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15)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의 부인 (첫번째)

엘아라 2022. 6. 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더키 이야기를 하네요 

 

 그나저나 로마노프 가문 끝나가는데 다음에 도대체 뭘해야할까요 ==

사실 가문들에 대해서 찾아보면 합스부르크와 로마노프가 이렇게 단일로 가거든요. 합스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과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로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것은 사실  프랑스인 카페 가문인데 사실 프랑스는 지금 프랑스의 왕비들 하고 있고, 이베리아 반도 끝나면 프랑스의 공주들 할거거든요. =-= (그런데 그럼 이것도 메로빙거 왕가부터 해야하는건가..ㅠ.ㅠ) 나머지는 가문들은 뭐랄까 분가가 너무 많아서..ㅠ.ㅠ

 

지금 생각으로는 덴마크 왕가인 올덴부르크 가문을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만 공포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쪽 분가들이...ㅠ.ㅠ 하여튼 고민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15)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의 부인 (첫번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헤센의 대공비

러시아의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Princess Victoria Melita of Saxe-Coburg and Gotha

Grand Duchess Victoria Feodorovna of Russia 

(25 November 1876 – 2 March 1936) 

 

더키라는 애칭으로 더 잘알려진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는 영국의 에든버러 공작이자 후에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되는 앨프러드와 그의 아내인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빅토리아 멜리타의 아머지인 앨프러드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아들로, 훗날 자녀가 없는 백부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에른스트 2세의 뒤를 이어서 공작령을 상속받았습니다. 하지만 앨프러드가 공작령을 상속받았을때 앨프러드의 형이자 당시 웨일스 공이었던 에드워드 7세는 영국의 공작이 독일의 통치 공작이 되는 것을 반대했고 이때문에 앨프러드는 자신의 영국 지위인 에든버러 공작 지위를 포기해야했습니다. 

앨프러드는 어린시절부터 해군으로 성장했으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되기전 오래도록 영국 해군으로 지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공작이 되면서 앨프러드는 육지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했었습니다.  앨프러드는 해군으로 오래도록 살았던 몰타 섬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둘째딸이 몰타에서 태어났을때 멜리타라는 이름을 넣었고 그래서 더키의 이름이 빅토리아 멜리타가 됩니다. 

 

에든버러 공작 앨프러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더키의 아버지

 

더키의 어머니였던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의 고명딸이었습니다. 마리야 여대공은 교육을 잘받았고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친척관계를 통해서 에든버러 공작인 앨프러드를 만나게 됩니다. 러시아와 멀리 떨어진 영국의 왕족으로 오래도록 해군으로 전세계를 여행했던 앨프러드를 만나서 마리야 여대공은 그에게 호감을 느꼈으며 결국 그와 결혼하기로 결정햇습니다. 하지만 마리야 여대공과 앨프러드는 매우 안 맞는 사이로, 여대공은 지적인 남자를 좋아했지만 앨프러드는 평생 해군으로 살았기에 마리야 여대공이 이상적으로 봤던 남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야 여대공은 영국 사교계에 적응하는데 실패했는데, 영국 사교계는 마리야보다 덜 지적이지만 더 아름다웠던 웨일스 공비 알렉산드라를 더 좋아했는데 마리야는 그것을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야와 알렉산드라 사이에 서로 경쟁 관계 역시 심해졌을뿐만 아니라 영국 사교계나 영국 왕가가 러시아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역시나 마리야가 영국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때문에 마리야 여대공은 남편과 달리 독일의 통치 공작의 아내가 되는 것에 대해서 좋아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더키의 어머니

 

더키의 부모는 아들로 "영애피"라는 애칭으로 불린 앨프러드와  딸인 마리, 빅토리아 멜리타,알렉산드라,베아트리스 이렇게 다섯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에든버러 공작 가족들과 친척들, 에르니랑 조지가 있고 마리 뒤에 서있는 남자는 바덴의 막스 입니다. (바덴의 막스도 어머니가 니콜라이 1세의 외손녀라서 마리야 여대공과 친척관계여서 저기 사진에 잇는 듯합니다.)

 

더키의 오빠인 앨프러드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서 독일에서 자랐습니다. 이후 그는 부모의 결혼 25주년 기념식 쯤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얼마뒤 사망합니다. 일반적으로 앨프러드는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지만 결국 요양원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져이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특히 이야기들중에는 앨프러드가 부모와 마찰을 빚었고 결국 부모의 결혼 기념식때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애피의 죽음은 더키의 부모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영 애피의 견진성사때, 보면 여기서도 에르니랑 조지가 다 있네요. 저러니 더키랑 에르니랑 엮어주려고 했던듯....조지 5세도 열심이 따라다녔는데 말입니다...

 

더키의 언니인 마리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났으며 사촌이었던 웨일스의 조지가 결혼하길 원했었다고 합니다만 어머니들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으며 마리는 루마니아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했습니다. 마리는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은 하지 못했고 결국 둘은 서로의 정부를 인정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마리는 개인적 행복을 포기한 대신 루마니아를 위해서 살기로 했으며 루마니아의 왕비로 여러가지 일을 했었습니다.

 

더키의 여동생인 알렉산드라는 호엔로에-랑겐부르크의 에른스트 2세와 결혼했습니다.  호엔로에-랑겐부르크의 에른스트 2세는 외교관으로 매우 지적이었지만 알렉산드라보다 20살 이상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리야 여대공은 그를 마음에 들어했으며 딸과 결혼시켰습니다. 알렉산드라는 평온한 삶을 살았습니다만 높은 지위의 남자들과 결혼한 언니들이나 여동생에 대해서 질투심을 품기도 했다고 합니다.

 

더키의 막내 여동생은 베아트리스로 에스파냐의 왕족이었던 갈리에라 공작 알폰소와 결혼했습니다. 갈리에라 공작은 당시 에스파냐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의 사촌으로 가장 가까운 에스파냐 왕족이기도 했었습니다. 둘의 결혼은 매우 행복했지만 정치적 상황때문에 에스파냐를 떠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오래도록 베아트리스가 알폰소 13세와 염문이 있었고 이때문에 알폰소 13세의 왕비이자 베아트리스의 사촌이었던 에나 왕비가 고통을 받았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사실 에나와 베아트리스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베아트리스가 추방당한 뒤에도 둘은 서로를 신뢰하고 믿었다고 합니다. 

 

 

더키와 자매들, 왼쪽에서 베아트리스, 더키, 알렉산드라, 마리 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