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결국 여섯개네요 아하하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07) 그리스의 마리아 :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의 부인(여섯번째)
그리스의 마리아
러시아의 마리야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
Princess Maria of Greece and Denmark
Μαρία, Мария Георгиевна;
(3 March [O.S. 20 February] 1876 – 14 December 1940)
마리아는 남편이 죽은뒤 러시아의 대공비가 아니라 그리스의 마리아 공주라는 칭호를 씁니다. 이것은 아마 스스로를 그리스인으로 인식했던 마리아가 남편이 죽은 이상 러시아의 대공비로 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또 이미 몰락한 러시아 황실 일원임을 강조하기 보다는 비록 왕실 가족 대부분이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카가 그리스 국왕으로 남아있는 그리스 왕가의 일원임을 강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수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리스 공주였지만 1차대전이 시작되면서 그리스 왕가 대부분은 망명생활을 해야했었고 이때문에 마리아 역시 그리스에서 큰 재정적 도움은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그리스 왕가 사람들 대부분은 상속녀였던 며느리 마리 보나파르트와 낸시 리즈의 도움을 받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1920년 그리스 왕가의 상황은 갑자기 바뀌게 됩니다. 마리아의 조카였던 알렉산드로스가 원숭이에게 할퀸 상처가 감염이 되었고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국왕이 갑자기 죽으면서 그리스 정치 상황은 다시 한번 혼란해졌는데 베니젤로스는 마리아의 오빠인 콘스탄티노스 1세가 복위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지만 결국 선거에서 패배하고 콘스탄티노스를 다시 데려오겠다는 쪽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마리아는 두딸과 함께 다른 그리스 왕족들과 함께 그리스로 가면서 그리스 전함을 타게 됩니다. 이때 그 전함의 함장이었던 페리클레스 이오아니디스를 만나게 됩니다. 페리클레스 이오아니디스는 콘스탄티노스 1세를 지지했었기에 베니젤로스가 정권을 잡았을때 3년간이나 감옥에 갇혀있었으며 베니젤로스가 몰락하면서 다시 복귀했던 인물입니다. 마리아는 이런 페리클레스 이오아니디스에게 호감을 갖게됩니다.
마리아는 아테네에 정착했으며 그리스 왕족들 모두는 마리아와 잘 지냈습니다. 특히 남편이나 시집식구와 불화를 빚고 있던 왕태자비인 루마니아의 엘리자베타 역시 이 고모만은 좋아하고 잘 따랐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친정식구들과는 잘 지냈지만 딸들과는 잘 지내지 못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마리아가 전쟁이 일어났을때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았기에 다시는 아버지를 만날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마리아의 두 딸들이 페리클레스 이오아니디스와 어머니의 관계를 인정할수 없었던것도 모녀간에 불화를 빚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두 딸들은 어머니 곁에 있고 싶지 않아했기에 서둘러 결혼해버렸습니다.
마리아는 1922년 12월 딸들의 반대에도 페리클레스 이오아니디스와 결혼했었습니다. 둘은 독일에서 결혼했고 신혼여행을 마친후 그리스로 돌아갔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상황은 더욱더 나빠지게 됩니다. 마리아가 결혼하기 3달전 마리아의 오빠인 콘스탄티노스 1세는 다시 한번 망명길에 올라야했었습니다. 남동생인 안드레아스 왕자는 거의 죽을뻔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조카인 게오르기오스가 국왕 게오르기오스 2세가 되었으며 이때문에 마리아는 다시 남편과 함께 그리스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24년 그리스는 공화국이 되었으며 마리아 역시 남편과 함께 다시 한번 망명길에 오르게 됩니다. 부부는 영국으로 갔으며 런던에 머물게 됩니다. 이동안 마리아는 그림을 그리는데 전념했는데 1925년에는 동화책을 출간하는데 삽화를 그리기도 했었습니다. 마리아는 고모인 알렉산드라 왕비가 좋아한 조카였으며 고모를 늘 방문했었습니다. 이때문에 영국에 머물렀던것입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 왕비가 죽고 딸들마저 미국으로 떠나자 더이상 영국에 머물지 않습니다.
1926년 마리아는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로 가는데 이탈리아에는 망명중인 그리스 왕실 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탈리아에서 남편과 정원을 가꾸거나 회고록을 쓰는 등 평범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친척들을 방문하러 다니기도 했는데 미국으로 가서 외손자를 만나기도 했었습니다.
마리아는 2차대전이 일어난뒤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전쟁을 하던 1940년 그리스로 돌아왔으며 12월 14일 아테네에서 사망했으며 타토이에 있는 왕실 묘지에 묻혔습니다. 마리아의 두번째 남편인 페리클레스 이오아니디스는 아내보다 25년을 더살았고 1965년 그리스에서 사망했고 역시 아내처럼 타토이 왕실 묘지에 묻혔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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