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05) 그리스의 마리아 :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의 부인(네번째)

엘아라 2022. 3. 1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거 여섯편 쓰겠습니다 ㅠ.ㅠ

뭐랄까 많이 봤던 내용이 나오니까 막 더 넣고 싶은가 봅니다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05) 그리스의 마리아 :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의 부인(네번째)

 

그리스의 마리아

러시아의 마리야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

Princess Maria of Greece and Denmark

Μαρία, Мария Георгиевна;

(3 March [O.S. 20 February] 1876 – 14 December 1940)

1903년 궁정 가장무도회에서

 

 

러시아의 대공과 결혼한 마리아는 이제 러시아로 가게 됩니다. 마리아는 러시아에서 마리야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로 불리게 됩니다. 마리아는 러시아 황실 가족에게 환영을 받는데 마리야는 로마노프 가문과 매우 가까운 친척관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어머니 올가는 니콜라이 1세의 손녀였으며 또한  아버지 게오르기오스 1세는 니콜라이 2세의 외삼촌이었습니다. 게다가 동서였던 크세니아 여대공은 사촌이자 마리아와 제일 친한 친척이기도 했었습니다. 

 

크세니아 여대공, 마리아의 제일 친한 사촌이자 동서

 

마리아는 시아버지이자 아내를 잃고 재혼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던 미하일 대공과 미혼이었던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인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함께 살았습니다. 물론 이들이 살았던 궁전은 매우 컸기에 독립적으로 사는 것과 다름 없었지만 함께 살았기에 마리아는 이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마리아의 남편인 게오르기 대공은 다른 대공들처럼 군인으로 일하긴 했었지만 어린시절 다리를 다쳤었고 이것때문에 게오르기는 군에서 빨리 은퇴한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던 알렉산드르 3세 박물관의 박물관장 지위를 맡았습니다. 마리아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딸인 니나와 크세니아를 낳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던 마리아의 집, 노보 미하일로프스키 궁전

 

마리아는 러시아 대공비였기에 여러 거주지가 있었고 수시로 이런곳을 돌아다니면서 지냈습니다. 게다가 마리아는 유럽 여러곳에 친척들이 있었으며 마리아는 이런 친척들을 만나면서 유럽 전역을 자주 돌아다녔었습니다. 

마리아와 남편 게오르기 대공은 크림 반도에 집을 짓게 됩니다. 마리아는 영국식을 좋아했기에 영국식 저택을 지었지만 집 근처에 고대 요새가 있었고 이때문에 마리아는 이 집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요새라는 뜻의 "하락스"라고 짓게 됩니다. 처음에는 저택만 있었지만 이후 고용인들을 위한 집과 교회 그리고 공원등의 시설이 들어서면서 영지는 더 커지게 됩니다. 하락스 근처에는 니콜라이 2세가 지은 별장이 있었기에 마리아와 가족들은 자주 걸어서 니콜라이 2세의 가족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었습니다. 

 

하락스

 

마리아와 게오르기 대공은 기본적으로 이 크림 반도에 있던 저택에서 조용히 지냈으며 사교시즌에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냈었습니다. 마리아는 비록 어머니가 러시아 여대공이었지만 러시아어는 배우지 않았기에 러시아어가 서툴렀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마 마리아가 러시아 사교계에 활발히 활동하는것을 원치 않는 원인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와 게오르기 대공은 두 딸을 매우 사랑했었으며 마리아는 자신이 자랐던 것처럼 딸들을 위해서 영국인 보모를 고용했었다고 합니다. 

 

두딸과 함께 있는 마리아와 게오르기 대공

 

마리아의 아버지인 게오르기오스 1세는 1913년 텟살로니키에서 암살당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매우 가까웠던 마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에 매우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남편과 사이가 벌어지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원래 남편을 그렇게나 좋아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냥저냥 적당히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인 게오르기는 오래도록 청혼할 정도로 마리아에게 애정이 있었고 늘 그 애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매우 크게 상심하고 있는 마리아는 몇주후에 있었던 로마노프 왕가 탄생 300주년 기념식에 억지로 참석해야했었습니다. 이후 마리아는 남편에 대해서 더욱더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부부 사이는 점차 더 벌어지게 됩니다. 

 

1914년 마리아는 두 딸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가게 됩니다. 마리아는 딸의 치료들을 위해서 영국으로 간다고 했지만 사실 사이가 불편해진 남편과 좀 떨어져 지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게오르기 대공은 7월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영국으로 가려했었습니다. 하지만 게오르기 대공은 오지 못하는데 1914년 7월 28일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게오르기 대공은 다시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 1903년 무도회에서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