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글을 네개를 쓰네요 =-=
사실 마르거리트는 책만 찾아놓고 읽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
프랑스의 왕비들...(90) 프로방스의 마르거리트 : 루이 9세의 왕비 (네번째)
프로방스의 마르거리트
프랑스의 왕비
Margaret of Provence
Marguerite;
(1221 – 20 December 1295)
무덤 조상
마르거리트는 여동생인 엘레오노르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이 때문에 잉글랜드의 헨리 3세와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지길 원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시동생인 샤를이 프로방스 백작령을 통치하고 절대로 자매들에게 분배하지 않으려했던 것에 대해서 경계했습니다. 마르거리트는 야심이 많은 시동생을 견제하기 위해서 더욱더 헨리 3세와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야할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결국 1259년 헨리 3세와 루이 9세는 파리 조약을 체결하면서 프랑스 국왕과 잉글랜드의 국왕 사이에 영토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것은 오래도록 프랑스 왕가와 플랜태저넛 가문의 갈등을 해결한 것으로 마르거리트와 자매들은 이 조약의 협상에 모두 참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마르거리트의 정치적 야망을 점차 더 키우게 됩니다. 마르거리트는 이제 자신이 정치에 관여하길 원하게 됩니다. 마치 시어머니였던 블랑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 역시 정치에 참가하길 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편인 루이 9세는 아내의 야망에 대해서 점차 경계하게 됩니다. 특히 마르거리트는 1260년 장남인 루이가 죽고 차남인 필리프가 왕위계승자가 되었을때 아들에게 언제 국왕이 될지 상관없이 30살까지 자신을 섭정으로 만들라는 맹세를 시켰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루이 9세는 당연히 화를 냈으며 교황에게 이 서약은 자신이 승인한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맹세를 없던 일로 만들어달라고 했으며 교황은 여기에 승인을 합니다. 이후 마르거리트는 루이 9세에 의해서 정치에 관여할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조카이자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였던 에드워드를 프로방스쪽 조카와 결혼시켜서 프로방스의 이익을 도모하려했었지만 이 역시 이룰수 없었습니다.
루이 9세는 다시 한번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려합니다. 여기에는 아들들과 며느리를 데려갔지만 아내인 마르거리트는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루이 9세와 마르거리트가 정치적 문제로 어느정도 갈등이 있었던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270년 시칠리아에 있을때 루이9세의 군대에 이질이 돌았으며 루이 9세의 아들인 장 트리스탕이 사망했으며 루이 9세마저 사망했습니다.
마르거리트는 남편이 죽은뒤 프랑스 궁정에서 남았으며 정치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특히 그녀는 이제 프로방스의 상속문제에 집중합니다. 마르거리트는 군대를 모아서 무력으로 프로방스 지역을 얻으려했습니다만 성공하지는 못했었습니다. 마르거리트는 아들이 죽은 뒤 1285년 궁정에서 은퇴했으며 이후 수도원에서 경건하게 지내면서 여러가지 자선사업을 했고 1295년 사망했습니다. 마르거리트는 생드니의 남편 근처에 묻혔는데 마르거리트의 묘에 기념비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프랑스 대혁명 당시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왕족의 묘로 현재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마르거리트는 루이 9세와의 사이에서 11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중 아홉명이 자녀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장남인 루이는 왕위계승자였지만 15살에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둘째아들은 필리프로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3세가 됩니다. 셋째아들인 장 크리스탕은 이집트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는데 그는 1270년 아버지를 따라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다가 이질에 걸려서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합니다. 넷째 아들은 알랑송 백작 피에르로 그는 숙부인 시칠리아의 카를로 1세를 돕기 위해서 시칠리아로 갔다가 사망했습니다. 다섯째 아들은 클레르몽 백작 로베르로 그는 부르봉의 상속녀였던 부르고뉴의 베아트리스와 결혼했고 둘은 부르봉 가문의 선조가 됩니다.
장녀인 이사벨은 샹파뉴 백작이자 나바라의 국왕이었던 테오발도 2세와 결혼했습니다. 둘째딸인 블랑쉬는 카스티야의 왕위계승자였던 페르난도 데 라 크레다와 결혼했었지만 카스티야 내부의 갈등 때문에 왕비가 되지 못했고 그녀의 아들들 역시 왕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셋째딸인 마르거리트는 브라반트 공작 요한 1세와 결혼했습니다. 막내딸인 아그네스는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2세와 결혼했습니다. 아그네스의 딸인 마르거리트는 필리프 4세의 아들인 루이 10세와 결혼했지만 부정을 이유로 이혼당했습니다만 다른 딸인 잔은 발루아 백작 필리프와 결혼했는데 필리프가 사촌의 뒤를 이어서 프랑스의 국왕이 되면서 잔은 왕비가 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쓰고있는글들 > 목요일 : 프랑스의왕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의 왕비들...(92) 브라반트의 마리 : 필리프 3세의 왕비 (0) | 2022.06.23 |
---|---|
프랑스의 왕비들...(91) 아라곤의 이사벨 : 필리프 3세의 왕비 (0) | 2022.06.16 |
프랑스의 왕비들...(89) 프로방스의 마르거리트 : 루이 9세의 왕비 (세번째) (0) | 2022.06.02 |
프랑스의 왕비들...(88) 프로방스의 마르거리트 : 루이 9세의 왕비 (두번째) (0) | 2022.05.26 |
프랑스의 왕비들...(87) 프로방스의 마르거리트 : 루이 9세의 왕비 (첫번째) (0) | 2022.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