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음악이야기

카스트라토 이야기...(6)"쿠사니노" 지오바니 카레스티니 (첫번째)

엘아라 2015. 6.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그나마 자루스키 앨범이 있어서 카레스티니도 몇편 할수 있을듯합니다.ㅎㅎㅎ


카스트라토 이야기...(6)"쿠사니노" 지오바니 카레스티니 (첫번째)




지오바니 마리아 베르나르디노 카레스티니

쿠사니노

Giovanni Maria Bernardino Carestini 

(1700 – c. 1760)


지오바니 마리아 베르다니노 카레스티니는 현재 안코라지방의 필로타라노(Filottrano)인 몬테 필로타로노에서 1700년 12월 13일 태어났습니다. 카레스티니의 출생일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는데 1705년이나 1704년등을 언급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카레스티니가 음악경력을 시작하기 전의 상황은 거의 알려진바가 없습니다. 아마도 다른 많은 카스트라토들처럼 가난한 집안의 출신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그 때문에 그의 후원자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것일듯합니다.


카레스티니를 처음으로 후원하고 가수가 되도록 후원한 인물은 추기경이었던 아고스티노 쿠사니였다고 합니다. 쿠사니 가문은 이탈리아의 귀족가문중 하나로 가문에서 여러명의 성직자를 배출한 가문이었습니다. 쿠사니 추기경은 교황대사로 프랑스에 가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카레스티니는 음악경력 초기에는 "일 쿠사니노"(대충 쿠사니네사람정도일듯합니다.-0-;;)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고 합니다.



2595 - Milano - S. Pietro in Gessate - Lapide card. Agostino Cusani (+ 1730) - Foto Giovanni Dall'Orto, 22-Feb-2008

아고스티노 쿠사니 추기경의 묘비



열세살 무렵의 카레스티니는 추기경의 후원으로 추기경의 거주지였던 밀라노로 갔으며 그곳에서 음악교육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1720년 카니발 시즌에 미라노의 Teatro Regio Ducale에서 데뷔했었습니다.

데뷔한 다음해에는 카레스티니는 로마로 가서 데뷔하게 됩니다. 당시 교황령에서는 "여성이 노래부르는것"을 금지하고 있었기에 카스트라토들이 여성 대역으로 많이 노래를 불렀었는데 카레스티니 역시 데뷔무대에서는 여성역할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카레스티니는 로마에서 매우 환영받았기에 다음 시즌에도 초대받게 되죠. 재미난것은 카레스티니는 로마 데뷔때 Teatro Capranica에서 데뷔를 했는데 그 다음해에는 teatro capranica의 경쟁 극장이었던 Teatro delle Dame에서 카레스티니를 선수쳐서 모셔왔다고 합니다.


1722년 로마에서 카레스티니는 포르포라의 flavio anicio olibrio에 출연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카레스티니는 포르포라의 특별한 제자를 만나게 되죠. 바로 후에 "파리넬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되는 카를로 브로스키였습니다. 파리넬리는 로마에서 매우 인기있는 가수였는데 그는 이미 뛰어난 기교를 가진 가수였었죠. 카레스티니는 상대적으로 파리넬리보다 테크닉이 딸렸는데,그는 파리넬리와는 다른 좀더 기교가 아닌 맑고 단순한 소리를 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카레스티니에 대해서 파리넬리보다 노래에서는 기교가 딸리지만 대신 연기는 더 낫다는 평가를 받게 했었던듯합니다.(...파리넬리가 노래는 잘불렀는데 상대적으로 연기가 좀 아니라고 하던가 그렇더라구요.-0-;;; 재능은 공평한듯...--;;;)


여성 역할을 맡고 있는 파리넬리


이후 카레스티니와 파리넬리는 로마에서 세시즌동안 각각 라이벌 극장들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런 라이벌 구도는 어느시대나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야기중 하나로 결국 카레스티니의 명성 역시 올라가는 계기가 되는것이었죠. 카레스티니는 1723년 4월 1일 빈의 궁정에서 칼다라의 오라토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이후 황제 카를 6세가 보헤미아의 국왕으로 대관한것을 기념한 공연에서 노래를 불렀었습니다. 이 공연이후 카레스티니는 "황제폐하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전 이탈리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포르포라의 오페라 Siface중 Tu che d'ardir m'accendi

1724년 카레스티니가 부른 노래

필립 자루스키


....개인적으로 이 노래 좋아합니다 -0-;;;



카레스티니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전 이탈리아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의 인기는 점차 더 높아지게 되죠.특히 베네치아에서는 다시 포르포라의 오페라에 출연하기도 했었으며 1726년에는 파르마에서 안토니오 파르네세가 새 후원자가 되기도 합니다. 카레스티니는 1728년 나폴리무대에 처음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나폴리에서 거장으로 칭송받던 작곡가 요한 아돌프 하세를 만나게 되죠. 나폴리에서 하세의 오페라로 데뷔한 카레스티니는 하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하세는 카레스티니를 매우 높게 평가했고 이런 상황은 카레스티니의 명성이 더욱더 높이 올라가게 만들었습니다. 카레스티니는 나폴리 출신 작곡가들중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빈치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가수였으며 다른 많은 가수들이 함께하고 싶은 가수이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다는 아니었는데 라이벌 관계였던 파리넬리가 대표적이라고 합니다.-0-;;;



Capelli의 오페라 I fratelli riconosciuti 중 Ciel nemico

1726년 파르마에서 카레스티니가 부른 노래

필립 자루스키(카운터테너)


이후 카레스티니는 바이에른 선제후의 궁정에 가서 노래를 불렀으며 선제후에게서 "명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황제도 부여하더니..-0-;;) 그리고 로마등을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죠.

카레스티니 역시 영국에서 일어나던 거대한 오페라 전쟁을 피할수는 없었습니다. 카레스티니는 1733년 가을 이탈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가게 됩니다. 1년후 그의 라이벌인 파리넬리도 영국으로 오게 되면서 다시한번 두 라이벌간의 대결이 일어나게 되죠.


자료출처

1.필립 자루스키 카레스티니 헌정 앨범 : the story of a castrato(2007)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