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마르소 장군 책 읽기 싫습니다. 사실 지금 영어가 꼴보기 싫습니다.--;;;
그것도 공주님 이야기면 용서하겠는데, 우울한 전쟁이야기라서 더 읽기 싫습니다.--;;;
그래서 결국 또 어디선가 썼던 글을 훔쳐와야겠습니다.
물론 제 글을 훔치는거라...상관은 없습니다만.....
블로그에 올릴려고 했던 글이 아니라서 말입니다....ㅎㅎㅎㅎ
예카테리나 2세의 진실 또는 거짓
러시아의 예카테리나2세가 죽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말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스웨덴의 구스타프4세 아돌프가 관계됩니다. 그는 여제의 손녀인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약혼하기 위해 러시아로 왔습니다. 이미 그가 러시아에 갔다는 것은 이전에 결혼 협상이 거의 다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하지만 그는 약혼 발표 당일날 도망갔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알렉산드라 여대공이 신교로 개종하지 않을거라는 이유였습니다만, 여대공이 자신이 바라는 만큼 예쁘지 않아서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어쨌든 구스타프4세 아돌프가 도망간 두달정도 후에 여제는 사망합니다.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2세
파벨1세의 어머니
여제가 사망한후 아들 파벨1세는 어머니의 서재에서 커다란 봉투하나를 찾아냅니다. 겉봉투에는 "To his Imperial Highness Pavel Petrovich, my dearst son"이라고 적혀 있었죠.
그안에는 예카테리나2세의 회고록인 "Notes"가 있었고, 이 회고록안에는 파벨1세와 그 후손들이 충격으로 경악을 금치못하게 될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여제는 여기에서 러시아인으로써의 자신의 일생을 서술하고 있었는데 사실상 이 회고록의 주제는 아들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자 "자신의 끔찍한 남편"이었습니다.
여제는 이 회고록에서 남편이었던 표트르3세를 미치광이며, 시녀가 바뀔때마다 시녀만을 사랑한 남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카테리나2세는 남편인 표트르에 대해서 결혼후에도 부부로써 한 침대를 쓸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남편이 침상에서 여인과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죠.
여제는 자신이 9년간이나 후계자를 낳을수 없었던것은 당연한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옐리자베타 여제에게서 "지금은 후계자를 바라는 요구가 절정에 이르렀다"라는 메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옐리자베타 여제는 후계자를 위해 예카테리나에게 다른 남자를 선택하라고 충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카테리나는 후계자가 될 아들 파벨 페트로비치 대공을 낳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표트르 3세와 부인인 예카테리나 2세
그리고 아들인 파벨 1세
이 회고록을 읽었던 파벨1세가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머니 예카테리나에 대한 미움이 커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면 그는 아버지인 표트르3세를 무척이나 존경했기 때문이죠. 파벨1세가 즉위한후 아버지 표트르3세를 러시아 짜르들의 묘인 Peter and Paul Cathedral 로 이장합니다. 이전에 표트르3세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기념성당에 묻혀있었는데, 왜냐면 예카테리나2세가 남편을 황제들의 묘소에 묻는것을 금지했기때문이었죠. 아버지의 시신을 이장할때. 파벨1세는 모든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시신에 키스하길 명했으며, 이장식때 아버지를 살해했던 알렉세이 오를로프 백작에게 왕관을 들고 관뒤를 따르라고 명했습니다. ( 추운 겨울날 통풍이 있는 늙은 신하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명령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파벨 1세였기에 어머니의 고백은 매우 충격적이었으며,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깊어졌을것입니다. 자신이 너무나도 존경하는 아버지 표트르3세를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요
이 "Notes"를본 파벨1세는 이것들을 또 다른 봉투에 넣고 자신의 씰로 봉인한후 다음 후계자만이 보도록했습니다. 니콜라이1세가 황위를 계승한후 그 역시 회상록을 읽게됩니다. 이것을 읽은후 니콜라이1세는 자신의 할머니를 "가문의 수치"라고 불렀고, 니콜라이1세는 가문의 어느누구도 읽지 못하도록 명했을 정도였습니다.
여제의 고백이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적어도 여제의 후계자들은 여제의 고백이 사실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던듯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정황과 문서 역시 여제가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추정할수 있게 하죠.
예카테리나의 개인서재에는 그녀가 다 파기하지 못했던 편지가 일부 남아있는데 그 중 하나가 표트르3세가 예카테리나에게 쓴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인, 오늘밤 나와 함께 보내는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소.왜냐하면 내가 바보같았던 시간이 이미 끝났기때문이오. .... 그 침대는 우리둘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좁았기때문이오. 당신과 두주를 떨어져있은 후에, 당신의 끔찍한 남편은 - 당신은 내가 이름으로 불리는것을 원치 않을것이오- ..."
편지의 다음장은 찢어져있었지만, 날짜는 남아있었는데 그 날짜는 둘이 결혼한 다음해였습니다. 이 편지로보아 적어도 예카테리나가 표트르3세가 자신의 부인과의 잠자리에 관심이 없었고, 어떻게 하는줄도 몰랐다고 이야기하는것은 사실아닌것을 알 수 있습니다.도리어 이 편지에서 보면 예카테리나는 자신의 남편을 경멸했으며, 때문에 잠자리도 거부했다는것을 추측할수 있습니다. 또 표트르3세는 그 사실에 고통받으면서도 이모인 엘리자베타여제에게는 불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죠. 단지 옐리자베타여제의 후계자에 대한 요구(후계자가 없으면 예카테리나도 필요없다는 암시)만이 예카테리나의 경멸감을 극복하게 만들었고, 결국 남편의 아이를 낳았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파벨 1세가 표트르 3세의 아들이라면, 파벨1세가 표트르3세와 생김새, 성격,취미까지 닮은것과 예카테리나 2세가 아들을 그렇게나 미워한 이유도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파벨은 자신이 경멸했던 남자의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예카테리나가 파벨의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꾸며낸 이유는 오직하나 자신이 죽은뒤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나 아니면 자신의 권신들을 추방하는것을 막기위한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예카테리나의 권신들은 표트르3세를 죽였고, 예카테리나가 그들에게너무나 많은 권력을 주었기때문이죠.
결국 예카테리나 여제는 그녀의 "Notes"를 통해서 어머니가 아닌 군주로 남았다고 추정할수 있습니다.
파벨1세
...파벨1세 초상화 볼때마다 아부지랑 닮았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하지만 여제의 말이 사실이라면.....어떻게 될까요? ㅎㅎㅎㅎ
로마노프가에서도 이것은 풀 수 없는 문제였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Alexander II : the Last Great Tsar (Edvard Radzinsky, 2005)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러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알렉산드르2세의 손녀) : 두번째 (0) | 2013.09.25 |
---|---|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알렉산드르2세의 손녀) : 첫번째 (0) | 2013.09.18 |
러시아의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4) 망명 (0) | 2011.06.16 |
러시아의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3)러시아 (0) | 2011.06.09 |
러시아의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2) 딸의 죽음과 키릴과의 재혼 (0) | 2011.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