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빅토리아 여왕부부입니다...--;;
여왕님만 지나면 복잡 다난한 하노버 왕가가 나오는군요...-0-;;;;
음...제가 순서가 국왕의 아들과 손자-국왕 이런식으로 올라가고 있기때문에 켄트공작이 애매하더라구요.
그래서 공작님을 여기서 다루기로 했습니다.=-=
켄트공작부인 대부모 정보가 있었으면 따로 뺐을텐데...켄트공작부인은 없네요.
(이미 공작부인들은 포기입니다..ㅎㅎㅎㅎ 나중에 독일어 사이트들을 한번 뒤져보던가 하죠..)
켄트공작 에드워드는 조지3세와 그의 왕비였던 샬럿 왕비의 넷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조지3세는 아들을 괴팅겐 대학에 보내려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하노버 군에서 복무하게 합니다.
그는 둘째형인 클라렌스 공작 윌리엄처럼 결혼하지 않고 정부와 살아가고 있었죠. 하지만 큰형의 유일한 적자인 샬럿 공주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자, 후계자 문제가 심각하게 되죠. 웨일즈공이자 섭정이었던 조지는 부인과 별거상태였고, 왕위계승자인 샬럿은 사망했죠. 둘째형인 클라렌스 공작역시 정식 결혼하지 않고 정부와 살고 있었고, 셋째형인 요크공작 역시 부인과 별거상태였죠.
의회는 왕위계승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식 결혼하지 않는 왕자들에게 부채탕감을 미끼로 왕실 결혼법에 적법한 여성과 결혼하라고 압력을 넣습니다. 이에 클라렌스 공작 윌리엄은 자신을 먹여살리고 10명의 아이를 낳았던 배우 도로시 조던을 버리고 작센-마이닝겐의 공녀와 결혼하죠. 켄트공작 역시 조카 샬럿의 남편 레오폴트의 누나였던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녀 빅토리아와 결혼합니다. 빅토리아 공녀는 그전에 라이닝겐 공과 결혼해서 두아이가 있었던 과부였죠.
결혼후 켄트공작은 빚때문에 영국에서 살수 없어서 독일로 가서 지냈습니다만, 켄트공작부인이 임신하자 왕위계승자가 될수도 있는 아이를 외국에서 태어나게 할수는 없었기에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었죠.^^* 하지만 켄트공작은 빅토리아가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사망했습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
켄트공작
Prince Edward of Great Britain, Duke of Kent
부모 : 조지3세와 메클렌부르크-슈르렐리츠의 샤를로테
켄트공작의 부모 조지3세와 샬럿왕비
출생일 : 1767년 11월 2일 버킹엄 하우스(후에 버킹엄궁)
세례식 : 1767년 11월 30일 버킹엄 궁
세례명 : 에드워드 아우구스투스
대부모
1.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뷰텔의 후계공 :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뷰텔의 공작 카를2세, 고모부 1대 헐트포드 백작인 프란시스 시무어-콘웨이가 대리
카를2세
딸인 캐롤라인은 조지3세의 아들인 웨일즈공(조지4세)와 결혼합니다.
2.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카를 공 : 외삼촌,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카를2세, 10대 헌팅던 백작 프란시스 해스팅스가 대리
3.헤센-카셀의 란트그라핀 : 아버지의 고모, 조지2세의 딸인 메리 공주, 해밀턴 공작부인(후에 아가일 공작과 재혼해서 아가일 공작부인)이 대리
4.브라운슈바이크-볼펜뷰텔의 후계공비 : 고모인 아우스타, 누군가 대리
아들과 함께 있는 아우구스타
빅토리아 여왕은 워낙 유명하시니...--;;;
빅토리아 여왕은 켄트의 빅토리아공주로 태어났습니다. 무려 세명이나 되는 백부가 있었고, 남동생이 태어날 가능성이 있긴했지만, 그중 두명의 백부는 적자가 태어날 가능성이 없었고, 다른 한명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사망했죠. 그리고 아버지 역시 돌이 되기전 사망했기에, 백부인 윌리엄4세가 즉위할때는 제1왕위계승자였죠. 어린시절 어머니 켄트공작부인의 과잉보호와 공작부인의 조언자였던 존 콘로이의 야심(자신의 영향력아래 있는 켄트공작부인을 섭정으로 만들려했죠)때문에 여왕은 어린시절 친구하나없이 외롭게 성장했다고 하비니다. 이때문에 여왕은 어머니와 존 콘로이를 무척이나 싫어했는데, 여왕은 즉위하자마자 어머니를 자신의 방에서 가장 먼 방으로 보내버릴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는 결국 여왕 즉위초에 문제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여왕이 결혼하고 나서 알버트공은 부인과 장모(고모이기도 했죠)사이에 중재를 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
빈터할터 그림
Queen Victoria
부모 : 켄트공작 에드워드 왕자 와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
출생일 : 1819년 5월 24일 켄징턴 궁
세례식 : 1819년 6월 24일 켄징턴 궁
세례명 :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세례명을 정할때 섭정왕자의 반대로 켄트공작부부가 원한 이름을 짓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부모의 이름 네개와 어머니이름을 합친 다섯개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넣길원했지만, 러시아를 싫어했던 섭정왕자는 자신의 이름이 러시아 황제 이름 앞이나 뒤에 들어가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고, 또 빅토리아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자신의 딸 샬럿의 이름이 들어가는것도 원치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또 아우구스타 역시 넣는것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가 너무 "거창해서"였다고 합니다.--;; 섭정왕자의 반대는 세례식에서 아이의 이름을 말할때까지도 계속되었고, 섭정왕자는 아이이름에 대해서 "알렉산드리나"라고 말했고 켄트공작은 엘리자베트,샬럿,아우구스타의 이름을 댔지만 섭정왕자는 반대했고 결국 아이 어머니 이름인 빅토리아를 붙였다고 합니다.
대부모
1. 러시아의 알렉산드르1세 : 백부인 요크 공작이 대리
러시아의 알렉산드르1세
빅토리아 여왕의 세례명중 알렉산드린이라는 이름은 이 황제의 이름을 딴것입니다만 여왕은 그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그냥 빅토리아라고 불리는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영국 왕실은 러시아를 무진장 싫어했는데 왜 러시아 황제가 등장하나 싶었더니, 빅토리아 여왕의 고모인 샬럿의 시누이가 바로 알렉산드르1세의 어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군요.
2. 섭정왕자 : 백부인 웨일즈공, 후에 조지4세
조지4세
여왕이 태어났을때 미친 아버지를 대신해서 섭정이었던 그는 부인과 사이가 무진장 않좋았습니다. 때문에 캐롤라인과 그의 사생활은 완전 스캔들의 극치였죠. (서로에게 실망한데다가 절대 서로를 이해못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조지4세는 부인과 이혼하기 위해 사람을 고용해서 염탐하게하고 의회에 회부해서 왕비칭호를 못받게 하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 딸과 헤어져 유럽으로 추방당하다시피한 캐롤라인에게 국민들이 좀더 동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의회 조사에 난리도 아니었던 이 사건은 결국 캐롤라인쪽의 승리로 왕비로 인정받는것으로 끝났습니다만 캐롤라인은 얼마 살지 못하죠. 조지4세는 부인이 죽은후 10년을 더 살다가 사망했습니다.)
조지4세가 조카가 태어났을때, 자신의 후계자는 사망했는데 동생의 딸은 건강하게 태어난것에 심술을 부려서 세례식때 이름가지고 트집을 잡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에 빅토리아 여왕은 어린시절 이 백부를 만난후 쓴 글에서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라고 했습니다.
3. 뷔르템베르크의 샬럿 왕비 : 고모인 프린세스 로열 샬럿, 다른 고모인 아우구스타가 대리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 왕비
프린세스 로열 샬럿
뷔르템베르크의 프리드리히1세의 두번째 부인
4.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아우구스테 공작부인 : 외할머니, 고모인 글로스터 공작부인 메리 공주가 대리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아우구스테 공작부인
러스-에르베스도르프의 아우구스테 백작녀(후에 공녀)
빅토리아 여왕의 외할머니이자 알버트공의 친할머니인 아우구스테는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 프란츠 프리드리히의 두번째 부인이었습니다.
러스 집안은 무척이나 오래된 집안으로 분가가 매우 많습니다. 초기 독일 왕가들처럼 이 가문도 장자상속제가 아니라 영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그라프(graf,백작)칭호만 유지했죠. 아우구스테의 가문은 독일의 가문들이 정리되는 19세기초 graf에서 Furst(Prince,공)칭호를 쓰게 됩니다.
아우구스테 공작부인의 어머니인 카롤리네는 에르바흐-쇤베르크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바텐베르크의 마리-바텐베르크 공비와 헤센의 알렉산더의 딸-가 이 가문으로 시집갔습니다. 이 가문도 백작가문이었는데 20세기초에 헤센대공가로부터 Frust칭호를 쓰도록 허락받습니다. 에르바흐 가문도 오래된 가문으로 역시 분가하기전에는 좀더 영향력있었습니다. 에르바흐-쇤베르크는 본가가 아니었기에 그다지 영향력있는 가문과 통혼하지 않았습니다만, 본가인 에르바흐-에르바흐 가문은 영향력 있는 가문과 통혼하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공은 여왕의 사촌으로 동갑이었습니다.
알버트공의 어머니인 루이제는 남편과 사이가 무척이나 좋지 않았고, 결국 이혼하게 됩니다. 루이제는 이후 아이들을 평생 보지 못했고, 젊은나이에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루이제의 둘째 아들이었던 알버트는 무척이나 감수성이 예민했기에 어머니의 죽음과 불행한 가족 관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형인 에른스트는 될대로 되라..라는 식으로 살았다고 합니다.-0-;;; 하지만 형제간에 사이는 무진장 좋았다고 합니다. ) 알버트공은 과학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서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촌인 빅토리아와 결혼하죠.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적 남편"이었던 알버트공은 부인에게 최선을 다하고 절대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아이들을 잘 돌보는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만 신혼초에는 무진장 싸우셨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무척이나 다혈질적인 성격이었고, 알버트공은 차분한 성격이었죠. 여왕과 알버트공이 의견이 맞지 않으면 알버트공은 서재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화를 속으로 삭히는 반면, 여왕은 그런 남편을 따라가서 퍼부어댔다고 합니다. 또 빅토리아 여왕이 너무 화를 내고 있으면, 아무말도 소용이 없었기에 알버트공은 언제나 아내에게 쪽지를 보내서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여왕은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알버트공에게 의지하게 되었는데, 모든 일을 남편에게 의지했습니다. 때문에 남편이 사망했을때 여왕은 아무일도 할수 없었고, 마치 나침반을 잃은 배같았다고 합니다.
알버트공
역시나 빈터할터 그림
...이그림은 그다지 사기는 아닌것 같아요.
알버트공이 나이들면서 머리가 벗겨지면서 살이찌셔서 그렇지 젊을땐 확실히 잘생기신듯하더라구요.
..--;;그런데 위키에 King of UK이라고 나오는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랩니까...ㅠ.ㅠ
진짜 위키를 못믿게 만들려고 작정한듯합니다...위키의 장점을 악용하는 일이 없어야하는데 말입니다.ㅠ.ㅠ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Prince Consort
부모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1세와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루이제 공녀
부모인 에른스트1세와 루이제 공작부인
출생 : 1819년 8월 26일 슐로스 로제나우,코부르크 근처
세례식 : 1819년 9월 19일 슐로스 로제나우
세례명 : 프란츠 카를 아우구스트 알베르트 엠마누엘
대부모
1.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2세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1세
나폴레옹의 두번째 부인인 마리 루이즈의 아버지죠
아마도 알버트공의 가문이 반 나폴레옹파로 나폴레옹에게 대항해서 군복무를 했고 알버트공의 고모부가 제국국의 장군에 외교장관에 수상까지 지내는 인물이라 그 인연으로 대부가 된듯합니다..--;;
2.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공작 아우구스트: 외할아버지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공작 아우구스투스
그가 죽은뒤 그의 동생이 공작령을 물려받았지만, 그 역시 후계자가 없었고, 결국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령에 대한 상속문제가 발생합니다.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에른스트1세는 고타를 상속받으려 했지만, 그는 루이제와 이혼했기에 다른 분가들이 반대했고, 결국 잘펠트를 작센-마이닝겐에 양도한후 고타를 물려받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됩니다.
3. 작센의 알베트르 공 : 테센공작
작센의 알베르트공 ,테센의 공작
그는 작센의 선제후의 아들로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사촌인 마리아 요제파였습니다.
누나인 마리아 요제파는 루이 16세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가장 사랑한 딸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연애결혼을 했습니다.
여제는 그에게 테센 공작지위를 주었고, 대공칭호를 쓰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여제의 다른 딸들이 언니를 질투했다고 하죠.)
4. 멘스도르프-포우일리의 백작 엠마누엘 : 고모부
멘스도르프-포우일리의 백작 엠마누엘
그는 에른스트1세의 큰누나와 결혼했습니다. 그의 가문은 로렌지방출신이라고 합니다.
제국군 사령관이었으며, 오스트리아 외무장관과 수상을 역임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GNU Free Documentatopm Licence 1.2버전이나 그 이후 버전으로 수정배포할수 있습니다.)
5.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아우구스테 공작부인 : 할머니, 러스-에르베스도르프의 아우구스테
할머니 아우구스테 공작부인
자료출처
1.Yvonne's Royalty Home Page
http://mypage.uniserve.ca/~canyon/index.htm
2The Last Princess: The Devoted Life of Queen Victoria's Youngest Daughter (2008. Matthew Dennis)
3.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피디어&위키미디어 커먼스 (독일어 사이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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