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다시 서비스 타임이 돌아왔습니다.
뉘신가 덴마크 왕비님들에 관심이 많으신듯해요. 사실 전 스웨덴이 관심이 있는지라 덴마크는 잘 모르는데 뭐 덴마크가 스웨덴 옆나라이니 그냥 한번 적어볼까합니다.
사실 덴마크 왕비님들은 길게 쭈욱 써야하는데..그럼 너무 기니까 중간에 잘라보겠습니다.
자르는것은 바로 크리스티안9세를 기준으로 합니다.
크리스티안9세는 덴마크 왕가인 올덴부르크 가문의 분가입니다. 하지만 오래오래전에 분가한 가문이었죠
(최근 칼마르 동맹에 대해서 좀 읽어서 이제서야 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중요한지 알겠더라구요.ㅎㅎㅎ) 어쨌든 직계가 끊어지면서 19세기 유럽 최고의 정치적 문제였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가 등장하죠. 뭐 그건 나중에 설명하던가 말던가하고 (설명했던가..-0-;;) 어쨌든 크리스티안9세부터 해봅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데르부르크-글뤽스부르크(덴마크식으로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걍 스웨덴식으로 읽으면 될까요..-0-;;비슷한거 같은데 말입니다..ㅎㅎㅎ 책을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가문에서 처음으로 왕이 된사람은 크리스티안9세였습니다. 사실 그는 부인인 헤센-카셀의 루이제보다 더 왕위계승권이 후 순위였습니다. 그가 왕이 된것에는 루이제와 결혼한것도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제목에 가문이름을 다 안적은 이유는 글자제한때문에 가문이름이 다 안들어가서입니다..ㅠ.ㅠ
(길이를 보세요..흑..)
헤센-카셀의 루이제
덴마크의 루이세 왕비
크리스티안9세의 왕비
Louise of Hesse
(German: Luise Wilhelmine Friederike Caroline Auguste Julie von Hessen-Kassel,
Danish: Louise Wilhelmine Frederikke Caroline Auguste Julie)
(7 September 1817, Kassel – 29 September 1898, Bernstorff Palace)
헤센-카셀의 루이제는 헤센-카셀의 란트그라프인 빌헬름과 그의 부인인 덴마크의 루이제 샤를로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루이제의 외조부는 덴마크의 프레데릭5세의 아들이자 덴마크의 추정왕위계승자였던 프레데릭이었고,외삼촌은 덴마크의 국왕인 크리스티안8세였습니다.
루이제는 당시 덴마크 국왕이 아끼던 친척이었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데르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크리스티안공과 결혼했습니다. 크리스티안공은 가난한 덴마크 장교였기에, 루이제의 아버지는 이 결혼을 탐탁치 않아했습니다.
복잡한 왕위계승문제를 걸쳐서 크리스티안9세가 덴마크의 왕이 되면서 루이제 역시 왕비가 됩니다.
루이제는 딸들을 모두 좋은 혼처에 시집보낼려고 했다고 합니다.
루이제는 모두 여섯 아이를 낳았고, 첫째 딸인 알렉산드라는 영국의 왕비가 둘째딸인 다그마르(다우마)는 러시아의 황후 셋째딸인 티라는 하노버의 공작부인이 되었습니다. 큰아들인 프레데릭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덴마크의 왕이되었고, 둘째아들인 빌헬름은 그리스의 국왕인 게오르기오스1세가 되죠. 막내아들은 발데마르로 노르웨이의 국왕 후보였다고 합니다.
크리스티안9세의 아들인 프레데릭8세는 스웨덴의 로비사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스웨덴의 로비사 공주
덴마크의 루이세 왕비
덴마크의 프레더릭8세의 왕비
Princess Lovisa (Louise) Josefina Eugenia of Sweden and Norway
after Queen Louise of Denmark
스웨덴 공주였던 루이세 왕비에 대해서는 이미 글을 적었습니다. 제 글인 "조카를 위한 역사이야기...2.스웨덴의 로비사 공주(덴마크의 루이세 왕비) http://blog.daum.net/elara1020/8464059 "를 참조해주세요.
프레데릭8세의 아들은 크리스티안10세로 그는 메클렌부르크-슈벨린의 알렉산드리네와 결혼했습니다.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알렉산드리네
덴마크의 알렉산드리네 왕비
크리스티안10세의 왕비
Alexandrine Auguste of Mecklenburg-Schwerin
(24 December 1879 – 28 December 1952)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알렉산드리네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인 프리드리히 프란츠3세와 그의 부인인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인 아나스타샤 여대공은 니콜라이1세의 손녀였으며, 알렉산드리네의 고모인 마리는 러시아의 미헨대공비였습니다.
또 여동생인 체칠리에는 독일의 황태자비였고, 남동생은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네 왕비는 매우 온화한 사람으로 다른이들에게 친절했고, 남편에게는 매우 순종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정치에 절대 개입하지 않았고, 시어머니처럼 자선사업등에 전념했으며, 시어머니가 죽은후에는 시어머니의 자선사업을 물려받아 계속했다고 합니다.
정원손질에 흥미를 가졌고, 음악을 좋아했고 예술의 후원자였다고 합니다. 또 바느질에도 매우 관심이 많았는데, 자선사업을 위해 손수 바느질한 물건들을 내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강압적인 남편의 비위를 맞추느라 마음고생좀 하셨을듯해요.^^*)
크리스티안10세의 아들인 프레데릭9세는 할아버지처럼 스웨덴 공주와 결혼했습니다.크리스티안10세와 잉리드 왕비는 현 덴마크 여왕님의 부모입니다.^^*
스웨덴의 잉리드
덴마크의 잉리드 왕비
프레데릭 9세의 왕비
Ingrid of Sweden
(Ingrid Victoria Sofia Louise Margareta)
(28 March 1910 – 7 November 2000)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는 스웨덴의 구스타프6세 아돌프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코넛의 마거릿의 고명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인 마거릿은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였기에 잉리드는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중 한명입니다. (후에 새어머니가 되는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역시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죠.^^*)
잉리드가 10살이 되었을 무렵 어머니인 코넛의 마거릿이 사망했고, 3년후 아버지가 재혼하죠. 잉리드는 새어머니와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친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데 새어머니가 온다는 생각에 반발심이 컸을것입니다. (루이즈와 루이즈의 가족들이 구스타프와 그의 아이들을 만난 자리에서 잉리드는 매우 우울했다고 합니다. 루이즈의 어머니 빅토리아는 잉리드에 대해서 -매우 가여운 아이-라고 묘사할정도였습니다.)게다가 새어머니와 알아갈 시간도 없이 영국의 외가로 보내져서 교육을 받았기에 새어머니와 더욱더 서먹했을것입니다.
잉리드는 영국에서 다른 영국 공주들처럼 교육받았고, 야외스포츠를 즐겼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자 우아한 이 신교 공주에 대해서 영국 언론들은 영국 왕자들의 신부감으로 여겼습니다. 한때는 웨일즈공(후에 에드워드8세)의 신부후보로 여기기도 했으며, 켄트공작 조지와는 약혼이야기가 파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잉리드는 덴마크의 왕위계승자인 프레데릭과 결혼하죠.
덴마크에서 잉리드는 매우 잘 처신했으며, 완고한 시아버지의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티안10세와 프레데릭9세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특히나 2차대전기간 크리스티안10세가 실권을 잃고 프레데릭9세가 그 뒤를 이었을때는 사이가 극한에 까지 이르렀지만, 잉리드는 중간에서 남편과 시아버지 사이를 잘 중재했다고 합니다.
잉리드는 매우 사랑받는 덴마크 왕비였으며, 그녀는 완고한 궁정을 좀더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 아이와 행복한 가정생활을 국민에게 보여줬죠. (글을 읽어보면 잉리드 왕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전 한때 루이즈 왕비를 힘들게 해서 별로 안좋아했는데, 나중에보면 잉리드가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이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자신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기에, 역시 새어머니와 아버지가 행복한것을 이해했을거라는것이죠.)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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