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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354)니키타 아파나세비치 베케토프 (두번째)
7년 전쟁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해서 점차 승진했었지만 1758년 초른도르프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초른도르프 전투는 7년 전쟁중 프로이센과 러시아간의 치열한 전투였는데 이때 프로이센은 물로 러시아도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때 베케토프 역시 프로이센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생활에서 풀려난 베케토프는 러시아로 돌아와서 장군으로승진했으며 1763년에는 아스트라한 지역의 총독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후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 총독으로 그는 예카테리나 2세의 정책중 하나였던 “볼가 지역의 독일 식민지Немецкие колонии в Поволжье”를 많이 건설했습니다. 이것은 예카테리나 2세가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의 자유로운 러시아 거주를 인정한 뒤 생겨난 것으로 주로 독일인들이 러시아로 와서 빈 지역을 정착했던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러시아 내 빈땅을 개발하기 위한 정책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케토프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인근의 위협이 되는 키르기스탄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베케토프는 아스트라한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특히 농업의 발전에 집중했습니다. 초원지대로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농업을 장려했으며 또 포도를 키위서 포도주를 만들게 했고 실크의 원료를 위해서 양잠을 장려했으며 또 페르시아(현재 이란)과의 교역을 장려했습니다. 또 카스피해 인근 지역이었던 아스트라한 지방에서 어업을 장려하고 이를 통한 세금을 얻기 위한 법령을 개편하기도 했습니다. 재미난 것은 아스트라한 지방은 지금도 캐비어 산업으로 유명한 지역이며 아마도 이것은 베케토프 시절에 어업을 장려했던이 계속적으로 이어진 결과일 것입니다.
아스트라한 지역 주변에서 살아가던 유목민족이었던 칼미크인들에 대해서 베케토프는 이들을 러시아에 정착시켜야한다고 주장했고 정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었지만 정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칼미크족의 상당수가 전재산을 가지고 중국 지역으로 떠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1780년 베케토프는 은퇴한뒤 옐리자베타 여제가 자신에게 준 영지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14년간 부유하고 평온하게 산 뒤 사망했습니다. 그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죽었지만 사생아 딸들이 있었으며 이 딸들에게 자신의 유산을 상속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조카인 이반 이바노비치 드미트리예프가 자신에게 상속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촌들과 소송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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