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시리즈가 끝이군요.--;;
사실 원래 하는 시리즈가 아닌데 이번주가 이상하게 3월에 걸려서 말입니다.
깔끔하게 이번주까지 하고 끝낼까합니다.
...귀천상혼 이야기는 한주 쉽니다.^^*
[번외편]오스트리아의 황후들...(15)부르봉-파르마의 치타 : 마지막 황후
부르봉-파르마의 치타
오스트리아의 황후
Princess Zita of Bourbon-Parma
(Zita Maria delle Grazie Adelgonda Micaela Raffaela Gabriella Giuseppina Antonia Luisa Agnese)
(9 May 1892 – 14 March 1989)
치타는 일곱아이들과 곧 태어날 아이가 있었죠. 이런 그녀에게 에스파냐의 알폰소 13세는 거처를 제공했고 치타는 아이들을 데리고 에스파냐로 갔습니다. 그리고 막내인 엘리자베트 여대공이 에스파냐에서 태어났습니다. 치타는 다른 망명왕족들처럼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이미 사망한 뒤였죠. 수입의 대부분은 오스트리아에 있던 개인 재산에서 나왔는데 이마저 다른 황실 가족들이 분배를 요구했었다고 합니다. 또 치타는 다른 망명왕족들처럼 옛가신의 도움 요청을 외면하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하자 치타는 아이들을 데리고 벨기에로 가게 됩니다. 벨기에의 엘리자베트 왕비는 치타의 사촌이기도 했고, 다른 가까운 친척들도 벨기에근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Empress_Zita_in_Leiquitio.jpg
벨기에에서의 치타와 아이들
자료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Empress_Zita_in_Leiquitio.jpg
(위키에 올라와있지만 저작권이 걸려있어서 일단 올립니다만 문제가 되면 링크만 남겨둡니다.)
1930년대 합스부르크가문은 국외의 반나치운동의 중심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벨기에를 점령하면서 치타는 아이들과함께 벨기에를 떠나야만했었죠. 잠시 프랑스에 있던 오빠 자비에르의 성에 머물렀지만 프랑스 역시 독일에 협력하게 되면서 치타와 가족들은 다시 프랑스를 떠나야했습니다. 이때 미국에서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을 위해 비자를 발급해줘서 가족 모두는 미국으로 갔었죠.
이후 퀘벡에 머물게 된 치타는 남은 어린 아이들과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게 됩니다. 유럽에 있던 수익이 모두 끊어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치타의 다큰 아들들은 모두 전쟁에 관계된 일을 합니다. 카를과 펠릭스는 미국 공군으로복무했고, 루돌프는 전쟁 막바지 시기에 직접 오스트리아로 가서 레지스탕스를 조직을 돕기도 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후에는 치타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재건을 위한 펀드를 모으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 각지를 돌기도 햇었습니다.
2차대전후 치타는 퀘벡에 머물렀지만 자녀들의 결혼등 다양한 일로 자주 유럽으로돌아갔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룩셈부르크로 이주합니다. (샤를로테 여대공의 남편이 치타의 남동생이었죠.) 어머니가 죽은 1959년 이후 쿠어의 주교는 치타에게 자신이 관리하던 성에서 거주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치타는 이를 수락하고 스위스로 갑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Zitafamily1962.jpg
1962년
아이들과 함께
사진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Zitafamily1962.jpg
(저작권이 걸려 있네요. 일단 올립니다만 문제가 되면 링크만 남겨둡니다.)
이후 치타는 다른 어머니들처럼 가족들과 편안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로의 방문이 허용된뒤로는 오스트리아에 자주 갔으며 심지어 오스트리아 텔레비전에 출연하기도 했었습니다. 치타의 여러 인터뷰중 마이어링 사건(프란츠 요제프의아들인 루돌프와그의 정부인 마리베체라가 자살한 사건)이 사실 둘의자살이 아니며 오스트리아 요원들에 의해서 암살당한것이라고 이야기한것도있었습니다.
90살까지 건강하게 살았던 치타는 이후 건강이 나빠졌으며 결국 96살의 나이로 가족들에 둘러쌓여사망합니다. 치타가 죽은후 오스트리아 정부는 황후의 장례식을 허용했고 치타의 장례행렬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장례 행렬과 똑같은 곳을 지났으며, 같은 장례의식이 치뤄지죠. 치타는 오스트리아의황후이자 헝가리의 왕비로 합스부르크가의 영묘인 카푸친 성당에 묻히게 됩니다.
치타의 관
사진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Kaisergruft_Zita_von_Bourbon-Parma.JPG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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