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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68) 호엔슈타우펜 가문 : 벨프 가문과의 갈등(1)

엘아라 2022. 9. 3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복잡한 벨프 가문과의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하는군요 흑

 

유럽의 통치 가문들...(68) 호엔슈타우펜 가문 : 벨프 가문과의 갈등(1)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벨프 가문의 갈등의 시작은 아마로 황제 로타르 3세가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갈등을 빚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로타르 3세는 자신의 사위인 벨프 가문 출신의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10세를 자신의 후계자나 다름 없게 만들었으며 그와 그의 가문에 여러가지 이익을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하인리히 10세는 바이에른과 작센의 공작령을 가진 강력한 인물로 성장했으며, 그의 가문의 다른 사람들 역시 이탈리아쪽 영지를 얻으면서 힘을 더 얻게 됩니다. 하지만 로타르 3세가 죽고 난뒤 왕위는 호엔슈타우펜 가문 출신의 콘라트3세에게 돌아갔으며 콘라트 3세는 자신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하인리히 10세와 벨프 가문 자체에 대해서 압박을 가했습니다. 특히 콘라트 3세는 하인리히 10세의 두개의 공작령을 모두 뺏아버리기까지 했으며 하인리히 10세는 영지내 신하들의 지지로 영지를 되찾을 가능성이 컸습니다만 작센 지방을 되찾은뒤 갑작스럽게 사망하기에 혼란해졌었습니다. 결국 정치적 합의를 통해서 하인리히 10세의 아들인 하인리히 데어 뢰베가  작센 공작령의 상속만 인정받았었습니다.

 

하인리히 데어 뢰베

 

이후 콘라트 3세가 죽고 프리드리히 1세가 즉위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콘라트 3세의 조카였던 프리드리히 1세는 사촌보다 자신의 명분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제후들을 회유했었습니다. 그중에는 사촌이었던 하인리히 데어 뢰베나 벨프 가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1세는 황제가 된후 하인리히 데어 뢰베에게 그가 원했던 바이에른 공작령을 줘서 이제 하인리히 데어 뢰베는 두개의 공작령을 소유한 강력한 영주로 성장하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롯사

 

프리드리히 1세와 하인리히 데어 뢰베의 관계는 한동안 좋았습니다만 강력한 영주인 하인리히와 황제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1세는 로마로 가서 황제로 대관했지만 이후 그는 하인리히 데어 뢰베와의 관계가 나빠집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지만 직접적 원인은 하인리히 데어 뢰베가 숙부의 영지였던 이탈리아쪽의 영지를 원했는데 프리드리히 1세는 이미 두개의 공작령을 가진 하인리히 데어 뢰베에게 이탈리아쪽 영지마저 줄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둘의 관계는 틀어졌으며 이제 황제는 숙부처럼 하인리히 데어 뢰베의 두개의 공작령을 뺏아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두개의 공작령은 숙부였던 콘라트 3세처럼 자신의 측근들에게 주게 됩니다. 작센 공작령은 안할트의 백작이었던 베르나르트에게 줬습니다. 베르나르트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작센의 공작령을 통치했으며 후에 벨프 가문이나 베틴 가문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결국 베틴 가문이 작센 공작령을 차지하게 됩니다. 바이에른 공작령은 비텔스바흐 백작이었던 오토에게 주게 됩니다. 이후 바이에른 공작령은 20세기까지 비텔스바흐 가문의 영지로 남았으며 이 바이에른 공작령을 토대로 비텔스바흐 가문이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오토 폰 비텔스바흐, 바이에른 공작 오토 1세 이후 바이에른 공작령은 계속해서 비텔스바흐 가문이 통치했습니다.

 

하인리히 데어 뢰베는 당장 영지를 뺏기게 되자 어쩔수 없이 가족을 데리고 처가로 향하게 됩니다. 하인리히 데어 뢰베는 헨리 2세의 딸이었던 잉글랜드의 마틸다와 결혼했으며 이것은 그가 잉글랜드의 국왕이자 노르망디와 앙주 아키텐 등을 통치하던 헨리 2세의 지지를 얻을수 있다는 것을 이미했습니다. 그는 다시 독일로 돌아왔고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모집해서 이제 다시 뺏긴 영지를 되찾으려했습니다. 하지만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세력 역시 만만치 않았으며 결국 하인리히 데어 뢰베는 작센 지역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고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를 중심으로하는 지역만을 손에 넣을수 있었습니다. 이후 프리드리히 1세는 잠시 하인리히 데어 뢰베와 평화 이루었으며 그가 차지한 지역에 대해서 통치권리를 어느정도 인정해주는 선에서 합의를 보게 됩니다.

 

하인리히 데어 뢰베와 잉글랜드의 마틸다의 결혼식, 왼쪽은 신랑쪽 친척들인 외할아버지인 로타르 3세 부부와 부모인 하인리히 10세 부부, 오른쪽은 신부쪽 친척들인 아버지 헨리 2세와 할머니 마틸다 황후 그리고 아마 맨 마지막은 엘레오노르 다키텐인듯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벨프 가문과 호엔슈타우펜 가문과의 갈등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