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57) 마리아 1세 : 주제 1세의 딸 (두번째)

엘아라 2018. 8. 2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57) 마리아 1세 : 주제 1세의 딸 (두번째)



포르투갈의 마리아 1세

 Maria I of Portugal, Brazil and the Algarves 

(17 December 1734 – 20 March 1816) 

 Maria the Pious (in Portugal), or Maria the Mad (in Brazil),



마리아는 왕위에 오른뒤 제일 처음으로 한 것은 폼발 후작을 실각시키는 일이었습니다. 폼발 후작은 계몽주의 관점에서 포르투갈을 개혁하려했고 이것은 예수회 탄압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마리아는 이미 왕위에 오르기전부터 국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하던 폼발 후작에게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매우 독실한 신자였던 마리아는 폼발 후작의 반 예수회 성향 역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폼발 후작



하지만 통치 초기 마리아는 여러가지 괜찮은 정책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녀는 과학기술등을 발전시킬수 있게 왕립 아카데미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왕실 도서관을 세웠을뿐만 아니라 해군력이 우선인 포르투갈의 발전을 위해서 해군 사관학교를 세우기도 합니다. 또 여러가지 외교정책을 통해서 포르투갈의 이익이 되는 외교 정책을 펴기도 했었습니다. 또 수많은 자선사업을 했을뿐만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으로 망명한 귀족들을 받아들이기도 했었죠.



마리아 1세


하지만 이런 통치는 오래가지 못하는데 마리아의 정신적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종교에 너무 헌신적이었기에 심각한 성격이었으며 우울증을 앓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할아버지였던 주앙 5세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포르투갈 왕가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고려해보면 가족력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포르피린 증같은 유전병?) 

그녀의 정신적 건강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것은 1786년이었습니다. 1786년 마리아는 섬망증상(불안 초조함이 심해지는 경향으로 환각등을 동반함)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이런 마리아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데 바로 마리아의 남편인 페드루가 1786년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791년 장남이자 후계자였던 주제가 사망하면서 마리아의 상태는 더욱더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 페드루 3세와 함께 있는 마리아 1세


1792년 마리아는 영국의 조지 3세를 치료했던 의사였던 프랜시스 윌리스에게 치료를 받습니다. 윌리스는 여왕을 영국으로 데려가서 치료를 하고 싶어했지만 포르투갈 의회는 이를 거절하비다. 결국 마리아는 통치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었고 그녀의 둘째아들이자 형이 죽은뒤 후계자가 된 주앙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통치하게 됩니다. 그는 1799년이 되어서야 "섭정왕자"칭호를 얻게 됩니다. 

마리아의 상태는 이후 점차 더 악화되는데 이를테면 1794년 궁전이 불타서 왕실 가족들 모두 다른 궁전으로 가야했을때 마리아는 자신의 방에서 온종일 누워있었고 계속 비명을 질러댔었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아들 주앙

후에 주앙 6세 

(..ㅠ.ㅠ 로마자는 맨날 헷갈려요..ㅠ.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후 전 유럽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790년대부터 전 유럽은 전쟁에 휩쌓이게 되었고 포르투갈 역시 여기 휩쓸리게 되죠. 하지만 마리아는 이당시 이미 통치 능력을 상실했으며 이때문에 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녀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존재였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포르투갈의 여왕이었으며 포르투갈 왕가와 함께 해야했기에 고향을 떠나 멀고먼 남미까지 가야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포르투갈은 영국과 협력관계였고 결국 프랑스의 침공을 받게 됩니다. 이에 포르투갈 왕가는 포르투갈을 떠나서 식민지였지만 멀고먼 남미에 있어서 유럽의 전쟁에 영향을 받지 않는 브라질로 옮겨가기로 합니다. 마리아 역시 왕실 가족들과 함께 가야했습니다만 그녀에게 이 여행은 역시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습니다. 



브라질에 도착하는 포르투갈 왕실 가족들


마리아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까지도 브라질에 있었는데 이것은 복잡한 포르투갈 내부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리아는 브라질에서 사망했습니다. 그후에 그녀의 시신은 포르투갈로 옮겨가게 됩니다.


마리아는 포르투갈과 브라질 두군데서 매우 호의적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비록 후반기에는 거의 통치 행위를 하지 못했지만 독립적 여성군주로 포르투갈을 다스렸었기에 포르투갈에서는 앞서간 여성으로 호의적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브라질에서는 그녀의 통치기에 브라질 독립의 기반을 쌓았기에 역시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마리아 1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