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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91) 헤드빅 타우베 : 프레데릭의 정부(세번째)

엘아라 2020. 10. 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이게 길어지네요...

삶이 파란만장하니 내용이 많긴 하군요.

 

정부들과 그 후손들...(291) 헤드빅 타우베 : 프레데릭의 정부(세번째)

 

헤드빅 타우베

헤센슈타인 백작부인(여백작)

Hedvig Ulrika Taube 

Countess von Hessenstein 

(31 October 1714 – 11 February 1744),  

 

헤드빅은 아이를 낳고 정식 지위까지 부여받았기에 왕의 공식 정부로 여겨졌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정치적 영향력도 컸었죠. 이런 문제는 결국 스웨덴의 정치적 문제에 프레데릭과 헤드빅이 연결되는 원인이 됩니다.

 

프레데릭은 사실상 아내인 울리카 엘레오노라 덕분에 왕위를 이어받은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왕비를 등한시하고 정부와 함께 살고 아이들을 낳았다는 것은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화가나는 일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정적들에게는 매우 좋은 공격 대상이 됩니다. 

 

프레데릭 1세

 

울리카 엘레오노라 여왕은 즉위하기 위해서 의회에 왕위계승자를 선택할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었고 이후 의회의 영향력은 매우 컸었습니다. 이후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남편을 위해서 양위했었고 그녀의 남편인 프레데릭 역시 의회의 영향력을 무시할수 없었습니다. 특히 의회에서 프레데릭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더욱더 문제가 됩니다. 이들은 스웨덴에서 이전에는 볼수 없었던 공식정부를 데리고 사는 국왕에 대해서 비난을 합니다. 종교적,도덕적인 죄가 분명했던 이에 대해서 비난을 크게 했었죠. 그리고 왕비였던 울리카 엘레오노라 역시 이런 비난에 대해서 수긍하는 분위기였구요.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 의미가 더 강했는데 의회에서는 국왕과 헤드빅과의 관계를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국왕이 자신들의 의견을 수용하도록 요구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프레데릭은 헤센으로 돌아가겠다는 위협을 했지만 그것도 쉽사리 성사되지는 않습니다. 프레데릭은 헤센-카셀을 물려받았지만 그는 스웨덴에 있었기에 그의 영지는 동생일 빌헬름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형에게 적자가 없다면 빌헬름이 헤센을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프레데릭이 울리카 엘레오노라와 헤어지고 헤드빅 타우베와 정식으로 결혼한다면, 가문의 수장으로 다른 가문의 반발이 없다면 자기 자식들에게 영지를 물려줄수도 있을문제였기에 상황은 더 복잡해지게 될것이었습니다. 결국 프레데릭은 스웨덴을 떠나지 않았고 아이들을 위해서 홀슈타인 지역의 영지를 구입했다고 합니다.

 

정치적 상황은 더 발전하게 되는데 특히 프레데릭의 아내였던 울리카 엘레오노라 왕비가 아마도 헤드빅과 남편의 관계를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던듯합니다. 이미 다 알려져서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된 이상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더이상 참지 않기로 한듯합니다. 게다가 신앙심이 깊었던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역시 죄악의 삶을 사는 남편에 대해서 걱정한 부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결국 의회에서 헤드빅을 조사하게 만들었으며 헤드빅은 이를 거부했지만 어쩔수 없이 만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성직자들은 헤드빅에게 스톡홀름을 떠나라고 했으며 헤드빅은 잠시 스톡홀름을 떠나야했었습니다.  하지만 의회가 해산하자마자 헤드빅은 다시 스톡홀름으로 돌아왔었죠.

 

울리카 엘레오노라

 

1741년 점점 허약해지고 있던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결국 11월 사망합니다. 그녀가 죽고나면서 스웨덴의 왕위계승문제는 복잡해지게 됩니다.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후계자 없이 죽었으며, 왕위계승자를 선출할 권리는 여전히 의회에 있었습니다. 여러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헤드빅은 홀아비가 된 국왕과 정식 결혼해서 자신의 아들들이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가 되길 바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왕위계승자는 러시아쪽이 추천한 인물이었던 홀슈타인-고토로프의 아돌프 프리드리히가 되죠. 1743년 왕위계승자가 된 아돌프 프리드리히는 스웨덴으로 왔으며 헤드빅은 그를 비공식적으로 알현했고 여기서 자신의 아들들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었다고 합니다.

 

헤드빅은 1744년 막내아이를 낳은 직후에 사망합니다. 프레데릭은 이미 홀아비였고 또 스웨덴 왕위계승자문제도 해결되었기에 헤드빅과 정식으로 결혼하려했었습니다만 이것은 모두 소용이 없었죠. 헤드빅은 죽기 직전에 자신을 국왕의 정부로 밀어넣은 사람들을 저주했었으며 자신의 죄 때문에 지옥에 갈것을 두려워했고 국왕의 선물들을 벽에 던지는등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헤드빅이 죽은 다음해에 프레데릭은 또다른 여성을 정부로 맞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