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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343) 세미온 나리쉬킨: 옐리자베타 여제의 정부 (?)

엘아라 2022. 6.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엘리자베타 여제도 많네요 -0-;;;;

 

정부들과 그 후손들...(343)  세미온 나리쉬킨: 옐리자베타 여제의 정부 (?)

 

세미온 키릴로비치 나리쉬킨

Semyon Kirillovich Naryshkin 

( 1710 - 1775 ) 

 

세미온 키릴로비치 나리쉬킨은 표트르 대제와 친척관계였습니다. 표트르 대제의 어머니였던 나탈리야 나리쉬키나 역시 나리쉬킨 가문 출신으로 사실 나리쉬킨 가문은 이전까지는 매우 한미한 가문이기도 했습니다. 나탈리야의 아들인 표트르가 부상하면서 그의 외가인 나리쉬킨 가문 역시 부상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황실과 친척관계였기에 나리쉬킨 역시 궁정에서 자리잡을수 있었으며 궁정에서 지위를 얻게 됩니다. 

 

표트르 2세 시절 궁정에서 있었던 나리쉬킨은 표트르 2세의 고모인 옐리자베타와 곧 소문이 퍼지게됩니다. 나리쉬킨과 엘리자베타가 약혼했다거나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이야기마저 돌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 문제로 발전했으며 나리쉬킨은 해외로 보내졌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와 연결되는데 옐리자베타는 표트르 2세에게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을뿐만 아니라 표트르 대제의 딸로 제위를 이을가능성마저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옐리자베타의 남편이 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였고 결국 표트르 2세는 나리쉬킨을 멀리 보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후 안나 여제가 즉위하면서 나리쉬킨은 궁정으로 더욱더 돌아올수 없었으며 프랑스에서 갔고 옐리자베타 여제가 즉위할때까지 러시아로 돌아올수 없었습니다. 

 

표트르 2세

 

옐리자베타 여제가 즉위하면서 그의 지위는 복권되었으며 영국 특사로 파견됩니다. 영국에서는 나리쉬킨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그가 영국보다는 프랑스에 더 호의적이라고 평가했었습니다. 나리쉬킨은 실제로 프랑스에 오래살았기에 프랑스 사람들과 친분이 더 많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영국 특사가 된 1년후인 1743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으며 이후 여제의 호의를 통해서 러시아 궁정에서 지위가 점차 높아졌으며 육군 원수 지위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나리쉬킨은 호사스러운 생활로 유명했는데 특히 호른 오케스트라를 창설한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여러개의 호른으로만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인데 이것은 특별히 러시아에서만 유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https://youtu.be/h5pV29GBolk

호른 오케스트라Роговой оркестр 연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