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국왕이 되지 못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들 마지막편이 될듯합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조지1세의 왕위계승권이 얼마나 뒤인지 알아볼까 고민중이기도 합니다만 그건 그림으로 보는 가계도..이런데 넣을까도 생각중이라서 말입니다.
올드 프리텐더의 큰아들인 영 프리텐더는 적자 없이 사망했는데 그의 뒤를 이어 왕위를 요구할 권리는 동생인 헨리 베네딕트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는 카톨릭 사제였으며 이때문에 제임스 2세의 직계는 단절됩니다. 헨리 베네딕트가 권리를 가지고 있을때 이미 영국에는 하노버 왕가가 굳건히 있었기에 어쩌면 그가 사제가 된것이 모두에게 합리적인 일이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국왕이 되지 못한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자들....번외편(3)"추기경 국왕"헨리 베네딕트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
요크 공작
추기경
Henry Benedict Stuart
(6 March 1725 – 13 July 1807)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는 로마에서 망명중이었던 "올드 프리텐더" 제임스 스튜어트와 그의 부인인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교황 베네딕트 8세에 의해 세례를 받았고 아마 베네딕트라는 이름 역시 교황의 이름을 딴것일듯합니다. 교황 베네딕트 8세는 올드 프리텐더를 지지해서 그가 로마에게 서물도록 허락했으며 그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국왕"이라고 인정한 몇안되는 사람중 한명이었죠.
어린시절의 헨리
형인 영 프리텐더와 매우 많이 닮았습니다.
1745년 형인 "영 프리텐더" 찰스 스튜어트가 영국으로 갈 준비를 할때 그를 돕기 위해 프랑스로 갔습니다 하지만 형의 실패이후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1747년 그는 교황 베네딕트 14세대 성직에 입문했으며 왕족이었기에 그는 일반 사제직이 아닌 특별직 추기경이 됩니다. 이후 여러단계를 거쳐서 1748년 정식사제로 서품받았고 그후 코린트의 대주교가 됩니다. 이후 그는 쭈욱 카톨릭 사제로써의 삶을 삽니다.
헨리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프랑스 측에서 받던 여러가지 형태의 지원을 더이상 받지 못하게 됩니다. 대신 영국의 조지 3세는 그에게 매년 4000파운드의 연금을 지급합니다. 영국 정부는 이를 "자선사업"이라고 주장했지만, 자코바이트들과 헨리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은것이라고 여기죠.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는 1807년 사망합니다.
그는 죽으면서 유언장에 자신의 영국의 왕위계승요구 권리를 찰스 1세의 다른 후손인 사르데냐의 국왕 카를로 엠마누엘레 4세에게 넘깁니다. (카를로 엠마누엘레 4세의 할머니는 찰스1세의 외손녀인 안 마리 도를레앙이었죠.) 하지만 재미난것은 카를로 엠마누엘레 4세와 그 뒤의 계승자들이 이 권리를 계승하는것에 대해서 수락했는지 않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뭐 사실 별 이득 없는 권리여서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했을듯해요. 게다가 이걸 수락하니 마니 그러는것 자체가 도리어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었을듯하거든요.)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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