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빅토리아 여왕 끝이군요.
ㅎㅎㅎ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현 여왕님 잠시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봤자 뭐 얼마 되지 않지만 말입니다.
이야기들이 막 끝나는데 아이디어는 없고 큰일이군요...ㅠ.ㅠ
궁금한 이야기들 응모 받아야할지 걱정입니다..-0-;;;;
잉글랜드의 여성왕위 계승자들...(13) 빅토리아 여왕 세번째: 남편이 죽은뒤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이 죽은것에 엄청나게 충격을 받습니다. 여왕은 남편이 죽은뒤 평생 불안정한 삶을 살았는데 여왕 스스로 남편을 따라 일찍 죽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여왕은 늘 맥박이 불규칙하고 혈압이 높았는데 이는 남편이 죽은후 생긴것으로 여왕 스스로는 이를 자랑스러워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 직후 여왕은 모든 일을 내 팽개치고는 아이들과 함께 윈저로 은거합니다. 정부와 내각은 여왕의 행동에 크게 당황하죠. 이런 여왕을 돌보고 오빠를 챙기고 동생들을 돌본 사람은 여왕곁에 있던 딸중 가장 큰 딸인 앨리스였습니다. 맏딸인 빅키는 프로이센에 있었으며, 임신중이었기에 어머니 곁으로 바로 올수 없었죠. 여왕은 아들인 버티를 무시하다시피 했는데, 남편의 죽음에 버티가 책임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죽은 다음해에 막내딸 베아트리스 공주를 안고 있는 빅토리아 여왕
남편이 죽은 직후, 여왕은 또 딸을 멀리 보내야했습니다. 자신의 도움이 되던 앨리스는 아버지가 죽을때 약혼한 상태였고, 여왕은 딸을 멀리 보내는것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남편이 결정한 결혼을 미룰수는 없었죠.
앨리스의 결혼식은 매우 우울했으며 앨리스는 결혼식때만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머지는 그냥 상복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왕은 딸의 결혼식을 지켜보다가 끝까지 못보고 방으로 가버렸고 신부 동생들은 대놓고 울었습니다. 마치 "장례식같았다"라고 할 정도였죠.
1862년
상복을 입은 앨리스 공주
앨리스가 결혼한후 빅토리아 여왕은 딸들과 덜 자란 아들들과 함께 우울한 삶을 보내고 있었죠. 여왕이 조금씩 세상밖으로 나간것은 한참뒤로, 여왕이 남편을 잃은지 1년후쯤에 만난 여왕의 언니 페오도라는 여왕에게 말을 붙이기가 겁난다 라고 쓸정도였죠.
여왕은 딸들이 자신의 곁에 머물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헬레나 공주는 자신 곁에서 결혼하지 않고 평생 머물것이라고 여겼습니다만, 헬레나는 그런 어머니의 바램을 저버리고 남편감을 찾습니다. 그리고 결혼후 어머니가 아닌 남편과 아이들이 최우선인 삶을 살죠. 다음 딸인 루이즈는 빅토리아 여왕의 딸들중 가장 반항아 기질이 강한 딸로 어머니 곁에 있는것 자체를 매우 답답해했습니다.
여왕은 세상에서 외톨이가 된다는 두려움에 떨었고, 결국 막내딸 베아트리스와 혈우병 환자인 레오폴드를 꽉 붙잡고 살았습니다. 특히 베아트리스 공주는 어머니와 심정적으로까지 동질감을 가지게 되었고 어머니의 불평등을 모두 받아들이고 어머니 곁에 머물죠.
아버지 흉상 앞에 앉아있는 빅토리아 여왕의 딸들
막내인 베아트리스 공주는 아직 어리죠
많은 친척들이 죽었지만, 대신 많은 후손들이 생겼고 이런 후손들이 늘어가는것을 즐겼습니다. 수많은 손자들중 여왕이 제일 사랑한 손자들은 친손자인 웨일즈의 앨버트 빅터와 외손자인 프로이센의 빌헬름과 샤를로테 그리고 외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였죠. 특히 프로이센 외손자 외손녀들은 앨버트공이 생존해있을때 태어난 자손으로 매우 특별히 여겼습니다. 헤센의 빅토리아는 어머니 앨리스가 죽은뒤 딸처럼 여기던 외손녀였죠.앨버트 빅터는 첫 친손자이자 후계자로 기대가 많은 손자였습니다.
여왕은 생전에 세명의 자녀들을 잃었고 사위 한명도 잃었습니다. 둘째딸이자 여왕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었던 앨리스 공주는 디프테리아로 막내딸과 함께 사망했죠. 특히 앨리스 공주는 아버지의 기일에 사망했기에 여왕에게 더욱더 슬픈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언제 죽을지 몰랐던 막내 아들 레오폴드도 사망했습니다. 레오폴드는 아내가 둘째아이를 임신했을때 건강을 위해 니스로 요양가라는 충고를 받아들였죠.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사고로 사망하죠. 또 막내사위였던 바텐베르크의 헨리는 보어전쟁에 참전하러가던중 말라리아로 사망했고 여왕곁에 머물렀던 막내딸 베아트리스가 과부가 된것을 매우 안타까워했죠. 여왕은 베아트리스공주의 아이들에 대해서 늘 "불쌍한것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여왕이 죽기 직전 여왕의 둘째아들인 앨프러드 역시 암으로 사망합니다. 그 직전에 앨프러드의 아들이자 "영 애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프러드가 사망합니다.
딸 앨리스가 죽은후 헤센의 외손자 외손녀들과 함께
여왕의 과부 생활중 여왕은 남편이 고용했었던 하인인 "존 브라운"과 특별한 관계가 됩니다. 둘의 관계가 어느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여주인-하인 이상의 관계였습니다. 여왕은 존 브라운에 대해 "매우 유용한 사람"이라고 언급했으며, 존 브라운은 여왕에게 "어느 누구도, 심지어 폐하보다더 제가 폐하를 사랑합니다"라고 답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존 브라운 여왕의 측근이었으며 여왕이 앨버트 공에게 의지했듯이 존 브라운에 의지한듯이 보입니다. 전 둘 사이가 플라토닉한 사이지만, 좀더 특별한 사이였다고 생각한답니다. 존 브라운은 무척이나 무례한 사람이었고, 자녀들 누구의 의견도 무시하던 여왕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존재였습니다. 여왕의 자녀들은 대부분 존 브라운의 존재를 무시했으며 사이도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존 브라운은 여왕의 막내딸과 헤센 외손녀들과는 친하게 지냈습니다. 여왕은 외손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헤센의 아이들이 떠나버린 궁전이 매우 쓸쓸하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존브라운과 빅토리아 여왕
둘은 언제나 저런식의 구도로 사진을 찍습니다.-0-;;;
새 세기가 된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은 사망합니다. 여왕이 죽기 직전 외손자인 독일의 빌헬름 2세가 왔고, 여왕은 외손자의 품안에서 사망하죠. 와이트 섬에서 사망한 여왕은 윈저로 옮겨졌는데 이때 함대들이 여왕의 마지막가는 길에 도열해서 대포를 쏘고, 군악대가 연주했습니다.
여왕은 유언으로 자신의 장례식장에 흰색으로 장식하라고 명령했으며 관에는 여러가지 가족들의 기념품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여왕은 사랑했던 남편 앨버트 곁에서 묻혔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다이아몬드 주빌리(즉위 60주년) 공식 사진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 the last princess (2008,M.Denison)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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