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341) 에른스트 요한 폰 비론 : 안나 여제의 정부 (?) (두번째)
에른스트 요한 폰 비론
Ernst Johann von Biron
Ernst Johann von Biron(Bühren)
Эрнст Иоганн Бирон
( 23 November [O.S. 13 November] 1690 – 29 December [O.S. 18 December] 1772)
1730년 안나 이바노브나는 러시아의 황제가 되었으며, 비론 역시 여제를 따라서 러시아로 오게 됩니다. 비론과 그의 아내는 안나 여제의 궁정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했었으며 이것은 러시아에서 이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안나 여제가 즉위할때 비론은 신성로마 제국 백작(graf) 지위를 받았으며 영지와 돈을 받았습니다.비론은 이때 자신의 성을 독일식이었던 뷔렌으로 쓰지 않고 프랑스 식으로 보이는 비론으로 썼으며 이때부터 비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안나 여제는 즉위할때 귀족들의 제한을 받아들였고 귀족들이 국정을 운영하는것을 승인했었습니다. 하지만 여제는 즉위한후 자신의 약속을 파기했으며 국정을 자신이 가장 신뢰했던 비론과 그 측근들에게 맡기게 됩니다. 이것은 안나 여제 통치 시절 "외국인 신하"들에 대한 러시아 귀족들의 반발을 가져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비론은 권력자였으며 당연히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비론과 친하게 지내는 러시아 정치가들 역시 존재했었습니다.
비론의 삶이 정점에 이른 것은 아마 1737년 이었을 것입니다. 안나 여제는 폴란드 왕위계승문제에서 작센 선제후 출신이었던 아우구스트 3세를 지지했으며 그 결과 쿠를란트 공작령의 공작을 선택할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여제는 자신의 남편의 영지이기도 했던 쿠를란트와 세미갈리아 공작령을 비론에게 주게 됩니다. 비론은 사실 하급귀족가문 출신이었지만, 여제 덕분에 신성로마제국의 백작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쿠를란트의 통치 군주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비론은 자신의 권력이 안나 여제로부터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제가 죽고 나면 자신이 몰락할 것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할만한 방법을 찾았을 것이며 안나 여제도 그를 위해서 방법을 찾았을 것입니다. 안나 여제는 자녀가 없는 과부였기에 당연히 후계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여제의 조카였던 안나 레오폴도브나가 러시아로 왔으며 후계자가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젊은 안나 레오폴도브나와 그녀의 남편인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안톤 울리히는 당연히 스스로 러시아를 통치하길 바랬을 것이며 이것은 비론에게 위협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안나 여제는 죽기 직전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아들인 이반을 황제로 즉위시키고 섭정으로 비론을 지명했습니다.
1740년 10월 28일 안나 여제가 사망하고, 여제의 유언대로 이반 6세가 즉위했으며 비론은 섭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는 섭정이 된지 한달도 되지 않아서 몰락합니다. 새황제의 어머니인 안나 레오폴도브나는 비론이 계속해서 권력을 잡고 있는 것에 불만을 품었으며 또 비론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많은 귀족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1740년 11월 비론의 라이벌이었던 부르크하르트 크리스토프 폰 뮈니히가 궁정에서 비론을 체포합니다. 비론은 여러가지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 받았지만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너그러움"을 통해서 사형만은 면했으며 모든 재산과 지위를 뺏긴채 시베리아의 펠림으로 영구유배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1741년 12월 옐리자베타 여제가 쿠테타로 정권을 잡았으며 비론의 라이벌인 뮈니히를 추방했으며 비론에게 좀 더 나은 지역인 모스크바 인근 지역이었던 야로슬라블에서 거주할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비론은 오래도록 숨죽여서 살았는데 1762년 옐리자베타 여제의 조카였던 표트르 3세가 제위에 오른뒤 궁정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예카테리나 2세가 즉위한뒤 예카테리나 2세는 비론에게 쿠를란트 공작령을 돌려주었으며 비론과 그의 가족들은 이제 쿠를란트에 가서 거주했습니다. 쿠를란트에서 그는 러시아를 지지하고 편온한 삶을 살았으며 1769년에는 아들에게 공작 지위를 물려주고 은퇴했으며 1772년 사망했습니다.
비론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를 얻었는데 역사가중에서는 이 세명이 모두 안나 여제의 자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 자녀가 안나 여제의 자녀라고 보기에 힘들다고 합니다. 안나 여제가 특별히 더 예뻐했다고 알려진 막내아들인 카를 에른스트 폰 비론 역시 안나 여제의 아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쓰고있는글들 > 월요일 : 정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부들과 그 후손들...(343) 세미온 나리쉬킨: 옐리자베타 여제의 정부 (?) (0) | 2022.06.27 |
---|---|
정부들과 그 후손들...(342) 알렉산드르 부틀린 : 옐리자베타 여제의 정부 (0) | 2022.06.20 |
정부들과 그 후손들...(340) 에른스트 요한 폰 비론 : 안나 여제의 정부 (첫번째) (0) | 2022.06.06 |
정부들과 그 후손들...(339)표트르 미하일로비치 베스투체프-류민 : 안나 여제의 정부 (?) (0) | 2022.05.30 |
정부들과 그 후손들...(338) 라인홀트 구스타프 폰 레오벤볼데 : 예카테리나 1세의 정부(?) (0) | 2022.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