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06) 그리스의 마리아 :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의 부인(다섯번째)

엘아라 2022. 3. 2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06) 그리스의 마리아 :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의 부인(다섯번째)

 

그리스의 마리아

러시아의 마리야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

Princess Maria of Greece and Denmark

Μαρία, Мария Георгиевна;

(3 March [O.S. 20 February] 1876 – 14 December 1940)

 

전쟁이 일어나자 게오르기 대공은 영국으로 올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러시아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고모였던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 역시 마리아와 같은 시기 영국에 있었는데 황태후는 러시아로 돌아갔었습니다. 이때 마리아 역시 고모를 따라 갔다면 러시아로 갈수 있었을테지만 마리아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남았었습니다. 물론 이후에는 더욱더 돌아갈 기회가 없게 됩니다.

 

마리아는 영국의 자신의 집에서 병원을 운영합니다. 이것은 1차 대전때 영국에서 많은 귀족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병원을 운영하기도 했었는데 마리아는 러시아와 동맹인 영국을 돕기 위해서 병원을 연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운영한 병원에서 1200명 이상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으며 사촌인 조지 5세는 마리아의 행동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왕립 적십자를 주기도 했었습니다.

마리아는 1916년 7월 딸들과 함께 런던으로 이사갔으며 매일 저녁 고모인 알렉산드라 왕비와 함께 식사를 했고, 친한 사촌인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공주를 자주 만났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에 대한 관리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드라 왕비와딸인 빅토리아 공주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마리아는 러시아로부터 돈을 받지 못했고 이것은 마리아가 경재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마리아는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 운영비를 지급할수 없을 지경이됩니다. 결국 병원은 마리아의 고모인 알렉산드라 왕비가 후원자가 되었습니다만, 환자들은 마리아가 여전히 병원원장으로 남길 바랬고 마리아는 전쟁이 끝날때까지 병원 원장으로 남았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개인적으로 필요한 돈 역시 부족했고 마리아는 작은 집으로 이사는등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만 곧 동생인 크리스토포로스와 약혼했던 미국 상속녀였던 낸시 리즈가 재정적 지원을 해줍니다. 낸시 리즈는 그리스 왕가에 대해서 재정적 지원을 해줬었으며 마리아 역시 크리스토포로스의 누나였기에 재정적 지원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낸시 리즈, 후에 그리스의 아나스타샤 왕자비

 

1918년 마리아의 남편인 게오르기 대공이 볼셰비키에 의해서 체포당해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갇히게 됩니다. 여기에는 게오르기 대공뿐만 아니라 게오르기 대공의 형이었던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게오르기 대공의 사촌이자 마리아의 형부였던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그리고 게오르기 대공의 사촌이자 마리아의 외삼촌이었던 드미트리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이 함께 갇혀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남편의 체포소식에 놀랐고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마리아는 주변에 도움을 구할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에는 사촌이었던 덴마크 국왕의 아내인 알렉산드린 왕비가 있었고 영국 왕실 가족들은 물론 교황과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에게까지 편지를 보냈었다고 합니다. 또 마리아는 덴마크 대사관을 통해서 오만파운드를 줘서 남편을 구할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었습니다. 

 

마리아와 남편 게오르기 대공

 

결국 마리아의 남편과 같이 갇힌 대공들은 1919년 1월 총살당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