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바로크 오페라들을 좋아하면 늘 접하게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바로 "카스트라토"라고 불렸던 가수들이죠.
이들에 대해서는 사실 목소리를 위해 거세했다라는 이야기 정도밖에 알지 못합니다.
제일 유명한 파리넬리 정도가 알려져있는데 재미난것은 파리넬리의 경우 보통의 카스트라토들과 달리 만년이 매우 편안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자루스키 인터뷰던가 아니면 포르포라에 대한 글을 읽을때던가 카스트라토들이 단순히 거세를 통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수 있었고 이런 훈련은 평생을 해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늙어서 그들의 기량이 떨어졌을때 조차도 생계문제로 무대에 서야했고 비난을 자주 받으면서 은퇴했다는 이야기를 봤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합니다만...
--;;늘 그렇듯이 제 글은 용두사미라..ㅎㅎㅎㅎㅎ
카스트라토 이야기 (1) 들어가면서
카스트라토들이 유행했던 시대는 약 18세기 바로크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전 시대에도 카스트라토들은 존재하고 있었죠. 카스트라토라는 이름 자체가 "Castration(거세)"와 연결되는 말인듯합니다.
물리적으로 카스트라토들은 변성기가 오기전 거세를 통해서 목소리가 변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그들의 고음의 목소리를 유지할수 있게 했었죠. 실제로 카스트라토들은 주로 높은 음역대의 소리를 냈으며 가장 낮은 음은 테너들의 고음 영역까지 갈수 있었기에 일반적 여성들보다 훨씬더 넓은 음역대를 낼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거세는 그들의 뼈성장에도 영향을 줬는데 이런 상황은 갈비뼈 형성에도 영향을 줘서 큰 폐활량을 가질수있는 폐의 모양이 만들어지는데,카스트라토들의 훈련 방법은 폐활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갔으며 결과적으로 정상인과 비교도 안될만큼의 큰 폐활량을 가질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성들보다 높고, 여성들보다 넓은 음역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폐활량까지 매우 컸던 카스트라토들의 노래는 사람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심어줬을것입니다.
재미난것은 카스트라토라는 말 자체가 "거세"와 직접적 연결이 되는 단어였기에 당대에는 그들에게 이렇게 지칭하지 않고 좀더 우회적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파리넬리(카를로 브로스키)
당대 최고의 카스트라토였으며 현재에도 제일 이름이 알려진 카스트라토
역사적으로 "카스트라토"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들은 늘 존재해왔었습니다. "거세"는 단순히 사고나 병이거나 또는 형벌등 다양한 문제때문에 발생했었죠. 이들에 대한 서양의 기록은 아마도 비잔틴 제국이 있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9세기경 비잔틴 제국의 궁정 음악감독이었던 이가 거세된 사람이었으며 그가 궁정에서 노래도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가 "카스트라토"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통을 오래도록 유지되고 있었지만 1204년 4차 십자군원정에 의해서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뒤 이들의 존재는 더이상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11세기경 비잔틴 카스트라토
이후 16세기 무렵 이탈리아 문서에서 다시 한번 카스트라토들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1555년 추기경이었던 이폴리토 데스테는 만토바 공작이었던 굴리엘모 곤자가에게 자신의 "Cantoratti"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해서 두명을 보내주겠으며 그중 한명을 선택한다면 만토바 공작가문에서 일하도록 하게하겠다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1556년에는 추기경의 형이었던 모데나 공작이 이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558년 정확한 날짜는 아니지만 에스파냐 출신의 카스트라토가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카스트라토에 대한 전통은 에스파냐쪽으로 이어진듯한데 이것은 에스파냐가 오래도록 "이슬람 세력"의 영향아래 있었으며 비록 가톨릭으로 통일되었지만 문화적인 면에서 이슬람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라고 불렸던 지방들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었기 때문일거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와 독일로 퍼져나갔으며 "여성이 교회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금했던"것과 관련되어서 주로 교회음악의 여성파트를 담당하게 되었죠.
에스테 추기경
이폴리토 2세 데스테
초기 이탈리아 카스트라토들을 후원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듯합니다.-0-;;;
카스트라토들이 활성화 된 시기는 오페라가 생겨나고 수많은 오페라들이 작곡되던 바로크 시기였습니다. 유명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인 "오르페오"에서도 카스트라토가 조연이지만 한 역할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카스트라토들의 전성기는 바로 18세기 오페라가 활발했을때였습니다. 18세기 무렵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카스트라토들의 깨끗한 고음은 "영웅적 미덕"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요소로 자리잡아있으며 이때문에 뛰어난 카스트라토들이 오페라 스타로 군림하면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파리넬리였죠. 하지만 파리넬리등의 카스트라토들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것은 단순히 타고난 목소리나 거세를 통한 목소리의 보존에 있지 않았습니다. 18세기 카스트라토들은 매우 엄격한 수업을 받았는데 목소리등을 단련하는 수업은 물론 음악이나 문학적 소양까지 갖춰야했다고 합니다. 이런 엄격한 수업을 착실히 받아야 데뷔할수 있었으며 그들의 뛰어난 목소리는 이런 훈련의 결과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세네시노(세네지노)"
프란체스코 베르나르디
콘트랄토 카스트라토로 헨델의 오페라에 오래 출연한 가수였다고 합니다.
1720년대와 1730년대에는 매년 약 4000명 이상의 카스트라토들이 양성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몇몇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기도 했습니다. 엄청나게 성공한 카스트라토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일부였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 음악을 하면서 결혼등의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초라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크게 성공한 카스트라토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을 시기하는 인물들이 많아지는데 신체적 특징때문에 카스트라토들이 "동성애"에 깊이 연루되어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18세기가 끝날무렵 카스트라토의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오페라의 양상이 바뀌었기 때문인데 19세기 카스트라토들이 점차 쇠퇴하게 되죠. 그리고 1861년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위한 거세가 불법으로 명시되었으며 1878년 교황 레오 13세는 교회에서 현재 고용된 카스트라토들 외에 새로운 카스트라토를 고용하는 것을 금지하합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교회에서 카스트라토들을 더이상 고용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위해 인위적으로 거세한 이들"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 카스트라토로 알려진 인물인 알레산드로 모레스키는 1902년에서 1904년 사이에 유일하게 음반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1913년 은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이상 공식적으로 "카스트라토"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알레산드로 모레스키
마지막 카스트라토
아베 마리아
모레스키의 노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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