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있는글들/화요일 : 에스파냐 211

나바라의 인판타들...(36) 나바라의 이사벨 : 카를로스 3세의 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흑흑흑...글을 다 쓸수 있을 까요...ㅠ.ㅠ 나바라의 인판타들...(36) 나바라의 이사벨 : 카를로스 3세의 딸 나바라의 이사벨 아르마냑 백작부인 Isabella of Navarre (1395 – 31 August 1450) 나바라의 이사벨은 나바라의 국왕 카를로스 3세와 그의 아내인 카스티야의 레오노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레오노르는 친정인 카스티야가 매우 복잡한 정치 상황에 놓여있을때 여기 참여했었습니다. 이때문에 그녀는 임신한 와중에도 카스티야에 갔었다고 합니다. 레오노르는 이사벨을 임신했을때 카스티야에 갔었지만 남편의 요청과 아이를 낳기 위해서 다시 나바라로 돌아왔었다고 합니다. 이사벨은 친척이었던 아라곤의 후안과 약혼합니다. 후안은 아라곤의 ..

나바라의 인판타들...(35) 나바라의 블란카 : 카를로스 3세의 딸 (두번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쓰다보니 참 많은데 사실 자료를 더 찾았거든요. 그런데 읽기가 싫습니다. 흑 나바라의 인판타들...(35) 나바라의 블란카 : 카를로스 3세의 딸 (두번째) 나바라의 블란카 시칠리아의 왕비 나바라의 여왕 Blanche I (6 July 1387 – 1 April 1441) 블란카는 1415년 나바라로 돌아왔으며 나바라로 돌아온후 그녀는 왕위계승자가 되었으며 나바라의 귀족들이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왕위계승자로 블란카는 당연히 후계자를 낳아야할 의무가 있었으며 남편감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블란카는 이제 나바라의 상속녀였으며 그녀의 지위는 매우 중요했었기에 남편감을 찾는 문제 역시 상당히 복잡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1419년 야심 가득한 "아라곤의 인판테"라는 ..

나바라의 인판타들...(34) 나바라의 블란카 : 카를로스 3세의 딸 (첫번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나바라의 여왕들에 대한 책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책 값이 흑흑흑..10만원이 넘더라구요. ebook도 오만원..ㅠ.ㅠ 사고 싶은 책은 많지만 돈이 없어서 슬퍼요...흑 흑흑흑..블란카때쯤에 카스티야-아라곤-시칠리아-나바라가 왕위계승문제로 혼란스러워서 말입니다. (...가톨릭 공동군주가 결혼해서 그 혼란함을 정리해주시는...-0-;;;) 나바라의 인판타들...(34) 나바라의 블란카 : 카를로스 3세의 딸 (첫번째) 나바라의 블란카 시칠리아의 왕비 나바라의 여왕 Blanche I (6 July 1387 – 1 April 1441) 나바라의 블란카는 나바라의 국왕 카를로스 3세와 그의 아내인 카스티야의 레오노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둘째딸인지 셋째딸인지에 대해서..

나바라의 인판타들...(33) 나바라의 후아나 : 카를로스 3세의 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훔훔훔....나바라도 나름 아는 시대로 접어드는군요 나바라의 인판타들...(33) 나바라의 후아나 : 카를로스 3세의 딸 나바라의 후아나 푸아 백작 부인 Joan of Navarre Jeanne, Juana; (1382 – July 1413) 나바라의 섭정이자 오래도록 후계자로 여겨졌던 후아나는 1382년 나바라의 국왕 카를로스 3세와 그의 아내인 카스티야의 레오노르의 첫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카를로스 3세는 아버지인 카를로스 2세와 달리 주변 여러 국가들과의 평화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었습니다. 후아나의 어머니인 카스티야의 레오노르는 카스티야의 국왕 엔리케 2세와 그의 아내인 후아나 마누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레오노르의 아버지인 엔리케 2세는 이복형이었던 페드루에 대해서 내전을 해서 ..

나바라의 인판타들...(32) 나바라의 후아나 : 카를로스 2세의 딸 (두번째)

나바라의 후아나 브르타뉴 공작부인 잉글랜드의 왕비 Joan of Navarre, Joanna (c. 1370 – 10 June 1437) 잉글랜드 왕비로써의 문장 1403년 2월 후아나는 이제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헨리 4세와 윈체스터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런던으로 와서 잉글랜드의 왕비로 대관하게 됩니다. 아마 잉글랜드에서는 주로 "조앤"이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더 잘알려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후아나는 아름답고 상냥하며 위엄있는 여성이었다는 평가와 인색하고 욕심많았으며 뇌물을 받았다는 평가가 동시에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마 잉글랜드와 브르타뉴 사이의 관계가 애매해졌기에 그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기도 했을듯합니다. 후아나와 헨리 4세가 결혼한 직후 브르타뉴의 배가 잉글랜드 해안을 공격하게 ..

나바라의 인판타들...(31) 나바라의 후아나 : 카를로스 2세의 딸 (첫번째)

나바라의 후아나 브르타뉴 공작부인 잉글랜드의 왕비 Joan of Navarre, Joanna ( c. 1370 – 10 June 1437) 나바라의 후아나는 나바라의 국왕 카를로스 2세와 그의 아내이자 프랑스의 공주였던 잔 드 발루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후아나의 아버지인 카를로스 2세는 프랑스 내에서의 영지에 대한 권한 확대는 물론 심지어는 프랑스 왕위계승에 대해서도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카를로스 2세의 장인인 장2세는 카를로스 2세와 딸을 결혼시키므로써 그의 야망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바라의 후아나는 1370년 나바라의 수도 팜플로나에서 태어났습니다. 다른 많은 중세 여성들처럼 후아나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그녀는 1386년 브르타뉴 공작이었던 장과 ..

나바라의 인판타들...(30) 나바라의 마리아 : 카를로스 2세의 딸

나바라의 마리아 간디아 공작부인 Marie (1360s, Puente la Reina – aft. 1400), 나바라의 마리아는 나바라의 국왕 카를로스 2세와 그의 아내인 잔 드 발루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나바라의 국왕 카를로스 2세는 부모가 상파뉴등의 영지를 포기한 댓가로 얻은 노르망디의 영지에 대해서 자신의 권리를 확고히 해서 노르망디 전체로 영향력을 확장시키려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그는 100년전쟁동안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 편을 바꿔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었습니다. 마리아의 어머니인 잔 드 발루아는 프랑스의 국왕 장 2세와 그의 첫번째 아내인 룩셈부르크의 본의 딸로 잔 드 발루아는 1352년 9살때 자신보다 11살이나 많은 나바라의 카를로스 2세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전형적인 ..

나바라의 인판타들...(28) 나바라의 아그네스 : 후아나 2세의 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딸들이 많네요 -0-;;;; 나바라의 인판타들...(28) 나바라의 아그네스 : 후아나 2세의 딸 나바라의 아그네스 푸아 백작부인 Agnès of Navarre (French: Agnès d'Évreux) (1334 – 1396) 나바라의 아그네스는 나바라의 여왕인 후아나와 그녀의 남편인 펠리페 3세의 넷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위로는 언니 오빠들이 있었기에 아마도 아그네스는 그렇게 중요한 후계자등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잠시만 나바라에 머물렀고 평생을 프랑스에서 지낸 어머니 후아나 2세와 함께 프랑스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아그네스의 부모 펠리페3세와 후아나 2세 아그네스는 1349년 푸아 백작이었던 가스통 3세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오래전에 ..

나바라의 인판타들...(29) 나바라의 후아나 : 후아나 2세의 딸

나바라의 후아나 Joan (aft 1342–1403), 후아나는 후아나 2세의 막내딸로 오빠였던 카를로스 2세가 노르망디에 대한 정치적 목적으로 그녀의 혼담을 진행했었습니다. 후아나의 첫 혼담은 아마도 1364년 가스코뉴 출신의 영주였던 장3세 드 그라일리(존 드 그래일리)와의 혼담이었습니다. 장3세 드 그라일리는 가스코뉴 출신의 기사로 연대기 저자였던 장 푸르아사르가 "이상적인 기사"라고 묘사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100년 전쟁중 잉글랜드 측에 섰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군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아마 이때 혼담 역시 깨진걸로 추정됩니다. 두번째 혼담은 1371년 알랑송 백작 샤를의 아들이었던 로베르 드 알랑송과의 혼담입니다. 로베르 드 알랑송은 프랑스의국왕 필리프 6세의 조카였습니..

나바라의 인판타들...(27) 나바라의 블란카 : 후아나 2세의 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그림을 보고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더니 바이에른의 이자보할때 이자보가 한동안 같이 살았다던 프랑스 왕비가 바로 이 블랑쉬군요. 음냐 그런데 필리프 6세의 부인인것은 좀....-0-;;; 이참에 근친결혼은 합스부르크만하는거 아니야..에서 프랑스쪽도 좀 써야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