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21) 마리야 키릴로브나 : 키릴 대공의 딸(첫번째)

엘아라 2022. 7.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키릴 대공의 딸들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21) 마리야 키릴로브나 : 키릴 대공의 딸(첫번째)

 

마리야 키릴로브나

라이닝겐 공비

Grand Duchess Maria Kirillovna of Russia 

(2 February 1907 – 25 October 1951) 

 

아버지로부터 "여대공"칭호를 받아서 마리야 키릴로브나 여대공으로 알려지게 되는 마리야 키릴로브나는 1907년 코부르크에서 러시아의 대공이었던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과 그의 아내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야의 아버지인 키릴 대공은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손자이자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조카이고 황제 니콜라이 2세와는 사촌관계였었습니다. 키릴 대공의 부모인 블라디미르 대공과 미헨 대공비는 매우 야심 많은 인물이라고도 알려져있었습니다. 키릴대공은 매우 가까운 황위계승자였고 이것은 니콜라이 2세가 후계자 문제로 골치아플때 매우 중요한 후계자 후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그는 오래도록 사촌인 더키를 사랑했지만 더키와 결혼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키릴 대공은 황제의 허락없이 더키와 결혼했고 이때문에 키릴 대공은 러시아에서 추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마리야의 아버지 키릴 대공

 

마리야의 어머니로 더키라는 애칭의 빅토리아 멜리타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자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외손녀이기도 했습니다. 더키는 고종사촌이었던 헤센의 대공과 결혼했었지만 결국 이혼했었습니다. 하지만 당대 이혼녀라는 꼬리표는 매우 큰 문제였으며 게다가 니콜라이 2세의 황후이자 더키의 사촌이었던 알렉산드라 황후는 더키의 전 시누이이기도 했었고 더키에 대해서 매우 반감이 심했기에 더키는 키릴 대공과 사랑에 빠졌었지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도저히 결혼을 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키릴 대공이 거의 죽을뻔한 뒤 더키와 키릴 대공은 허락없이 결혼해버렸던 것입니다.

 

마리야의 어머니 더키

 

더키와 키릴의 첫아이인 마리야는 부모가 러시아에서 추방당해있는 동안 태어났습니다. 태어났을때 러시아 황제의 증손녀였기에 "마리야 키릴로브나 공녀"라고 불렸었습니다. 마리야는 태어나서 3년 정도는 러시아에 갈수 없었는데 아버지인 키릴 대공이 러시아에서 추방당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10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사촌인 키릴을 용서하고 그가 아내인 더키와 함께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야는 동생인 키라와 부모와 함께 러시아로 가게 됩니다. 

 

더키와 키릴 그리고 마리야

 

마리야는 어린시절 수줍음 많고 느긋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외모는 외할머니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을 닮아서 둥근 얼굴에 어린시절부터 약간 많이 살이 찐 모습으로 실제 나이보다도 훨씬 더 나이들어보이기도 했었습니다. 마리야는 러시아에서 매우 호화로운 생활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이어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모든것이 바뀌게 됩니다. 

 

마리야와 키라

 

1917년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가족들과 함께 감금당했고 다른 황실 가족들 역시 자유를 박탈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황실 가족들은 위험을 느끼게 되었고 마리야의 부모도 러시아를 떠나야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리야의 어머니는 임신 중이었는데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라면 러시아 황위를 이어받을 아들일수도 있기에 러시아에서 먼곳으로 떠날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가족들은 핀란드로 가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많은 러시아 황족들이 감금당했지만 키릴 대공은 주변에 여러 지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의 도움으로 핀란드로 갈수 있었습니다. 

 

핀란드에서 마리야의 남동생인 블라디미르가 태어났지만 핀란드에서의 삶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마리야의 어머니인 더키는 사촌인 스웨덴의 왕태자비인 마거릿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아들에게 먹일 분유도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었습니다. 가족들은 핀란드에서 2년간 살았었지만, 핀란드가 러시아의 침공을 우려해서 이들이 떠나길 원했고 결국 마리야는 1919년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가게 됩니다. 

 

핀란드에서 가족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