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스코틀랜드의 왕비들...(8) 노르망디의 시빌라 : 알렉산더 1세의 왕비

엘아라 2017. 12.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중세는 진짜 자료가 너무 해요..ㅠ.ㅠ


스코틀랜드의 왕비들...(8) 노르망디의 시빌라 : 알렉산더 1세의 왕비


노르망디의 시빌라

스코틀랜드의 왕비

Sybilla of Normandy 

(1092 – 12 or 13 July 1122)



노르망디의 시빌라는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1세와 그의 정부였던 엘시스터의 레이디 시빌라 코르벳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시빌라의 어머니인 레이디 시빌라 코르벳은 노르망디 출신의 귀족가문이었던 코르벳 가문의 일원이었다고 합니다. (코르벳은 "까마귀"라는 의미의 단어에서 유래한 말인데 바이킹족들에게 까마귀는 승리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시빌라는 노르망디에서 1092년경 태어났으며, 노르망디에서 자랐을 것입니다.



코르벳 가문의 문장

14세기

까마귀 두마리가 상징입니다.


많은 중세시대 여성들처럼 시빌라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은 물론 그녀가 정확히 언제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1세와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그녀가 왕비로 대관했었으며 나이를 고려한다면 알렉산더 1세가 즉위한 1107년경 이후에 결혼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1114년 이전에는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1114년에는 알렉산더의 동생인 데이비드가 결혼했었으며 같은 날짜에서 시빌라가 알렉산더와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1세의 씰


시빌라와 알렉산더 1세의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는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항상 긴장 관게였으며, 잉글랜드 국왕들은 스코틀랜드에 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빌라의 결혼은 일련의 잉글랜드 왕가와 스코틀랜드 왕가의 결혼 동맹의 연장이었을 듯합니다. 시빌라의 아버지인 헨리 1세는 알렉산더 1세의 여동생이었던 스코틀랜드의 모드(마틸다)와 결혼합니다. 알렉산더는 물론 마틸다는 모두 성 마거릿의 자녀들로 잉글랜드의 이전 왕가였던 웨섹스 왕가의 직계후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때까지도 "외국인"으로 여겨졌던 노르망디 왕가가 정치적 안정을 노리기 위해 스코틀랜드 왕가와 통혼하려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헨리 1세는 이전 왕가와 직접적 혈연관계에 있는 스코틀랜드의 마틸다와 결혼하므로써 잉글랜드 내에서의 정통성을 확보하려했던 것입니다. 

또 스코틀랜드 상황도 그리 편안하지 않았는데 말콤 3세가 죽은뒤 왕위 계승은 혼란한 상황이었고 이때문에 잉글랜드와 같은 강력한 동맹이 필요했습니다. 알렉산더 1세는 형인 에드가가 미혼으로 후계자가 없이 사망한뒤 왕위를 이엇는데 아마도 이런 상황은 잉글랜드와의 동맹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이에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1세의 딸인 시빌라와 결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시빌라의 아버지 

잉글랜드의 헨리 1세



시빌라는 스코틀랜드로 와서 알렉산더 1세와 결혼했습니다. 비록 정략결혼이었지만 부부사이는 나쁘지 않았다고 추정됩니다. 시빌라와 알렉산더 1세와의 사이에서 자녀가 없었는데 이시대에 여성에게 자녀가 없는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고 특히 국왕의 아내가 자녀가 없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시빌라는 자선사업에 열성적이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1세는 이런 아내를 도왔으며 이것은 그가 아내에게 호의적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아내가 죽은뒤 재혼하지 않은것 역시 아내인 시빌라와의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계기가 됩니다.


시빌라는 1122년 사망하는데 어떻게 사망했는지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고 합니다. 시빌라가 죽은뒤 알렉산더 1세는 아내에 대한 기록을 쓰게 하려했으며, 심지어 시성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1세

17세기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