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제임스 1세의 장남인 헨리 왕자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의 아들이었던 제임스 6세는 부모가 모두 헨리 8세의 누나인 마거릿 튜더의 후손입니다. 이때문에 그는 잉글랜드 왕위계승권에 가까이 할수 있었고, 엘리자베스 1세가 죽기 직전에 대부분 그가 잉글랜드의 국왕이 될것을 의심치 않았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에서 제임스 1세로 즉위한 그는 잉글랜드 내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합니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총신들에게 귀족작위를 부여하는것이었죠. 이것은 그가 자신이 "총애한' 신하들에게 주는 보상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정치적 입지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잉글랜드에서 기존의 귀족에 대항하는 신흥 귀족세력을 길러서 자신의 통치를 확고히 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잉글랜드에서는 제임스가 즉위한후,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튜어트 가문에 대한 반발로 튜더왕가에 대한 향수를 가지게 되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랬던 잉글랜드도 제임스1세의 후계자에게는 열광했었다고 합니다.
국왕이 되지 못한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자들
(3) 제임스 1세의 장남 : 헨리 왕자
헨리 프레드릭 스튜어트
웨일즈공
제임스 1세의 장남
Henry Frederick Stuart,
Prince of Wales
(19 February 1594 – 6 November 1612)
스코틀랜드의 헨리 왕자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와 그의 부인인 덴마크의 앤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제임스 6세의 부모는 그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여왕인 메리 스튜어트(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와 그녀의 두번째 남편인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였습니다. 그는 헨리 프레드릭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헨리라는 이름은 친할아버지인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의 이름을 딴 것이었고, 프레드릭이라는 이름은 외할아버지인 덴마크의 프레데릭 2세의 이름을 딴것이었습니다.
헨리의 부모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와 덴마크의 앤
헨리 프레드릭의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와 덴마크의 프레데릭 2세
헨리 왕자는 왕위계승자로 어려서 부모와 떨어져 가정교사들에 의해 교육을 받았으며, 자신의 궁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동생인 찰스와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헨리가 9살이 되었던 1603년 그의 아버지인 제임스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국왕 제임스 1세가 됩니다. 잉글랜드 의회는 그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지만, 그의 아들이자 잘생기며 재능이 뛰어난 후계자 헨리에게 반합니다.
헨리 왕자
헨리는 1605년 옥스퍼드 대학의 마그달렌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스포츠에 매우 관심을 많이 가졌으며, 많은 교육 덕택에 시나 예술 방면에서 풍부한 지식을 쌓게 됩니다. 또 군대에 대한 관심도 매우 컸는데, 그는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의 육군이나 해군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스포츠에도 뛰어났으며, 군대에 대한 관심도 컸고, 예술에도 소질을 가지게 되는 교양있는 사람으로 성장한 헨리에 대해 잉글랜드 귀족들은 매우 큰 기대감을 표시합니다.
게다가 헨리는 종교 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한 신교도였습니다.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는 그때까지도 카톨릭과 신교도의 종교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와의 결혼을 통해서 이 문제에 접근하려는 아버지 제임스 1세에게 헨리는 "두 종교간의 갈등은 제 침상에서 해결하지는 않을겁니다."라고 말하면서 프랑스 공주와의 결혼을 거절했다고 전해집니다.
말을 탄 헨리 왕자
헨리는 아버지 제임스1세의 정책에 대해 종종 대놓고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제임스 역시 아들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특히 그는 월터 롤리와 매우 친한 사이였으며 아버지가 월터 롤리를 런던탑에 가둔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고 합니다.
헨리 왕자의 아버지 제임스 1세
1612년 18살의 헨리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사망합니다. 아마도 그의 병은 장티푸스였으리라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은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매우 큰 손실이었습니다. 헨리가 죽었을때 동시대 사람중 한명은 " 잉글랜드의 어느 왕위계승자도 헨리 왕자보다 더 큰 슬픔을 안겨준 이는 없었다."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죠.
헨리의 죽음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의 왕위는 동생 찰스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의 치세는 결국 내전(청교도 혁명)으로 얼룩지게 되고, 찰스는 목이 잘리게 되죠.
카톨릭에 호의적이었던 찰스 1세에 대한 불만은 결국 엄격한 신교도였던 그의 형인 헨리에 대해서 더욱더 좋은 평가를 내리게 된 원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헨리의 동생
잉글랜드의 찰스 1세
자료출처
2.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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