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블라디미르 대공네는 더키랑 두딸 그리고 키릴 대공의 며느리랑 그 딸만 하면 될것같아요 =-=
귀천상혼한 사람들은 다 뺐는으니 여기도 뺄까합니다만....그럼 키릴 대공 며느리도 빼야하나 =-=흠...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14)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후손 계열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알렉산드르 2세의 셋째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위로 형인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르가 있었기에 제위와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인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큰형이었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사망하고 나서 좀 상황이 복잡해지게 됩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다른 형제들처럼 교육을 잘 받았는데 그는 영리하고 지적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형인 니콜라이 대공이 죽고 난뒤 후계자 문제가 발생했을때 단순무식하고 군대밖에 몰랐던 알렉산드르 2세의 둘째 아들인 알렉산드르 대공보다 블라디미르 대공이 황태자가 되어야한다는 사람들이 생겨났었습니다. 특히 황제의 숙모로 황실 가족들에게 영향력이 컸던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는 알렉산드르 2세에게 알렉산드르가 아니라 블라디미르를 황태자로 삼으라고 대놓고 간청할 정도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블라디미르 대공과 그의 아내인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 그리고 둘의 후손들이 늘 황위와 연결될 뿐만 아니라 야심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와 결혼했는데 마리는 블라디미르 대공과 결혼하기전 이미 약혼했었지만 조건이 더 좋은 러시아 대공과 결혼하기 위해서 약혼을 깼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로 알려지지만 가족들에게는 미헨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마리는 이런 이야기와 야심 때문에 부정적인 인상이 강했습니다만, 사실 이전의 약혼 역시 사랑해서 약혼한 것이 아니었기에 조건이 더 괜찮은 남자와 결혼하려는 것은 당연한 것일수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대공과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는 서로 잘 맞는 사이였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는 다섯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세 아들인 키릴, 보리스, 안드레이와 막내딸인 옐레나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블라디미르 대공과 그의 가족들은 니콜라이 2세가 즉위한뒤 점차 더 러시아에서 영향력이 커지게 됩니다. 니콜라이 2세에게는 오래도록 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았으며 동생인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정식 결혼하지 않고 결국 정부와 귀천상혼했기에 다음 계승권리가 있던 블라디미르 대공과 그의 가족은 러시아에서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난뒤 니콜라이 2세의 가족들과 미하일 대공은 모두 살해당했지만 블라디미르 대공의 아들들은 모두 무사히 러시아에서 빠져나왔고 이후 러시아의 황위를 주장하는 위치가 됩니다. 특히 블라디미르 대공의 장남으로 니콜라이 2세와 아들인 알렉세이 그리고 동생인 미하일 다음으로 제위계승권리를 가지고 있던 키릴 대공이 망명중에서 스스로를 러시아의 황위계승요구자로 주장합니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이전에 블라디미르 대공이 황태자로 언급되었던것과 연결되어서 더욱더 가문 자체가 야심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사실 키릴 대공의 제위 주장은 계승순위로 봐서는 정당한 것이었습니다만, 키릴 대공이 러시아를 떠나기전 황제를 배신하고 두마에 충성을 했던 전력이 있었기에 황실 가족들이 이미 그를 좋게 보지 않았었습니다. 게다가 황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했던 마리야 황태후 생전에는 제위에 대해서 논하지 말자는 약속을 깬것 역시 키릴 대공과 가족들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보던 황실 가족들이 더 이들을 좋지 않게 보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대공의 후손들에 대한 문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키릴 대공의 아들인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의 결혼문제였습니다.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이 결혼한 여성은 바그라티온 가문 출신이었는데 바그라티온 가문은 러시아에서 "통치가문"으로 인정받지 못했었으며 이때문에 그의 결혼은 귀천상혼으로 볼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가 제위를 주장할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다른 황실가족들 모두가 귀천상혼했기에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의 권리를 마지못해서라도 인정했었습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역시 귀천상혼했다면 다른 황실 가족들과 조건이 동등해지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에게는 딸인 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밖에 태어나지 않았기에 더 문제가 됩니다. 러시아는 파벨 1세 이후 여성계승자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는 딸인 마리야를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했기에 더욱더 다른 황실 가족들이 반발하게 됩니다.
현재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남성 직계 후손들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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