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있는글들/화요일 : 에스파냐 211

아라곤의 인판타들...(3) 아라곤의 페트로닐라 : 라미로 2세의딸(첫번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중간에 저렇게 상황이 복잡해서 그런지 딸에 대한 언급이 별로 안나오더라구요. 알폰소 1세에게 딸이 있다고는 나오긴 한데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다 밖에 안나오더라구요. 뭐 후대로 가면 자료가 많겠죠 아하하... 그래도 뭐랄까 나바라랑 아라곤 정리하고 나니 나머지 레온이나 카스티야도 좀 정리되는 듯해요 -0-;;;; 아라곤의 인판타들...(3) 아라곤의 페트로닐라 : 라미로 2세의딸(첫번째) 아라곤의 페트로닐라 아라곤의 여왕 바르셀로나 백작부인 Petronilla Petronila or Petronella (Aragonese Peyronela or Payronella and Catalan: Peronella), (29 June[/11 August 1136 – 15 October 11..

아라곤의 인판타들...번외편 1. 라미로 1세 이후 상황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라곤 이야기를 하려니 바로 팜플로나 왕국과 합쳐졌다가 분리되는 상황이 있거든요. 그 이야기를 안할수가 없네요 -0-;;; 아라곤의 인판타들...번외편 1. 라미로 1세 이후 상황 11세기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는 한 가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라미로 1세의 아버지였던 산초 3세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아라곤의 국왕이 되는 라미로 1세와 아버지로부터 팜플로나(나바라)를 물려받는 아들 그라시아 산체스(그라시아 3세) 그리고 레온의 상속녀였던 산차와 결혼해서 레온의 국왕이 되는 페르난도(레온의 페르난도 1세)가 있었습니다. 페르난도 1세는 다시 아들들에게 갈리시아, 레온, 카스티야 지역을 나누어서 분배해주게 되죠. 결국 11세기 후반이 되면 아라곤,카스티야,레온,갈리시아,팜플로나..

아라곤의 인판타들...(2) 아라곤의 산차 : 라미로 1세의 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드디어 아라곤의 인판타들 시작인데 11세기라도 자료가 없는건 마찬가지군요 -0-;;;; 라미로 1세의 딸들중 기록이 많은 딸은 이 산차밖에 없네요. 다른 딸인 우라카는 수녀가 되어서 별 기록이 없고, 다른 딸인 테레사는 프로방스 백작인 기욤 베르트랑(기욤 5세 또는 베르트랑 1세)와 결혼했는데 자녀없이 죽어서 그런지 또 기록이 없네요. -0-;;; 아라곤의 인판타들...(2) 아라곤의 산차 : 라미로 1세의 딸 아라곤의 산차 산차 라미레스 우르겔 백작부인 Sancha Ramírez (born c. 1045, died 1097) 산차 라미레스는 아라곤의 국왕인 라미로 1세와 그의 아내인 비고르의 에르메신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라미로 1세는 팜플로나의 국왕 산초 3세의 아들로 그..

아라곤의 인판타들...(1)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아라곤이군요. 이거하고 나면 카스티야해야하는데 카스티야 족보는 진짜..ㅠ.ㅠ 진짜 카스티야는 족보그려가면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부터 해야할듯해요. ㅠㅠ 아라곤의 인판타들...(1) 들어가며 아라곤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에 존재했던 역사적 왕국중 하나였습니다. 아라곤 왕국의 시작은 카롤링거 왕가에 의해서 성립된 아라곤 백작령이었습니다. 이 백작령은 9세기초 성립되었는데, 성립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샤를마뉴의 가신이었던 아스날 갈린데스가 아라곤의 백작이 되었고, 이 지역은 기독교 세력에 들어가게 되죠. 하지만 동시에 이 아라곤 지역은 팜플로나(나바라)왕국과도 연결고리가 있었습니다. 아스날 갈린데스는 바스크 족이었으며 당연히 이때쯤 역시 바스크족이었던 이니고 아리스타가 팜플로나를 중..

나바라의 인판타들...(52) 마치며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무생각이 없긴 하지만 일단 그냥 한번 써봐야겠습니다. -0-;;; 나바라의 인판타들...(52) 마치며 나바라 왕국은 9세기말경 팜플로나를 중심으로 바스크족들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나바라 왕국은 기독교 왕국이긴 했지만 출발에서는 다른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들과는 좀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팜플로나는 프랑스와 이베리아 반도를 잇는 중요한 곳이었으며 이때문에 기독교도와 이슬람 세력 모두 중요하게 여겼으며 또 서로 이곳을 장악하려고 했었죠. 특히 같은 기독교 세력이었음에도 팜플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에 대해서 이슬람과 연합할것을 우려해서 강압책을 쓰기도 했었기에 아마 이런 상황은 도리어 나바라 왕국초기 이슬람 세력과 잘 지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때문에 팜플로나 출신의 기독교 인판타..

나바라의 인판타들...(51) 나바라의 카타리나 : 후아나 3세의 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이 시리즈 끝인데 맺음말을 써야하나...고민입니다. 머리가 텅텅비어서 맺음말을 뭐라 써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님 그냥 아라곤으로 넘어가죠 뭐 -0-;;; 나바라의 인판타들...(51) 나바라의 카타리나 : 후아나 3세의 딸 나바라의 후아나 카트린 드 부르봉 로렌의 공작부인 Catherine de Bourbon (7 February 1559 – 13 February 1604) 프랑스 식으로는 카트린 드 부르봉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나바라의 카타리나는 나바라의 여왕 후아나 3세와 그녀의 남편인 앙투안 드 부르봉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카타리나라는 이름은 그녀의 대모가 되었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카타리나의 어머니인 후아나는 개신교에 호의를 가지고..

나바라의 인판타들...(50) 나바라의 후아나 3세 :엔리케 2세의 딸(두번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대충 나바라를 끝낸것같은데... 맺음말을 써야할지 어떨지 고민이군요. 머리가 텅텅비어서 맺음말이 잘 안써지는데 말입니다. .ㅜㅠ 나바라의 인판타들...(50) 나바라의 후아나 3세 :엔리케 2세의 딸(두번째) 나바라의 후아나 3세 잔 달브레 Jeanne d'Albret (Basque: Joana Albretekoa; Occitan: Joana de Labrit;) (16 November 1528 – 9 June 1572), 첫번째 결혼이 무효화 된 후에 후아나는 여전히 프랑스 궁정에서 지내게 됩니다. 후아나는 외삼촌인 프랑수아 1세가 사망하고 사촌인 앙리 2세가 즉위한 후인 1548년 다시 재혼합니다. 후아나가 재혼한 상대는 프랑스 왕가의 분가인 부르봉 가문 출신인 앙투안..

나바라의 인판타들...(49) 나바라의 후아나 3세 :엔리케 2세의 딸(첫번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나바라 마지막 사람이군요. 후아나(잔 달브레)의 아들이 바로 프랑스의 앙리 4세가 되어서 이후에 나바라의 나머지는 프랑스에 합쳐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프랑스의 공주들 할때가 되면 여기서 다 할수 있을듯합니다. (...그런데 프랑스 공주들은 또 메로빙거 가문부터 해야하는걸까요..ㅠ.ㅠ 그건 그냥 카페 가문부터 하고 싶어요 -0-;;;) 나바라의 인판타들...(49) 나바라의 후아나 3세 :엔리케 2세의 딸(첫번째) 나바라의 후아나 3세 잔 달브레 Jeanne d'Albret (Basque: Joana Albretekoa; Occitan: Joana de Labrit;) (16 November 1528 – 9 June 1572), 일반적으로 잔 달브레라는 프랑스 식이름으로 더 잘..

나바라의 인판타들...(48) 나바라의 이사벨 : 카타리나의 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카타리나는 나바라의 여왕이긴 했지만 국토 상당부분은 뺏겨서 그런지 힘이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때문에 자녀들에 대해서 별로 나오지가 않네요 딸들은 대부분 기록이 없거나 아니면 수녀가 된 모양이네요. 그러니 대부분 자료가 없죠. 막내딸인 이사벨은 시집을 가서 기록이 남아있긴합니다. 그래서 이 막내딸만 하려고 하네요. ...그런데 이 이사벨만 하고나면 마지막으로 나바라의 마지막 여왕이 되는 잔 달브레가 남거든요. 이번달에 아마 나바라 끝날듯합니다. 헐..그럼 이제 아라곤해야하나요...-0-;;; 나바라의 인판타들...(48) 나바라의 이사벨 : 카타리나의 딸 나바라의 이사벨 이자벨 달브레 로한의 자작부인 Isabel d'Albret of Navarre (1512–1555) 프랑스식으..

나바라의 인판타들...(47) 제르메나 데 푸아 : 레오노르의 손녀(두번째)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0-;;;; 나바라의 인판타들...(47) 제르메나 데 푸아 : 레오노르의 손녀(두번째) 제르메나 데 푸아 제르멘 드 푸아 아라곤의 왕비 Germaine of Foix (Catalan: Germana de Foix; French: Germaine de Foix;) (1488 – 15 October 1536) 1517년 카를로스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국왕으로 카스티야로 왔으며, 제르메나는 새 국왕을 만나기 위해 아라곤에서 카스티야로 가게 됩니다. 17살의 새 국왕인 의붓 손자와 29살의 의붓할머니는 만나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새 국왕은 의붓할머니를 위해 여러축제와 파티를 열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518년 8월 20일 제르메나는 발렌시아에서 딸 이사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