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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82) 메라니아의 아그네스 : 필리프 2세의 왕비(두번째)

엘아라 2022. 3. 3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자료가 별로 없는데 왠지 늘리는 분위기입니다. =-=

 

프랑스의 왕비들...(82) 메라니아의 아그네스 : 필리프 2세의 왕비(두번째)

 

멜라니아의 아그네스

프랑스의 왕비

Agnes of Merania 

(c.1172-died 1201)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2세는 1190년 첫번째 아내가 죽은뒤, 1193년 두번째 아내인 덴마크의 잉에보르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결혼 직후에 그는 잉에보르와 헤어지길 원했으며 잉에보르가 이를 거부하자 족보까지 위조하면서 잉에보르와의 결혼을 무효로하려했습니다. 잉에보르와의 결혼을 마음대로 무효화한 필리프 2세는 다시 한번 신붓감을 찾으려했습니다만, 이미 이 사건은 유럽에 널리 알려졌기에 신붓감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1196년 메라니아의 공작 베르톨트 4세의 딸인 아그네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아마도 베르톨트 4세는 제국내 자신의 지위를 더 높이기 위해서 딸을 프랑스 국왕과 결혼시킨것일것입니다만 필리프 2세와 잉에보르의 결혼은 해결된것이 아니었기에 아그네스가 결혼한 동안 둘의 결혼은 교회의 인정을 거의 못받았었습니다. 

 

필리프 2세와 잉에보르의 결혼

 

몇몇 연대기 기록자들은 아그네스를 "마리"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아그네스가 결혼하면서 이름을 프랑스에서 익숙한 이름인 마리로 바꾸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둘의 결혼을 정당하지 않다고 봤었는데 특히 잉에보르는 필리프 2세와 친족관계가 아니지만 반면 아그네스와 필리프 2세는 친족관계로 필리프 2세의 증조부중 한명과 아그네스의 증조모중 한명이 남매관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안그래도 필리프 2세와 잉에보르의 결혼이 무효가 아니라고 판결했던 교회 입장에서 보면 필리프 2세가 헤어져야할 사람은 잉에보르가 아니라 아그네스였었습니다. 

 

필리프 2세는 교황 사절앞에서 아그네스와 헤어지겠다고 했었지만 교황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필리프 2세는 잉에보르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그네스와 여전히 함께 지냈었습니다. 필리프 2세와 아그네스가 헤어지는 문제는 1201년 7월 끝나게 됩니다. 아그네스는 셋째아이를 낳다가 사망했으며 아이역시 며칠 살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필리프 2세는 교황과 협상을 해서 아그네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를 적자로 인정받았습니다.

 

필리프 2세의 씰

 

아그네스는 필리프 2세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만 막내 아이는 얼마 살지 못했었습니다. 첫째는 딸인 마리로 아버지의 정책에 따라 여러번 약혼했었지만 실행되지 않았으며 1211년 나무르 백작 필리프 1세와 결혼합니다. 나무르 백작은 필리프 2세의 첫번째 아내였던 에노의 이자벨의 남동생으로 에노와 플랑드르 지방을 형을 대신해서 섭정으로 통치했었습니다. 이때문에 필리프 2세는 에노와 플랑드르 지방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결혼시켰었지만 결혼 다음해에 나무르 백작 필리프 1세는 사망합니다. 이후 마리는 브라반트 공작 하인리히 1세와 재혼했었습니다.

 

브라반트 공작 하인리히 1세와 마리

 

아그네스와 필리프 2세의 아들로 "위르펠 Hurepel"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필리프는 아버지로부터 클레르몽 백작령을 받았으며, 볼로뉴 백작령의 상속녀였던 볼로뉴의 마틸드 2세와 결혼해서 볼로뉴 백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자녀들은 그보다 먼저 사망했었으며 그의 클레르몽 영지는 왕실로 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된뒤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3세와 재혼했었습니다. 

 

필리프,위르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