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신성로마제국의황후들(완결)

[번외편]오스트리아의 황후들....(6) 바이에른 공작영애 엘리자베트 : 프란츠 요제프의 황후

엘아라 2012. 12.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글을 쓸려는데 많이 쓸려니 뒤에 생각해놓은 시리즈가 없어서 마구마구 잘라서 쓰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12월 21일날 최후의 날이라는 괴담이 돌았는데...내일이군요.

내일 멀쩡하면 귀천상혼 이야기 계속합니다. (동지라 세상 안 망하면 팥죽먹기로 했어요..ㅎㅎㅎㅎ)


아부지께 12월 21일날 종말이 온대요...라고 했더니 아부지께서 "크리스마스로 하지 왜 21일이냐"라고 하시더라는...ㅎㅎㅎㅎ 동짓날이라서 그런듯합니다.-0-;;;




[번외편]오스트리아의 황후들....(6) 바이에른 공작영애 엘리자베트 : 프란츠 요제프의 황후











바이에른 공작영애 엘리자베트

오스트리아의 황후

Duchess Elisabeth in Bavaria

Empress Elisabeth of Austria

Elisabeth Amalie Eugenie  

(24 December 1837 – 10 September 1898)




시씨황후는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은 당시 왕족으로써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죠. 그는 왕족답지 않게 서커스를 좋아했고, 평민들과 어울리는것을 더 즐겼습니다. 그리고 왕족으로써의 의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자주 해외로 떠돌아다녔습니다. 이것은 후에 시씨가 황실의무로부터 도망다니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었죠.

시씨의 가족들은 막스가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으로 지은 성인 포센호펜(Schloss Possenhofen)에서 살았습니다. 이곳은 바이에른의 중심지에서 떨어진 시골지역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뮌헨의 궁정보다는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수 있었다고 합니다.이를테면 시씨는 말타러 가느라 늘 수업을 빼먹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말탄 시씨의 모습


남편이 밖으로 떠도는동안 아이들은 책임진 사람은 시씨의 어머니 루도비카였습니다. 루도비카는 시골에 사는 공작부인정도 밖에 되지 않은 자신과 대가문으로 시집간 언니들을 보면서 자신의 아이들은 결혼을 잘 시키겠다고 생각했었을겁니다. 루도비카는 자녀들의 결혼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1853년 좋은 기회가 나타납니다. 루도비카의 언니이자 오스트리아 황제의 어머니였던 조피 대공비가 황후가 될 며느리감을 찾고 있었죠. 조피 대공비는 친정 식구들과 연결된 가문에서 며느리감을 구했지만, 프로이센과 작센에서 이미 실패했었기에 바이에른쪽에 신부감을 구하고 있었죠. 그리고 후보로 선택 된 사람은 루도비카의 큰딸이자 시씨의 언니인 헬레네였습니다. 조피 대공비는 조카와 아들을 선보이기 위해서 헬레네를 초청하게 됩니다. 당연히 선보는 자리였기에 부모가 따라가야했는데 이런 상황을 싫어했던 아버지 막스가 도망가버립니다. 결국 아버지 대신 따라간 사람이 바로 시씨였죠.



프란츠 요제프 황제

1851년


얌전하고 순종적이었으며 좀더 철이 들었던 헬레네와는 달리 시씨는 아직 어렸기에 명랑하고 활기 찼었습니다. 게다가 시씨가 헬레네보다 더 예뻤었죠. 젊은 프란츠 요제프는 얌전한 헬레네보다는 명랑하고 활기찬 시씨에게 반해버립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시씨가 아니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조피 대공비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제국의 황후로 시씨보다는 헬레네가 더 적합하다고 여겼었습니다. 시씨는 황후가 되기에 너무 어렸었죠. 하지만 프란츠 요제프는 이미 시씨에게 반해버린 상태였기에 아마도 조피대공비는  어린 시씨를 황후로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을듯합니다. 조피 대공비는 결국 이 결혼을 성사시키기로 합니다. 루도비카 역시 큰딸이 아닌 둘째딸이 황후가 되는것에 그다지 큰 불만은 없었다고 합니다.



헬레네와 엘리자베트

더 예쁜쪽이 시씨입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시씨는 매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훗날 그녀가 결혼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어린나이에 가족들에게 등떠밀려 시집가게 된 상황이 그다지 행복한 상황은 아니었던듯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이모가 기대를 하고 있었고, 프란츠 요제프가 사랑을 고백하는 상황이었기에 시씨는 그 상황에 휩쓸리게 되었죠.만난지 닷새후 시씨와 프란츠 요제프의 약혼은 공식적으로 발표됩니다. 그리고 여덟달 후에 둘은 결혼하게 됩니다. 이때 시씨의 나이는 만 열여섯살이었죠.


하지만 황후로써의 삶은 이전에 시씨가 살았었던 삶과는 너무나 다른것이었습니다.



시씨와 프란츠 요제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