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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인판타들...(45) 시칠리아의 베아트리체 : 피에트로 2세의 딸

엘아라 2022. 6.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라곤의 인판타들...(45) 시칠리아의 베아트리체 : 피에트로 2세의 딸

 

 

시칠리아의 베아트리체

팔츠의 선제후비

Beatrice of Sicily

(5 September 1326 – 12 October 1365)

베아트리체와 남편인 루프레히트 2세

 

시칠리아의 베아트리체는 시칠리아의 국왕 피에트로 2세와 그의 아내인 카린시아의 엘리자베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어린시절 카린시아와 티롤의 상속문제 때문에 친척이었던 고리치아의 요한 하인리히 4세와 약혼하게 됩니다. 

 

고리치아의 요한 하인리히 4세는 티롤과 카린시아를 통치한 고리치아 가문의 일원으로 고리치아 백작령을 상속받은 계통이었습니다. 이후 티롤과 카린시아 공작령에 대한 계승문제가 발생하면서, 고리치아 가문의 일원이었던 고리치아 백작은 당연히 가문의 영지를 상속해야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한 하인리히 4세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티롤과 카린시아의 상속권리를 가지고 있던 카린시아의 엘리자베트의 딸인 베아트리체와 1335년 약혼하게 됩니다. 이때 엘리자베트는 딸의 상속권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상속권리를 포기하기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 하인리히 4세의 어머니는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동맹이 아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에 이 약혼을 깼고,아들을  오스트리아 공작 프리드리히의 딸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안나와 결혼시켰습니다. (하지만 1338년 요한 하인리히 4세는 후계자 없이 사망했고 티롤과 카린시아의 상속문제는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고리치아의 요한 하인리히 4세

 

 

 

베아트리체는 이후 한동안 혼담이 들어오지 않는데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복잡한 시칠리아 상황 때문이었을 듯합니다. 그리고 결국 1345년 라인의 팔츠그라프였던 루프레히트와 결혼하게 됩니다. 라인의 팔츠 그라프였던 루프레히트는 바이에른 공작 루돌프 1세의 손자로, 루프레히트의 아버지인 아돌프는 숙부인 황제 루드비히 4세와 상속문제로 갈등을 벌였었습니다. 황제 루드비히 4세가 형인 루돌프 1세의 후손들에게 라인의 팔츠그라프령등을 주기로 합의했을때, 루프레히트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었으며 이때문에 루프레히트가 영지의 일부를 상속받았었습니다. 이런 관계로 인해서 베아트리체의 남편이 되는 루프레히트는 베아트리체의 고모였던 시칠리아의 마르게리타의 시조카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둘이 결혼하게 된 원인중 하나가 이런 가족관계도 있었으며 또 베아트리체의 티롤과 카린시아의 상속권리 역시 결혼하는 원인중 하나였을듯합니다.

 

팔츠 선제후 가문의 문장

 

베아트리체의 남편인 루프레히트는 1357년 숙부이자 팔츠의 선제후였던 루프레히트 1세의 상속자가 됩니다. 루프레히트 1세에게는 아들이 없었기에 조카이자 가문에 남은 유일한 남성 상속자였던 루프레히트를 자신의 상속자로 삼았으며 루프레히트는 숙부와 함께 팔츠 선제후령의 공동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루프레히트가 영지내의 많은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베아트리체는 자주 남편과 떨어져 지냈는데 그럴때마다 베아트리체는 수녀원으로 은퇴했던 시어머니인 외팅겐의 이멩가르트와 함께 지냈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남편인 루프레히트와의 사이에서 일곱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아들이었던 루프레히트는 후에 황제의 후계자로 황제가 없던 시기 황제나 다름없었던 "로마인의 왕"이라는 칭호의 독일왕으로 선출되기도 했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1365년 사망하는데, 베아트리체의 남편인 루프레히트는 아내가 죽은 2년뒤에 숙부의 뒤를 이어서 팔츠의 선제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죽은뒤 30년 이상을 더 살았지만 재혼하지는 않았었습니다.

 

베아트리체의 아들인 로마인의 왕 루프레히트와 그의 아내인 호엔촐레른의 엘리자베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