리는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했고, 넷째딸이 태어났을때  앨리스와 비슷한 발음이 되도록 이름을 알릭스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어머니 앨리스 대공비와 여동생인 메이가 디프테리아로 죽은후, 알릭스는 내성적이며 섬세한 아이로 자라났다고 합니다.

매우 아름답게 성장한 알릭스에 대해 빅토리아 여왕은 친손자이자 영국왕위계승자인 앨버트 빅터(에디)와 결혼하길 바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릭스는 러시아의 황태자인 니콜라이와 사랑에 빠져있었죠. 그를 사랑하긴 했지만, 정교회로 개종하는것에 거부감을 느끼던 알릭스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니인 엘라 대공비는 동생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고 하죠. 결국 오빠 에르니가 결혼한 다음날 알릭스와 니콜라이는 약혼합니다.

알렉산드르3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알릭스는 황제가 된 니콜라이와 서둘러 결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러시아 궁정에서는 '관이 지나간뒤 황후나 나타났다'고 쑥떡거렸다고 합니다. 알릭스는 니콜라이와 결혼하면서 러시아 정교회식 이름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라는 이름을 받습니다.

알렉산드라 황후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으로 성장했기에 매우 엄격한 도덕률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 그녀에게 러시아 궁정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황족들은 모두 드러내놓고 연애사건들을 일으켰고, 알릭스 입장에서 황족들의 생활은 방탕하며 무절제한것이었죠. 게다가 수줍음 많은 성격이었던 그녀는 궁정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고,  니콜라이2세의 숙모인 미헨대공비와 황후의 시어머니인 마리야 황태후가 사교계를 주도했고, 황제 부부는 서서히 고립되어갔죠.

특히나 알릭스는 결혼후 딸만 넷을 낳았기에 황위계승자를 낳는것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다고 합니다. 니콜라이2세의 동생인 미하일 대공은 귀천상혼해버렸고, 다음 황위계승자는 늘 제위를 노리던 블라디미르대공의 아들인 키릴이었죠. 이 중압감은 결국 알렉산드라 황후가 신비주의에 몰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후계자인 아들 알렉세이가 태어났지만, 기쁨도 잠시였고, 알렉세이는 가계 유전병인 혈우병환자인것이 밝혀지죠. 알렉산드라는 아들의 건강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고, 알렉세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신비주의에 더욱더 몰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타난 이가 바로 라스푸틴이었죠.

라스푸틴의 치료는 알렉세이에게 효과가 있는듯 보였고 황후는 그를 성자로 여겼죠. 하지만 황제 부부를 제외한 모든 황족들과 친척들이 라스푸틴을 반대했습니다. (후에 라스푸틴이 죽은후 그 소식을 들은 황후의 언니 빅토리아는 동생을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던이가 죽어서 기쁘다라고 할정도였습니다.) 이후 1차대전동안 니콜라이2세는 전선으로 나갔고, 니콜라이의 사촌인 드미트리와 조카사위인 유스포프공이 라스푸틴을 암살했고, 황제부부는 이에 대해서 격노했다고 합니다. 1차대전의 진전은 황제에 대한 러시아 사회의 불만을 가중시켰고, 결국 혁명이 일어나서 황제를 폐위시키고 그가족을 시베리아로 보내버립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죠.

(전 개인적으로 라스푸틴의 전횡이 러시아황실을 몰락하게하는데 일조를 하긴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때문에 그렇게 러시아 황실가족들이 살해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라진스키가 쓴 알렉산드르2세의 전기에도 나오지만, 알렉산드르2세가 폭탄테러로 사망하던 시점에서 이미 러시아 황실의 비극적 최후는 예정된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단지 그 시기가 언제인가가 문제였던것이죠. 실제로 알렉산드르3세도 엄청나게 비밀경찰들을 풀어서 치안유지를 강화했지만 알렉산드르3세 역시 폭탄테러로 가족들과 거의 죽을뻔한적도 있습니다. 라스푸틴에 대한 강조는 단지 외국왕비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나라를 비참하게 만드는가를 광고하는데 일조하는것이라고 할까요...마치 프랑스 혁명이 마리앙투와네트때문에 일어난것처럼 말하는것과 같다고 생각한다죠.)

 

 

알릭스의 가족들

헤센의 루드비히4세와 앨리스 대공비

그리고 여섯아이들

앨리스 대공비의 둘째아들인 프리드리히가 사망한후입니다.

대공이 안고 있는 아이가 알릭스의 동생이자 어머니 앨리스 대공비와 비슷한시기에 사망한 막내동생 메이입니다.

 

 

알렉산드라 황후의 남편 니콜라이2세

 

알릭스와 니콜라이의 약혼사진

 

니콜라이2세의가족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 Alexander II: the last greates tsar(라진스키)

3.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2000,휴고비커스)

4.The last Princess: the devoted life of Queen Victoria's Youngest Daughter (2008)

그림출처

위키피디어 &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